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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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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May 15. 2022

[소설] 연결 9

인수

대형그룹과 유비쿼터스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한 달 뒤였다. 장소는 이전과 동일하게 대형 호텔 비즈니스룸이었다. 지난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임상혁과 박찬영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대기업과 협상하고 있는 벤처기업 임원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유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으니 그들의 여유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옆방에 회장님이 계실까?’

지난 협상   회장이 옆방에서 휴식 시간마다 신성일 상무로부터 협상 진행 보고를 받았다는  과장의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신성일 상무는 먹잇감의 약점을 찾고 있는 늑대의 눈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제안은 간단합니다.”

신성일 상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수지분이 아니라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는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기업가치를 1,000억 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도 동일합니다.”

임상혁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신성일 상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었다.

“다만, 저희는 유비쿼터스가 필요한 자금을 전환사채와 전환상환 우선주로 투자를 할 예정이며 2년 뒤 유비쿼터스의 실적에 따라서 보통주로의 전환 비율이 달라지는 구조를 원합니다.”

전환사채나 전환상환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2년 뒤에는 보통주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연히 회사 경영에도 관여할 수 있다. 신성일 상무는 2년 뒤 유비쿼터스의 매출과 이익이 높을수록 대형그룹은 적은 지분율을 가져갈 것이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낮을수록 대형그룹이 많은 지분율을 가져갈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싸가지에게 넘겼던 협상 시나리오에 있던 내용이다.

“회사의 재무 실적에 따라서 기업가치를 달리 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임상혁의 대답에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2년 뒤 실적에 따라서 대형그룹의 지분율이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유비쿼터스의 기업가치를 기존에 제안 주셨던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올릴 것을 제안드립니다.”

신성일 상무의 눈이 커졌다. 회장에게 허가받은 유비쿼터스의 최대 기업가치는 3,000억 원이다. 임상혁은 곁눈으로 박찬영을 쳐다보았다.

“현재의 상승 추이에 있는 유비쿼터스의 트래픽을 고려하면 머지않아 광고 매출이 늘어날 것이고 그 후에는 모바일 커머스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두 사람은 자신 있는 눈빛을 교환했다. 임상혁은 박찬영을 바라보던 눈빛을 거두고 다시 신성일 이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신성일은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자고 말을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신성일 상무가 옆 회의실에 있을 것이 분명한 회장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회의는 30분 뒤에 다시 시작되었다. 신성일 상무가 먼저 말했다.

“유비쿼터스가 제안하는 가격을 인정해드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사회 1석을 대형그룹에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재무담당 이사를 대형그룹에서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임상혁에게 건넨 인수협상계획 보고서에 있던 내용이었다. 현재 유비쿼터스의 이사회는 임상혁과 박찬영  내부 임원과 임상혁이 모셔온 사외 이사로 구성되어있고 임상혁이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다. 이사회 1석을 대형그룹에서 가져간다고 해도 주요 의사결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저희가 제안드리는 바의 전부이며 오늘 이 제안의 수락여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신성일은 느슨한 거래조건 끝에 벼랑 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성일의 벼랑 몰기보다는 의외로 느슨한 거래 조건에 같이 참석한 대형그룹 사람들은 놀라고 있었다. 아마 인수협상계획 보고서를 보지 못한 이들일 것이다.

임상혁은 대형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후로 약 1시간에 걸쳐서 딜 구조의 큰 그림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 세부적인 것은 양사의 로펌들끼리 협의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3시간에 걸친 회의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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