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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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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Mar 19. 2022

[소설] 연결 4

만남

유비쿼터스와  협상 . 회의는 보안을 위해 대형그룹 본사가 아닌 대형그룹 소유의 호텔 비즈니스 룸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회의실 세팅, 음료수와 다과 준비, 참가자들의 동선을 고려한 자리 배치  회의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의실 안쪽에는 신성일 상무, 김상도 부장, 그리고 나를 비롯한 실무자들이 앉았다. 유비쿼터스  참가자들과 이번 딜의 거간꾼인 JM투자은행 직원들이 조금 늦게 도착해 출입구  자리로 안내받았다. 어두운  정장과 넥타이 차림의 대형그룹과 JM투자은행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유비쿼터스의  사람은 청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신성일 상무에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안녕하세요. 유비쿼터스 대표이사 임상혁입니다.”

꿈에서 본 남자다. 꿈에서 얼굴을 확실하게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와 체형, 그리고 뭔지 모를 어두운 분위기는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남자는 꿈에서와 달리 칼을 맞지도 피를 흘리지도 않았다. 20살 이상 나이 많은 신성일 상무에게 지어 보이는 자신 있는 표정과 커다란 손으로 신성일 상무의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을 잡고 악수하는 그의 모습은 꿈보다 더 비현실적이었다.

“저는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같이 온 남자는 자신을 기술이사라고 소개했다. 임상혁의 당당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땅을 보면서 악수하는 그의 모습은 수줍은 소년 같았다. 회사 소개 자료에 그가 임상혁과 같이 회사를 설립했고 현재 2대 주주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는 꿈에서 본 남자의 잔상을 없애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몇 번씩 깊은 심호흡을 해야 했다. 코털은 내가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긴장한 줄 알고 작은 목소리로 응원해주었다. 코털은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신성일 상무를 설득하는 쓸데없는 자상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밤을 새우며 준비한 대형그룹과 유비쿼터스가 협업할 경우 창출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설명했다. 글을 쓰고 싶었던 나의 꿈이 회사에서 보상받는 순간은 보고서를 쓰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가 유일했다. 딱딱한 비즈니스 용어로 가득 찬 기존의 보고서와 달리 적절한 비유와 문학적 표현이 들어간 말랑말랑한 보고서를 꼰대들은 좋아했다. 나의 발표를 들은 유비쿼터스 측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말랑말랑한 분위기도 잠시, 구체적인 거래 조건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유비쿼터스가 보유한 회원의 증가세는 인상적이지만 매출은 아직 저조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충성도가 높은 회원의 가치를 인정해서 1,000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업 실사를 해서 회원이 진성회원인지, 재무제표에 이상이 없는지 등을 확인해서 문제가 음을 전제한 제안입니다.”

나는 신성일 상무의 말을 노트북에 타이핑했다. 토시 하나도 틀리면 안 된다는 김상도 부장의 협박과 타이핑 소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나의 손가락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저희는 100% 지분 인수를 원합니다.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으시다면 유비쿼터스에서 원하는 가격을 제시해주십시오. 이사회 통과를 전제로 그대로 수용하겠습니다. 물론 경영진이 이사회 통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조건은 앞으로 5년간 현재 경영진은 유비쿼터스를 위해서 일을 하셔야 합니다.”

5년 동안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를 우리 쪽으로 이전시키겠다는 전략은 이해를 했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에 매수하겠다는 말을 받아 적는 나의 손가락은 놀라서 잠시 멈칫거렸다. 한 번도 이경도 회장의 결정에 반대한 적이 없는 이사회를 설득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사회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게 바로 백지수표라는 거구나.’

1,000억 원이라는 숫자는 예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성일 상무는 가격이 얼마든 간에 유비쿼터스를 살 생각이었다.

“저를 비롯한 회사의 주요 주주들은 주식을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상혁이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의 대답에 나의 손가락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 미끼를 던지면 덥석 물것이라고 예상했던 신성일 상무의 눈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유비쿼터스의 가치를 높게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제안드리는 바는 대형그룹에서 신주로 20%의 지분만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회사에 현금이 부족해서 대형그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식을 팔지 않고 제 손으로 회사를 더 키우고 싶습니다. 물론 한지은 사원님이 설명해주신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임상혁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지만 나는 그의 눈을 피해 다시 타이핑에 집중했다.

“저희 대형그룹은 소수 지분 투자는 하지 않습니다.”

신성일 상무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딜을 성사시켜 수수료를 챙겨야 하는 거간꾼 JM투자은행에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번의 휴식 시간을 갖고 긴 협상이 계속되었지만 진전이 없었다. 두 회사의 의견 차이가 좁혀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협상 일정에 대한 말도 없이 꿈에서 봤던 남자는 회의실을 떠났고 신성일 상무와 코털의 표정은 굳어졌다.

협상이 진행되던 회의실 옆 방에 이경도 회장이 있었고 신성일 상무가 회의 중간중간에 진행사항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박 과장님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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