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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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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Feb 19. 2022

[소설] 연결 1

  남자 꿈을 꾸었다. 며칠째 같은 꿈이다.  남자가 괴한들에게 쫓기다가 붙잡혀서 칼을 맞는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남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다가가서 얼굴을 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남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한다.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누굴까?

괴이한 느낌과   없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그의 옆구리에 꽂혔던 칼과 붉은 피를 떠올리자 속이 메스꺼워졌다. 옆구리를 어루만지면서 피쳐폰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에 늦었다. 서둘러서 책과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운 좋게 잡은 지하철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대부분 유튜브 시청을 하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간간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었지만 종이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가끔 신기하다는 듯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수님은   없이 떠들어댔고 학생들은 태블릿이나 노트북에 교수가 내뱉은 말을 정확하게 타이핑했다. 교수의 말은 실시간으로 디지털화되고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노트에 라미 만년필로 필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옛날 사람이라며 놀렸지만 나는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이 좋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영문학과 건물을 나섰다. 중간고사가 끝난 캠퍼스는 한가했다. 작가를 꿈꾸면서 처음 발을 디뎠던 캠퍼스.  개월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비는  같다. 4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친구가 별로 없다.  방의 책장에 꽂혀 있는 그리고  이상 꽂을 공간이 없어서 책장 옆에 산처럼 쌓아 놓은 책이  친구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브론테 자매, 토마스 하디, 찰스 디킨스가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소설가를 꿈꾸면서 글을 썼지만 공모전에   떨어지고  쓰는 재능이 없음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책장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새로 출간된 소설들이 하나둘  쌓여갔고, 몰스킨 다이어리에는 빽빽한 글씨로 기록한  역사가 쌓여갔다. 책과 노트는 누구도 건드릴  없는  성역이고 보물이다.

내가 작가의 꿈을 포기한 것을  아빠는 그럴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IT회사에 취직하라고 말했다. IT회사 주식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아빠는 제조업의 시대는 갔고, 세상은 갈수록 디지털화될 것이라고 식사 자리 때마다 열변을 토했다.

철기 시대에 돌로 만든 무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  굶어 죽기 좋다.”

컴퓨터를  줄도 모르던 아빠가 IT 대해서 말하는 것이 우스웠지만,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의기소침해있던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아빠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나와 무관한 일이지만 아빠는 돈이 많다. 아빠는 부동산 투자로 자수성가하신 분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서울과 경기도 신도시 지역에 아파트와 상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임대수익에 양이 차지 않은지 몇 년 전부터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위에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모여서 주식정보도 교환하고 기업 탐방도 같이 가고 골프도 친다고 했다. 다른 주식 동호회에서는 돈을 모아서 한 계좌로 같이 투자를 하다가 돈을 가지고 해외로 도피하는 등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하지만 아빠가 나가는 동호회에서는 한 번도 그런 사고가 없었다고 엄마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빠의 부는 언제나 엄마의 자랑거리였고,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아빠는 언제나 신격화되어서 엄마가 말하는 사람이 진짜 우리 아빠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돈만 좇고 살아가는 부모님이 탐탁지 않았다.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부모로서 사랑하는 것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존경하지는 못한다.

아빠의 잔소리가 귀찮았지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던 나는 대형그룹에 입사원서를 넣었다. 대형그룹은 원래 스마트폰 제조업체였으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같은 소프트웨어 사업에도 진출했고, 시민단체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통신사까지 인수했다는 기사를 봤다. 최근에는 소셜 네트워크나 모바일 게임사업도 넘본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고 있다. 아빠가 말한 완벽한 IT 회사였다. 그런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대형그룹에 합격한 것은 나도 이해할  없는 기적이었다. 분명히 행정착오라고 생각하고 재차 확인했으나, 인사팀 사원은 분명히 합격한 것이 맞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형그룹에서 합격 통지를 받던 , 다시  남자 꿈을 꾸었다. 얼굴 없는 남자는 그날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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