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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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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Apr 17. 2022

[소설] 연결 7

인애

최근 회사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나에게  혼란을 주었다. 꿈속에서 만난 남자를 현실에서 만나고, 싸가지 없는 남자는 황당한 제안을 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TFT 분위기는 말이 아니다. 마음이 심란할  항상 가는 곳이 있다. 용인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에 보이는 붉게 물든 나무들은 입사  정신없이 살아온 나에게 가을이 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나무를 보면 할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편해진다. 젊어서 상처한 할아버지는 평생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면서 사셨다.  남매를 대학까지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내느라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같이 크고 넓은 분이셨다. 어렸을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할아버지 집에서  때에도 할아버지는 나를 세심하게 보살펴 주셨고 무척이나 사랑해 주셨다. 날마다 산에 같이 올라 나무와  이름을 알려주시고, 산열매도 따서 나눠먹으면서 손녀에 대한 사랑을 베푸셨다.

“지은아.”

“네, 할아버지.”

“우리 지은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누?”

“저는 유명한 작가가 될 거예요.”

“뭐가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나무를 닮으면서 살아가거라.”

“어떻게 하면 나무를 닮을 수가 있어요?”

“할애비 생각에 네 마음속에는 이미 크고 튼실한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 같구나.”

몸이 허약한 내 마음속에 크고 튼실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나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말은 무엇이든 그냥 좋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평생 흘릴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아빠, 삼촌, 고모들은 ‘가실 때가 돼서 가셨다. 호상이니까 괜찮다.’라고 말했다. 호상이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단어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호상이라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불완전한 한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나무처럼 살아가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면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항상 자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대형그룹 한지은 사원님?”

납골함 앞에 걸려있는 할아버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에 꽃을 한가득 든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다. 사람들이 말총머리라고 부르는 긴 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작고 마른 몸에 화사한 꽃이 한가득 안겨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 비즈니스 룸에서 봤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약 5초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나서야 겨우 생각이 났다. 회의 때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싸가지 대표와 함께 와서 자신을 기술이사라고 소개했던 박찬혁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할아버님?”

할아버지의 납골 사진을 보고 그가 말했다.

“네. 그런데 이사님은 여기 무슨 일로…”

그는 대답 대신 옆 칸의 납골함을 바라보았다. 아이보리 색의 작은 납골함에 젊은 여자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임인애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사진 속의 주인공이 싸가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혁이, 아니 임 대표의 동생입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박찬혁이 말했다.

“인애 때문이었는데…”

“네?”

“우리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

치지 못한 편지도 인애 때문에 우리가 기획했는데…”

나는 ‘우리’라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평소의 느릿느릿한 말투였지만 박찬영은 안경 너머 커다란 눈을 반짝이면서 인애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애는 싸가지 대표의 4살 어린 여동생이었다. 싸가지의 아버지는 동생 인애를 끔찍하게 사랑했었다. 싸가지는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었는지 살가운 정이 없었지만, 인애는 어렸을 때부터 애교가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 딸이 보고 싶어서 회사 회식이나 친구들과 저녁 모임이 있어도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일찍 귀가했다. 아빠는 편애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애를 사랑했고 인애에게 아빠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아빠는 항상 인애를 먼저 재우고 자신의 잠자리를 청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빠 배 위에서 잠들었던 인애는 커서도 엄마보다 아빠 품에서 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 딸을 보면서 엄마는 질투심도 느꼈지만 같이 잠든 부녀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인애가 초등학교 때 갑자기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음주 운전자의 뺑소니 차에 치여서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다. 인애는 너무 어려서 아빠의 죽음과 부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밤마다 아빠한테 데려달라고 떼를 썼다. 아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인애는 밤바다 칭얼대기 시작했다. 오빠나 엄마가 야단을 치거나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아빠, 어디 있어? 아빠 오라고 해!’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인애의 성격도 급변했다. 그렇게 잘 웃고 애교 많고 말 많던 아이가 하루에 한 마디 할까 말까 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로 변해버렸다. 병원에서는 초기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성격은 사춘기가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가끔 오빠에게 이런저런 속내를 비치곤 했지만 엄마와도 친구와도 거의 대화가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밥을 먹을 때 말고는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싸가지의 친구인 찬혁에게 수학 과외를 받기 시작했고 인애는 찬혁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상혁이는 마음이 불안정한 인애를 항상 걱정했어요. 상혁이가 인애를 너무 아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둘이 같이 잔다는 소문도 돌 정도였으니까요. 과외 수업 중에 녀석이 10분마다 들어와서 감시하는 바람에 수업이 제대로 진행이 안될 정도였어요.”

찬혁이 이야기 도중 한 말이었다.

인애의 우울증은 약간 호전되는 듯했지만, 어느 겨울날 새벽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몸을 던졌다. 엄마와 상혁은 인애와 찬혁이 갖고 있었던 감정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인애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애가 떠나던 날, 상혁의 핸드폰에는 17개의 부재중 수신 전화가 와있었다. 모두 인애로부터 온 것이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핸드폰을 꺼놓고 공부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하필 그 시기에 인애는 스스로 삶을 등지고 만 것이다. 119 소방대원은 인애를 아파트 풀밭에서 발견했을 때 인애가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애가 겪었을 그 끔찍한 마지막 순간에 연락되지 않은 상혁은 인애의 죽음이 오빠로서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자기 잘못이라고 말했다.

인애의 장례식 . 인애의 죽음을 인정할  없었던 부모님은 부고를 내지 않았다.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인애의 같은  친구들  명과 상혁의 친구들   이외에 조문객은 없었다. 아직 피어 보지도 못한 여자 아이를 보내기에는 너무도 적막한 장례식이었다. 찬영은  일상의 마지막  밤에 찾아갔다. 엄청난 망설임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굳은 얼굴로 장례식장에 들어왔으나 인애의 영정사진을 보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한참을 울었다. 엄마도 찬영의 얼굴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찬영은 끝까지 인애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를 끝낸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슬픈 이야기였지만, 싸가지에 대한 관심을 애써 지우려던 나는  박찬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내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러니까 상혁이와 나는 회사에 대해 진심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그게 다인데…”

그때 알았다. 유비쿼터스라는 회사와 인애라는 여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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