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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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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Jun 25. 2022

[소설] 연결 12

폭발

최악의 파티 이후로 싸가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회사에서 마주쳐도 대면대면 가벼운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 듯 잠시 멈칫거리다가 이내 회의실로 들어가거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비록 회사에서 스파이로 불리고 있지만 에너지 넘치는 회사 분위기와 또래 동료들 때문에 겨우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 회사에 가는 것도 싫어졌다. 나의 변화를 감지한 코털은 걱정하기 시작했고 나를 위해 재무팀 회식을 제안했다. 본사에서 근무할 때도 제안을 했지만 직원들의 호응도가 낮아서 번번이 실패했던 회식 프로젝트를 재가동한 것이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마음을 쓰는 코털의 정성이 갸륵해서 회식에 응했다. 재무팀의 다른 직원들도 내키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지만 코털과 내 환영식도 제대로 못했다면서 회식에 동의했다. 걔 중에는 주주사에서 파견 나온 스파이들이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저녁시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싸가지 때문에 얽혀있던 마음을 살살 풀어주는 듯했다. 회식 분위기는 좋았다. 코털은 특유의 하회탈 웃음과 친화력으로 팀원들을 다독였다.

“나와 한지은 대리가 대형그룹에서 파견 나왔지만 말이야 유비쿼터스를 감시하러 온 게 아니란 말이지. 대형그룹과 유비쿼터스가 서로 잘 되기 위해서 파견된 거 뭐냐, 그래, 메신저 같은 역할을 하는 거라고.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스파이 취급을 받아서 내가 힘들어한다고 생각한 코털은 나와 다른 팀원들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안쓰러우리만큼 노력을 했다. 다른 팀원들은 동의하는 듯 마는 듯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코털은 계속 회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옷에 삼겹살과 소주 냄새를 잔뜩 묻히고 거리에 나왔다. 늦여름 바람은 나의 기분과 상관없이 무척 시원하게 느껴졌다. 직원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서 혹은 집에 들어간다고 전화를 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폭발음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우리 일행을 비롯한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멍하게 서 있었다. 순식간에 교통이 마비되었다.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운전자들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뭐야? 왜 안 가고 있는 거야?”

100미터 정도 앞의 빌딩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만 화난 운전자들의 분노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저 건물…”

시커먼 연기에 휩싸이고 있는 건물이 대형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IDC 센터라는 것을 알아본 것은 코털이었다. IDC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을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의 공장 같은 곳이다. 폭파된 IDC 국내 최대 시설을 자랑하는 대형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IDC 센터 폭파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한다는 의미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기 위해서 택시 앱을 켰지만 셀룰러도 와이파이도 먹통이었다. 한참을 걸은 후 간신히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 TV를 켰지만 인터넷 기반의 IPTV 역시 먹통이었다. SNS 접속도 유튜브 시청도 불가능했다. 나는 세상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정보의 암흑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했다. 다행히 회사 컴퓨터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서 간밤의 뉴스를   있었다. 상점들은 카드결제가 불가능해서 장사를  수가 없었고, 근처 회사의 업무도 마비되었다. 중요한 업무 전화가 끊어져 거래처를 잃어버린 세일즈 맨도 있었고 회식을 하러 식당에 갔던 샐러리맨들은 카드가 안된다는 말에 근처 은행에 갔다가 현금인출기도 먹통인 것을 알고 어쩔  몰라했다. 학원을 마친 초등학생이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고,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노인이 119 전화하지 못해서 사망했다. 뉴스를 통해서   밤의 세상은 1980년대였고 IDC 폭발로 시작된 타임머신은 오늘까지도 작동하고 있다.

대형그룹은 신속한 복구를 약속했지만 복구에는 적어도 열흘 이상 걸린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열흘 동안 지옥을 맛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감을 참을 수 없었다. 국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여객선이 침몰했을 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일부 언론들은 현 정부의 재난대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형그룹 IDC 폭파, 북한 소행으로 추정’

‘폭파가 난 시점에 대통령은 뭐 하고 있었나?’

‘IT 대국 대한민국의 민낯’

폭파 원인을 찾기 위해 국과수가 투입되었지만 뾰족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대혼란에 빠지고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정부와 민국당은 화난 민심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에게 대악재였다. 야당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기본적인 통신 인프라가 무너진 나라가 나라냐며 야당은 연일 정부와 여당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싸가지에게 전화가 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좀 와줄래요?”

이 남자는 자기가 필요할 때에만 나를 찾는다. 전화를 끊어버릴까 생각했지만 힘이 하나도 없는 그의 목소리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거기가 어딘데요?”

“한국 병원 응급실 밖이에요.”

'응급실 밖? 사고가 났거나 몸에 탈이 났으면 응급실 안에 있어야지 왜 응급실 밖에 있지?’

전화를 끊고 바로 택시를 탔다. 그는 응급실 입구에 있는 벤치 위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여기서  하고 있어요?”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용히 다가가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괜찮아요.”

그의 머리가 조용히 나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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