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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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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May 23. 2022

[소설] 연결 10

스파이

유비쿼터스 투자가 결정되자 팀의 분위기는 한결 좋아졌다. 투자계약서가 체결되었고 이제 투자금이 유비쿼터스로 송금되면 거래는 종결된다. 전전긍긍하던 신성일 상무와 코털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웃음 때문인지 시간이 갈수록 나의 죄책감은 사그라들었다.

이른 봄에 다시 시작했던 유비쿼터스 프로젝트가 늦은 여름에 끝이 나고,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된 가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이 오기까지 싸가지는  번도 연락이 없었다.

‘이제 효용가치가 없다는 건가?’

회사에 대한 죄책감과 코털의 웃음과 싸가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회사는 사적인 감정이 오래가지 못하게 했다. 하루하루 일에 치이다 보면 어떤 감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약간의 불안함과 더 많은 피곤함이 계속되는 시간의 연속이 있을 뿐이었다.

연말 승진자 명단에 신성일 상무와 김상도 부장이 올랐다. 직급이 높은 순서로 발표되는 승진자 명단에 신성일 전무와 김상도 상무라는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한지은 대리라는 이름도 보였다. 팀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한 팀에서 이렇게 많은 승진자가 나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코털은 만취한 채 길을 걷다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져 코가 깨졌다. 부은 코에서 삐져나온 코털은 더욱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매일 축하 회식이 이어졌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매일 아침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며 출근을 해야 했다.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인사배치 문서가 떴다. 신성일 전무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지사장으로 발령받았고, 코털과 나는 유비쿼터스 파견근무 발령을 받았다. 유비쿼터스와 맺은 투자협약서에서 대형그룹이 파견하기로 한 재무이사를 코털로 정한 것이다. 내심 이번 승진으로 본사에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코털은 실망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특유의 하회탈 얼굴로 돌아왔다. 동기들은 승진하자마자 자회사로 나가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의 영문학 스승들은 변방으로 가라고 나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싸가지와 박찬영이 세운 회사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인애라는 여자도...

대형그룹에 첫 출근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대형그룹의 건물은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지만, 올림픽 공원 옆 골목길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유비쿼터스의 건물은 나를 소박하고 정답게 반기는 듯했다. 회사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직원들은 거의 내 나이 또래였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회사에 잔심부름이나 하고 상사 눈치를 보면서 상사가 지시한 내용을 문서로 옮기는 대형그룹의 내 동기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활발하게 토론했다. 미팅에서 그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나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하루를 버티나?’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감옥에 들어가는 죄수처럼 출근을 하는 대기업의 직원과 달리 유비쿼터스의 직원들은 출근을 기다리는 듯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물론 경제적 기대감도 있었다.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비쿼터스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을 바랐다면 강도 높은 업무량을 감내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주말에도 다른 스케줄이 없으면 회사에 출근했다. 같이 출근한 직원들과 차를 마시면서 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끔 싸가지가 주말에 출근한 직원들에게 피자를 쏘면 함께 웃고 떠들며 피자를 먹기도 했다. 그들에게 유비쿼터스는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직원들은 모두 영어 이름을 갖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한글 이름과 영어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 저녁에 집에 가서 사진과 한글 이름과 영어 이름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외우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비쿼터스에서의 생활이 순조로울  같지는 않았다. 부사장으로 발령받은 코털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대형그룹에서 파견 근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신입사 원인  알고 반갑게 인사하던 친구들도 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형그룹이 인정한 스타트업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투자를 했으니 엄청 갈구겠지 하는 복잡한 마음이 읽혔다. 코털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사실이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나를 ‘스파이라고 불렀다. 나는 대형그룹에서도 유비쿼터스에서도 ‘스파이 노릇을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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