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14회 우리 오빠 꿈은 파일럿

장편소설

by 가야

14회 오빠의 꿈은 파일럿


아침 일찍 밭에 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지게를 진 아버지는 저만큼 앞서서 가고, 몸빼 차림의 엄마 뒤를 오빠와 내가 따른다. 지금 우리는 앵밑에 있는 고추밭에 가는 중이다. 고추밭에는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심어놓은 수박과 참외가 있다.


밭으로 가는 길은 산과 인접해 있어 산에서 흐르는 크고 작은 물줄기를 심심찮게 만난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길가 고인 물을 손이나 나뭇잎으로 마시면 된다. 잘 익은 산딸기도 밭에 가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거무스름한 산딸기를 우리는 고무 딸이라고 부른다. 고무 딸은 빨간 산딸기에 비해 훨씬 달고 크기도 크다.


산딸기를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입술이 새까매졌다. 언니는 내가 따라다니는 것을 까무러칠 정도로 싫어하지만 오빠는 그렇지 않다. 길을 걷다가 맛있는 열매를 발견하면 나 먼저 준다.


“풀 많은 데 가지 마라. 긴 짐승 있을지 모르니께.”


긴 짐승이란 뱀을 가리키는 말이다. 엄마는 몇 번씩이나 뒤를 뒤돌아보며 우리에게 거듭 당부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오빠와 나는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다. 잘 익은 산딸기를 만나면 엄마 말은 까맣게 잊고 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느네들과 함께 가다가 날 저물겠다. 나 먼저 갈팅게 천천히 오거라.”


엄마는 아버지 뒤를 쫓아 종종걸음을 친다. 엄마의 머리 위에 얹혀있는 광주리가 점점 멀어진다.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나 신기하다.


엄마는 짐(물건)을 항상 머리에 인다. 매일 아침 담배창고 마당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올 때도, 빨래를 하려 냇가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물건이 직접 머리에 닿으면 배기고 아플까 봐 짚으로 만든 똬리를 정수리 위에 올려놓고 똬리에 연결된 가느다란 끈을 입에 문다. 그런 다음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올려놓으면 그 짐은 엄마와 한 몸이 된다. 그렇다고 머리에 인 물건을 손으로 잡는 법도 없지만, 맨 몸인 우리보다 더 빨리 걷는다.


엄마의 머리에 짐을 이는 솜씨는 거의 신기에 가깝다. 물동이 가득 물을 길어 목적지인 집까지 와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이 출렁거려 흘릴 법도 하지만 물동이를 내려놓을 때 물을 처음 길었을 때처럼 물동이 하나 가득 차 있다. 너무나 신기해 엄마 몰래 흉내를 내보기도 했었다. 헌 옷가지 몇 개를 개켜 머리 위에 올려놓고 보니 고개를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이 든다. 어쩌다 용케 머리에 이었다 치더라도 엄마처럼 손을 놓자마자 옷가지는 떨어져 걷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머리에 이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오빠 손을 잡고 타박타박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길옆 야산에 웃자란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드문드문 산나리 꽃이 고개를 길게 빼고 오빠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오빠와 나는 서로 툭툭 치며 장난을 치다가 지천인 꽃을 꺾기도 하면서, 그러다 다리가 아프면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밭으로 간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니 땀이 주르르 흐른다. 더위에 얼굴이 빨갛게 익은 오빠는 산딸기가 있어도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마의 땀방울을 손으로 닦고 뜨거운 햇살을 손으로 가리기도 하면서 터덜거리며 걸을 뿐이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물 가장자리에 옆 찔레나무 가지 끝에 물잠자리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개를 뽐내며 날렵하게 앉아있다.


“오빠! 저기 물잠자리 있다.”


나는 물잠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빠는 귀찮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흘깃 한번 돌아보더니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오빠, 나 다리 아파.”


내가 투정을 부리며 멈춰 서며 말했다. 오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쪼금만 참아. 이제 거진 다 왔어.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우리 밭이야.”


“알았어.”


이렇게 덥고 다리가 아플 줄 알았으면 집에서 놀걸 공연히 따라왔다고 후회를 한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서 두 손을 모아 큰소리로 아버지를 부른다. 장난꾸러기 산은 곧바로 흉내를 내며 아버지를 따라 부른다. 엎드려 김을 매던 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셨다.


“어서들 오거라.”


굴렁쇠처럼 단숨에 밭으로 달려가 아버지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더운데 먼길 오느라고 욕봤다. 저 뽕나무 밑 그늘에 가마니 깔아 놓았으니까 거기 가서 좀 쉬거라. 내가 시원한 물외(오이) 따다 주마.”


“수박이랑 참외는 아직 안 익었어요?”


오빠가 뽕나무 그늘 밑 가마니에 앉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오빠와 내가 그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것도 수박과 참외 때문이다.


“몇 개 열긴 열었는데 아직 덜 익었다. 수박이 그렇게 먹고 싶으냐?”


“네,”


오빠의 실망한 목소리에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 오이 넝쿨에서 내 팔뚝만 한 오이를 뚝뚝 따 우리에게 건네시며 말씀하신다.


“다음 장날 느네들 좋아하는 개구리참외와 수박 실컷 먹을 수 있게 사 줄 테니 오늘은 이거라도 먹거라.”


아버지가 건네준 오이를 한입 덥석 베어 물었다. 상큼한 오이 향이 물씬 풍기며 이내 갈증이 싹 가신다. 팔뚝만 한 오이 한 개를 먹고 나니 더위도 아픈 다리의 통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오빠가 콩밭 가 뽕나무 가지 위로 올라가며 내게도 따라 올라오란다.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나무를 잘 타는 나는 뽕나무에 올라가 앉기 편한 가지에 걸터앉았다. 오빠가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흔들면서 묻는다.


“손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서울까지 갑니다.”


오빠는 뽕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부릉부릉- 하고 버스 엔진 소리를 흉내 내었다.


“서울입니다. 서울에서 내릴 손님 내리십시오.”


“고맙습니다.”


“손님! 어디 가시겠습니까?”


“전주요. 광주요. 대전이요. 무주요.”


뽕나무 위에서 오빠는 기사였고, 뽕나무는 버스였으며, 나는 유일한 승객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도시란 도시의 이름을 모두 대었다.


뽕나무를 흔드느라 힘이 든 오빠가 잠깐 숨을 고르는 사이,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널따란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롭게 떠 가고 있다. 저 구름 들은 저렇게 흘러서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구름을 보고 있으려니까 사뭇 그 점이 궁금했다.


“오빠! 저 구름은 어디로 가?”


“나도 몰라.”


그런데 오빠의 대답은 잘 모른단다.


“오빠가 모르면 그럼 누가 알아?”


지금까지 내가 궁금한 모든 것들은 오빠가 다 알고 있었다. 오빠도 모르는 것이 있다니 나는 실망을 한다.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내가 박사도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저 구름들은 아마 산 너머 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지. 이담에 내가 크면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조종사가 될 거야. 내가 그때 구름이 어디로 가는지 똑똑히 보고 알려줄게.”


오빠가 하늘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참말?”


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묻자 오빠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이건 비밀이야. 너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해. 알겠지?”


“응, 알았어.”


나는 오빠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오빠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나는 맘껏 하늘을 날 수 있겠구나.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덕아? 너는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


“나?”


“그래, 덕이 너!”


오빠의 그 물음은 나를 당혹하게 한다. 이다음 커서 무엇이 된다는 것은 오빠에게 한정된 일인 줄 알고 자란 나였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커서 머가 될 거여?”


오빠는 대통령. 판사. 국회의원. 변호사 등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행복한 얼굴로 연신 오빠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기뻐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대통령이 무엇인지, 판사와 국회의원, 변호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오냐, 내 새끼.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우리 새끼가 그렇게 되는 것을 내 눈으로 꼭 보고 죽어야 할 텐데. 그때까지 이 할미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네.”


오빠에게 그렇게 묻는 것은 비단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외삼촌이나 작은아버지. 먼 집안 어른들이나 심지어 이웃집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오빠에게 묻는 것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오빠는 나한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묻고 있다.


“너 나중에 되고 싶은 거 없어?”


뜨악한 표정의 나를 보고 오빠가 거듭 물었다.


“몰라.”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뽕나무에서 내려오며 오빠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가뜩이나 높은 하늘이 더 높아지자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났는지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맴돌기 시작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 추석에 엄마가 내게 어떤 옷을 사 줄 것인가 기대에 부푼다. 우리가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두 번 설 명절과 추석 명절뿐이다.


엄마가 이불과 요를 모두 꺼내놓고 홑청을 뜯는다. 왜 뜯느냐고 물으니 뭉친 솜도 다시 타고 홑청도 깨끗이 빨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엄마가 빨래를 하려 가는 냇가에 나도 따라간다.


냇가 가장자리 넓적한 돌에 앉은 엄마는 이불 홑청을 빨기 시작한다. 홑청을 흐르는 물에 흔들어 빠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라는 엄마 말에 나는 순종하지 못한다. 집에서 가져온 걸레에 빨랫비누를 잔뜩 묻혀 엄마와 같이 돌에 대고 힘들게 문질러보지만, 엄마처럼 거품이 일지 않는다.


“비누칠 고만하고 손에 힘주고 야물딱지게 문질러서 치대.”


빨래 방망이를 들어 빨래를 내려치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시킨 대로 해보지만 팔만 아플 뿐 생각처럼 거품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빨랫감이 걸레인 탓이다. 엄마의 빨랫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엄마가 한 눈 팔 때만 기다린다. 방망이질을 마친 엄마가 물에 흔들어 홑청을 빠는 틈에 재빨리 아버지 새 옷을 슬쩍 가져와 비누를 잔뜩 묻혔다. 그리고는 빨랫방망이를 힘껏 내려치며 마냥 신이 났는데, 엄마의 벽력 같은 호령에 나는 그대로 돌이 되고 만다.


“덕이 너 시방 뭐 하고 있냐? 아이고 저 가시내 땜에 내가 못 살아, 이리 못 내놔.”


엄마가 아버지 옷을 와락 낚아채더니 이리저리 살핀다.


“누가 너보고 이거 빨라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몰라. 청개구리를 삶아 처먹었나 왜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기를 쓰고 해서 한 벌밖에 없는 즈 아버지 외출복을 버리는 거여? 응. 자 똑똑히 봐. 니가 방망이로 어떻게 두들겨 댔는지 찢어지려 하잖아!”


가만히 보니 엄마 말처럼 아버지 새 옷이 해어지기 직전이다.


“너 어떻게 할래, 한 번뿐이 안 입은 새 옷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께 이 옷은 니가 가지고 너를 내다 팔아서라도 새 옷 당장 가서 못 사와!”


엄마가 아버지 옷을 패대기를 치면서 호통을 친다. 무안해진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내가 접때 세뱃돈 맡겨 놓은 돈으로 아버지 새 옷 사면 되잖아.”


“세뱃돈? 그 꼴 난 걸로 새 옷을 사라고. 이 옷이 얼마 짜린데 그런 말을 하고 있어.”


엄마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나일론 양말을 획 던지며 말했다.


“정 빨고 싶으면 이거나 빨아. 때 하나도 없이 깨끗이 치대.”


나일론 양발은 거품이 잘 난다.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거품이 이는 게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해 엄마가 그 많은 빨래를 다 끝마친 줄도 모른다.


“그만 빨아. 하도 문질러서 양말에 구멍 나겠다. 빨리 헹구고 가자.”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시 빤 이불 홑청을 가마솥에 양잿물을 넣어 푹푹 삶았다. 삶지 않아도 되는 빨래는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탈탈 털어 널었다. 빨래가 다 삶아진 뒤 엄마는 삶은 빨래를 이고 대정리 냇가로 향했다.


햇살 아래 펄럭이는 눈부시게 흰 홑청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미쳐 마르지 않은 홑청 사이를 들락거리며 놀다 손때가 묻어 다시 빨아야 한다며 엄마에게 혼이 났다.


가을볕은 곡식을 익게 해주는 고마운 볕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볕이 워낙 좋아 아침나절에 넌 빨래가 점심을 먹을 때쯤 바싹 말랐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엄마는 곱게 풀을 먹인 이불 홑청이 꼽꼽해지기를 기다려 모두 걷었다. 깨끗이 훔친 마루에서 엄마가 이불 홑청을 개키면서 나를 부른다. 엄마가 나를 보고 이불 끝을 꼭 붙잡고 있으란다. 엄마가 일을 시키면 은근히 겁부터 난다. 잘했다는 말보다 으레 너는 그것도 못 하냐? 일곱 살이나 처먹은 것이, 옛날 같으면 그 나이에 밥도 따르르 해 먹었을 텐데, 라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빨래를 짜면서 한쪽 끝을 잡고 있으라고 할 때와 다리미질을 하면서 옷 끝을 잡고 있을 때다. 엄마가 빨래를 짤 때 움직이지 않고 붙잡고 있는 일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글거리는 숯불이 가득 담긴 다리미를 들고 치마를 다리던 엄마가 날 보고 치마 말기를 꼭 잡고 있으라고 하였다. 엄마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올 때면 힘을 더 주는 것 같다. 이글거리는 숯불이 내 손에 닿을 것 같아 힘껏 잡아당기고 있던 치마 말기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다리미가 기우뚱거리며 숯불과 재가 치마에 고스란히 쏟아졌다. 행여 치마가 탈까 봐 기겁을 한 엄마는 재빨리 숯불을 손으로 집어내 마당으로 던지고 치마를 탈탈 털었다. 다행히 엄마의 치마는 타지 않았지만 재를 흠뻑 뒤집어써 다시 빨아야만 했다. 아무튼 그날 나는 빗자루로 엄마에게 얻어맞아야만 했다.


“놓치지 말고 꼭 잡고 있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엄마는 홑청 끝을 잡고 탈탈 털고는 인정사정없이 앞으로 잡아당긴다. 그 바람에 나는 홑청을 놓치고 만다.


“꽉 좀 붙잡으랑게 팔이 건성에 가 붙었나, 어째 그리 힘이 없냐?”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엄마가 날 데리고 어렵사리 개킨 홑청을 흰 무명천에 돌돌 말아주며 올라가 꼭꼭 밟으란다. 그거라면 자신이 있다. 밟고 또 밟고. 엄마는 그렇게 밟은 이불 홑청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의 양손에 들려있는 방망이는 번갈아 가며 다듬잇돌 위에 있는 홑청을 내려친다.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는 뚝딱뚝딱 뚝뚝 딱 뚝딱 박자도 일정하다. 너무나 재미있어 보여 따라 해보고 싶지만 엄마가 해보라고 할 리 만무하다.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엄마의 주위를 뱅뱅 돈다. 잠시 후 엄마가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나는 부리나케 다듬잇돌 앞으로 다가가 앉는다. 양손에 방망이를 들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어설픈 흉내를 내본다. 그러나 방망이가 무거워 양손에 들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방망이 하나는 내려놓고, 두 손으로 방망이 하나를 잡고 신나게 두들기다 그만 이마를 치고 만다. 너무나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고 이마에 톡 불어난 혹을 붙잡고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만 찔끔거린다.


“시방 왜 그러고 있냐, 너 혹시 이 방맹이에 손댔냐?”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못 살아, 저놈의 가시내 말 안 들어서 내 명에 못 산다니까! 그새를 못 참고 일을 또 저질러? 그래 얼마나 다친 거야 일로와 봐.”


엄마가 내 손목을 홱 끌어당겨 내 이마를 살펴본다.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지. 잘못해서 이마 빼기가 터져 피라도 났으면 그땐 어쩔 뻔했냐? 나 나가고 없으면 이 방맹이 또 만질래?”


나는 고개를 도리질한다. 이불속에 새로 탄 솜을 넣고 풀 먹여 손질한 이불 홑청으로 꿰매 새 이불을 만들어 놓고, 문도 새 창호지를 붙이고, 집 안의 놋그릇을 모두 모아놓고 짚을 뭉쳐 곱게 빻은 기와 가루와 아궁이에서 꺼낸 재로 깨끗이 닦아 반짝반짝 거울처럼 윤을 내놓았다.


내일은 추석 대목 장날이다. 추석 준비로 바쁜 부모님들보다 우리 형제들 마음이 더 들뜨고 흥분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전 13화찔레꽃 향기 / 13회 친구가 없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