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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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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Apr 03. 2022

[소설] 연결 6

계륵

유비쿼터스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팀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

임상혁  싸가지 없는 자식 우리를  보고 있는 거예요. 어린놈이 간도 크지.”

팀 대책 회의에서 코털이 그 답지 않은 말투로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마음이 급해진 코털은 우리가 먼저 가격 제시를 하자고 말했지만 신성일 상무는 우리가 제시하는 가격이 협상의 기준점이 돼버릴 거라면서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기 싫은 것이다. 임상혁의 기분 나쁜 제안이 생각나서 팀에 공유할까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엉망진창인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TFT 수장인 신성일 상무는 대형그룹 입사 25년 차로 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쳐 2년 전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올해 임원 계약이 만료된다. 나의 직속상관인 김상도 부장은 올해 그룹 입사 20년 차로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둥글둥글한 성격과 넓은 인간관계로 주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인사적체를 겪고 있는 대형 그룹에서 좀처럼 임원 승진의 기회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신성일 상무에게도 김상도 부장에게도 이경도 회장이 직접 지시한 이번 프로젝트는 굉장히 중요하다. 일의 성패에 따라서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뀔 것은 명약관화했고 두 사람이 느끼는 중압감과 긴장감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신성일 상무가 싸가지에게 추가적인 협상을 제안했지만 기존의 입장만 반복할 뿐 요지부동이었다. 다급해진 신성일 상무는 나에게 다른 타깃을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지만 마땅한 회사가 보이지 않았다.

프로젝트 진행이 더디자 TFT 수장이 바뀔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임원 인사과에서 근무하는 입사 동기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로 유배가 있던 이재영 상무가 본사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지만, 회사 선배들을 통해서 회장의 애물단지라는 아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이경도 회장은 아들에게 그룹의 미래 사업을 맡긴다는 계획 아래 수많은 벤처들을 쏟아내는 스탠퍼드 대학에 이재영을 입학시켰고 입사 후 그에게 그룹의 모바일 사업을 총책임 지도록 지시했지만 그는 회장이 맡기는 일마다 그르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의 전략은 모바일 벤처기업들이 하는 사업모델을 대형그룹에 이식하고,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서 마케팅하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은 복사를 하되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판세를 뒤집을 계획이었다. 그는 메신저, 커머스, 게임 등 모바일 회사를 우후죽순으로 설립하였고, 재벌 2세의 파워를 십분 활용하여 본사 조직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하고 마케팅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아직 모바일이 발달하지 않은 동남아시아 및 중동 지역에 똑같은 모델로 확장하기 위해서 해외지사를 만들었다. 대형그룹이 하는 사업이라고 하니 해외에서도 좋은 인력들이 많이 모였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이재영이 세운 회사들은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어 초기에는 사용자들이 몰려들었으나 한번 사용해 본 사용자들의 재사용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서비스의 질이 사용자들의 젊은 감각을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재영이 세운 회사는 채 5년이 지나지 않아서 모두 청산했고 1조 원이 넘는 투자금액을 날리고 말았다. 아들의 실패를 본 이경도 회장은 인수합병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몇몇 업체를 인수할 때 이재영이 전면에 나섰지만, 그의 높은 자존심과 오만한 태도 때문에 협상이 깨질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경도는 신성일 상무를 투입하여 급한 불을 껐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깨질 때마다 이재영의 폭력성은 더욱더 심해졌다. 대형 그룹 직원들은 그의 곁에 가기를 두려워했고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별별 핑계를 만들어 댔다.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좋은 인재가 이재형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서 프로젝트가 다시 망가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경도에게 아들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는 고민 끝에 이재영에게 팔로 알토(Palo Alto)에 있는 대형그룹의 벤처캐피털 회사를 맡겼다. DH인베스트먼트는 대형그룹의 자회사이기는 하지만 소규모 자금으로 실리콘밸리의 벤처들을 대상으로 실험적인 투자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회장의 아들이 500억 원의 자본금을 가진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자존심 상한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3년 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본사 임원들에게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이재영이 이제 한국 본사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너도 빨리 다른 부서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인사과 입사동기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던진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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