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
2박 3일간의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첫 출근 날. 엄마는 본인이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침밥을 차리고, 정장을 다리고, 회사에서 먹을 간식과 홍삼 진액을 챙겨주셨다.
“아유, 엄마. 내가 알아서 해요. 왜 이렇게 오버하고 그러실까?”
“네가 그동안 작가 된다고 취업 준비도 많이 못했는데.. 대기업에 떡 하고 합격해서 첫 출근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대견스러운 지 모르겠다. 요즘 밖에 나가면 축하 인사받느라 정신이 없어.”
“신입 사원 때 이미지가 평생 가는 법이다. 회사 선배 그리고 동기들에게 좋은 인상 남겨야 한다.”
오늘도 골프 라운딩 나갈 준비를 하던 아빠도 자랑스러운 딸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라운딩 하면서 딸 자랑을 얼마나 하실까...
첫 부서로 배치받은 곳은 모바일 사업 본부였다. 대형그룹의 모바일 서비스 개발 및 사업화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홍보실이나 중소기업과 협업을 담당하는 부서로 가고 싶었지만 인사팀 바보들은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 나를 모바일 사업본부로 배치했다. 회사는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긴 나도 회사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대형그룹과 같은 대기업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놀고 있을 수는 없어서 취업준비를 했고 친구들의 질투와 시기를 한 몸에 받으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합격은 했지만 내 꿈을 회사에서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아니, 아직 나에게 꿈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어쩌면 회사에서 배운 세상이 훗날 자신의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카프카도 보험회사에서 다니면서 소설을 썼고 헤밍웨이도 기자를 하면서 글을 쓰지 않았던가? 많은 소설가들이 그랬듯이 대형그룹에 위장취업을 해서 소설을 쓸 생각이다.
첫 출근을 하고 한 달쯤 지나서 팀장이 미팅을 요청했다.
“한지은 사원, 회사에 중요한 TFT가 생기는데 한사원이 합류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TFT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회장님의 지시로 소셜 네트워크 회사를 인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사내 일급 보안 사항이니 팀 내 다른 팀원들에게도 공유하면 안 됩니다.”
설상가상이다. 스마트폰도 안 쓰는 내가 소셜 네트워크 회사 인수합병 프로젝트라니. 회사는 정말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회사 일급 보안사항이라는 단어가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들어있는 어깨를 더욱 세게 눌렀다. 당황하고 황당했지만 팀장이 이렇게까지 제안을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신입사원이 이처럼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팀장이 비서실에서 TFT 인원을 빼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서 모바일 사업 본부 업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나를 추천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TFT 룸은 회장님 직무실 바로 아래층인 24층에 꾸려졌다. TFT룸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내 모습을 팀원들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의 임무는 국내외 소셜 네트워크 업체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서비스의 장단점과 어떤 기업이 대형그룹과 시너지를 내기에 가장 적합한 기업인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미쳤다.
TFT로 발령받은 첫날. 제일 먼저 TFT룸으로 출근했다. 아직 새벽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출근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시작되는 TFT업무는 나에게 커다란 난관을 예고하고 있었다. 남들이 다 쓰는 5G 스마트폰도 쓰지 않고 3G 피쳐폰을 쓰고 있는 나에게 소셜 네트워크 시장조사는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모바일 서비스는 사용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야 업체마다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다. 아무리 위장취업이지만 입사 후 첫 업무이므로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나는 평소 생활패턴을 바꿔야 할 위기에 처했다. 사내 리서치 기관의 보고서나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분석자료로 시장조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나만의 살아있는 분석을 해서 TFT 구성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 생겼다. 사람의 욕심은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구입해서 서비스를 이용해봐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점심시간에 대형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통신사에 가서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스마트폰 역시 대형그룹이 제조한 브랜드다. 스마트폰을 개통하자마자 앱스토어에서 소셜 네트워크 앱을 모두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했다. 나는 사람들이 남들이 올려놓은 음식, 맛집, 여행지 등을 보는 것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톡 알람 소리도 회사에서는 업무를, 퇴근 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포스팅을 구경하다가 앱에서 제공하는 친구 찾기 기능을 발견했다. 내 이메일과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을 모두 알려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친구들 정보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관계 맺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약관에 자신도 모르게 주소록에 있는 친구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알고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고 개인 정보가 네트워크 상에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보안이 뚫려서 고객들의 정보가 해커나 스미싱 업체들에게 제공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덕분에 보안업체들의 주가가 연일 상승하고 있었다. 보안이란 마치 인간 스스로 구멍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서 그 구멍에 다른 사람이 못 들오게 하는 장치같이 느껴졌다.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서 친구 요청하기와 수락하기, 포스팅 하기,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을 사용해보고 서비스별 장단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회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기업 인수를 지시했을까?’
나는 긴 머리를 고무줄로 꽁꽁 묶고 볼펜 끝을 입에 물고 회장님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업체가 대형그룹에 어울릴까?’
답이 떠오를 리 없다. 막연하고 막막한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