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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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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Jun 01. 2022

[소설] 연결 11

파티

'치지 못한 편지 2.0’ 예산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는데 앞서 나가던 개발자들이 수군거렸다.

“션이 이번 주말에 큰 판 벌인다는 이야기 들었어?”

“이번에는 누가 초대받았대?”

“직원들은 초대도 받지 못하니 알 길이 없지. 임원들 몇 명하고 연예인들 몇 명 오겠지, 뭐.”

유비쿼터스 직원들은 싸가지를 션(Sean)이라고 불렀다. 싸가지 션이 주말 밤마다 파티를 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의 파티는 화려하기로 소문이 나서 재계 유명인사뿐 아니라 연예인들도 많이 참석한다는 후문이었다.

‘투자받더니 이런 데 돈을 쓰고 있는 거였어?’

싸가지와 자신은 회사에 대해 진심이라는 박찬영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 날 저녁, 싸가지가 전화를 했다.

“제 파티에 지은 대리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대리님께는 여러 가지로 고마워서요.”

'뭐가 고맙다는 말일까? 충직한 스파이가 되어 준 거?’

“스파이가 아니라 인간 한지은을 초대하는 겁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싸가지가 말했다.

“내일쯤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싸가지의 말대로 다음 날 저녁 톡으로 초대장이 날아왔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화려한 폰트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초대 카드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임상혁 님의 파티에 소중한 당신을 초대합니다!’

카드에 적힌 모든 단어가 어색했다. 임상혁 님, 파티, 소중한 당신.... 생전 이런 카드를 받아본 적이 있을 리 없는 내가 어색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눈에 특히 걸리는 것은 임상혁 님이라는 단어였다. 한 번도 ‘님’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의 이름이 뎅그렁하게 쓰여있었다. 내 꿈과 현실에 나타나 나를 스파이로 만들어버린 남자. 앞으로 이 남자는 내 인생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까?   

카드에 적혀 있는 H호텔로 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몰라서 친구들 결혼식 갈 때 입으려고 샀던 드레스를 입었지만 내 옷 같지 않았다.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나와 같이 파티장에 입장하는 사람들도 현실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CEO, 여의도 투자가들, 영화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들의 얼굴도 가끔 보였다. 많은 이들이 싸가지의 SNS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하나같이 확신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얼굴들 사이로 언뜻언뜻 싸가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그들의 얼굴 속에서 잘 어우러져 보였다. 나의 얼굴을 그들의 얼굴에 가만히 대입시켜보다가 부질없는 짓 같아 그만두었다.

‘싸가지는 언제 이런 사람들과 친해진 걸까?’

내가 지금까지 알던 싸가지는 어디로 가고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들어오기는 했지만 태평양처럼 넓은 파티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는데 싸가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한지은 대리님, 와주셨군요.”

“왜 초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내 얼굴을 잠깐 응시하다가 무슨 말을 할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에게 인사하는 노신사를 발견하고 이내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포옹하고 건배하다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넓은 파티장에서 다시 미아가 된 나는 구석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 파티 호스트가 누구예요?”

내 옆자리에 등과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말했다. 한눈에 봐도 파티걸 같은 인상을 풍기는 미모가 돋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임상혁이라고 벤처 벼락부자 중에 한 명이야.”

파티걸 옆에 앉은 약간은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화장을 고치면서 말했다.

“요즘에 판교에서 돌 던지면 하나는 맞는다는 벤처 부자?”

두 여자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맞아. 이번에 대형그룹이 호구로 걸렸나 봐.”

나이 든 여자가 비웃듯 오른쪽 입술을 꼬아 올리면서 말했다. 그들은 마치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대형그룹을 호구로 만든 것도 싸가지를 타락한 인간으로 만든 것도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황량한 파티장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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