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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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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May 01. 2022

[소설] 연결 8

범죄

내가 싸가지에게 인수협상전략 보고서를 넘기기로 결심한 것은 전적으로 코털 때문이다. TFT 수장이 교체되면 신성일 상무는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고, 코털은 이번에도 승진은 물 건너간 것이니 머지않아 역시 회사를 곧 떠날 운명이었다. 신입사원은 업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받지 않으려는 다른 팀장들과는 달리 기꺼이 나를 받아주었을 뿐 아니라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분이다. 최근 새치처럼 하얗게 변한 코털만 제외하면 꽤 괜찮은 사람이다. 어떻게든 이번 딜을 성사시켜야 한다. 내가 며칠 밤을 새워가며 찾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결코 나의 성과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절대 싸가지나 박찬영 이사가 들려준 인애라는 여자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코털 때문이다.

스마트폰 구입 후 책상의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던  쓰는 피쳐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속도도 느리고 심지어 가끔 멈추기도 하지만 카메라 성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용도가 끝나면 버려도 아깝지 않다. 1 협상 후에  과장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협상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구조와 회사에서 제시할 인수 금액에 대한 초안을 작성했다. 코털은 이번에도 잘했다고 자상하게 칭찬을 했고 본인이 수정을  후에 신성일 상무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신성일 상무는 자신이 다시 수정한 후에 비서실을 통해서 회장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내가 찾아야  문서는 신성일 상무가 비서실에 보낸 마지막 보고서다.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아마도 싸가지와 나의 운명도  모든 것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신성일 상무는 자신이 검토해야 할 보고서를 반드시 출력해서 본다. 회사는 뭐 그리 숨길 것이 많은지 보안 때문에 페이퍼리스 보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신성일 상무는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보고서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그 많은 보고서를 출력해서 형광펜으로 정성스럽게 색칠을 하면서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모든 팀원이 알고 있다.

신상무가 사무실에 없는 것을 확인한  평소 친분이 있는 신상무의 김비서에게는 상무님 보고서를 가지러 심부름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신상무의 방에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예상대로 회장에게 보고할 보고서는 왼쪽 선반 위에 놓여있는 파일 집에 정리되어 있었다. 보고서는 내가 작성한 초안보다 분량이 늘어 10페이지에 달했다.  이렇게 많이 썼나 투덜거리면서 1장씩 조심조심 사진을 찍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려서 사진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흐리게 찍힌 페이지는 다시 찍었다. 너무 오래 있으면 김비서가 의심할까  서둘러서 사무실을 나왔다.

“보고서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빈손으로 나가는 나를 보고 비서가 말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나는 서둘러서 신상무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 프린터기에 있는 A4 용지 몇 장을 집어서 겨드랑이에 끼고 김비서에게 살짝 미소를 보이면서 신상무 방을 빠져나왔다.

싸가지에게 메일로 보낼까 하다가 흔적을 남기기 싫어 사진을 보여주고 스마트폰은 버리기로 결심했다.

“왜 마음이 바뀐 거예요?”

나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던 카페에서 다시 만난 싸가지가 물었다. 싸가지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발각되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없는데 내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나도  마음을  수가 없었으니까. 싸가지는 폰에 찍힌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더니 메모도 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카페를 나섰다.

공덕역에서 내려 마포대교 쪽으로 걸어가는 나의 심장은 다시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CCTV 찍힐까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가 없을 법한 길로 돌아서 마포대교 위로 올라갔다. 다리 가운데에 이르자 SOS 생명의 전화가 보였다. 다리 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뻔했던 사람들을 구했다는  전화다. 싸가지의 핸드폰은  인애를 구하지 못했을까. 나는  이런 순간에 싸가지와 인애라는 여자를 떠올리고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역할을 모두 수행한 피쳐폰을 주저 없이 강을 향해 던졌다. SOS 생명의 전화가 구하려고 하는 대상에 피쳐폰은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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