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장날 아침 우리는 엄마가 깨우기 전에 일어났다. 우리 집이 장터 초입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날 아침은 왠지 모르게 부산하다. 장날도 그러한데 오늘은 추석 대목장날이 아닌가. 장날 누구보다 바쁜 집은 바로 남원관이다. 아주머니가 예쁘게 단장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황거름, 양악, 이목리, 등에서 아침 일찍부터 추석 장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장터는 부산해졌다. 당연히 장터 초입에 있는 우리 집도 바빠졌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터로 간다. 가짜 코와 커다란 수염을 붙이고 등에 큰 북을 맨 약장수 아저씨도 장터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오는 그 아저씨가 너무너무 재밌다. 그렇지만 약장수 아저씨는 나 같은 어린애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들은 가라.”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여기까지 말을 마친 아저씨가 오른쪽 발을 앞으로 힘차게 뻗치면 아저씨 등 뒤의 큰 북이 쿵하고 울린다
.
“바쁜 농사일 하랴 추석 준비하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제가 이렇게 바쁘신 어르신들 앞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어르신들에게 기상천외한 무술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이구 그 지겨운 약 선전을 또 하나 보다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장날이면 아무 장터나 찾아다니는 그런 싸구려 약장사가 결코 아닙니다. 그럼 청산 선생님을 소개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허리까지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두건을 쓰고 흰 두루마기 차림의 건장한 사내가 지팡이를 짚고 점잖게 앉아 있다가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듯 아저씨가 오른발을 힘껏 앞으로 내 질렀다. 쿵 하고 다시 북이 울렸다. 사람들은 장터가 떠나갈 듯 손뼉을 치며 잔뜩 기대에 찬 시선으로 청산 선생을 응시했다.
청산 선생이라 불리는 사내는 이제 곧 흰 도포와 머리에 쓴 두건을 훌훌 벗어던질 것이다. 그리고 근육질 몸매를 으스대며 커다란 기합과 함께 이마로 송판에 대못을 박거나, 주먹으로 커다란 바위를 부서뜨리고 각목을 자신의 머리에 내리쳐 부러뜨리는 묘기를 보일 것이다.
“우리 청산 선생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계룡산에서 십 년, 지리산에서 10년, 여러분께서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저기 저 빤히 보이는 저 덕유산에서 10년, 이렇게 30년을 오직 무술 연마에만 전념하셨다 이 말씀입니다.”
말을 마친 아저씨가 이번에는 왼쪽 발을 힘껏 앞으로 뻗쳐 북을 울렸다.
“그런데 무려 삼십 년이나 도를 닦은 청산 선생님께서 어째서 이런 촌구석에 뭐 하려고 왔는가? 여러분 궁금하십니까?”
군중을 둘러보는 아저씨의 기묘한 동작은 저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대목장이라 약장수 아저씨도 한몫 단단히 챙길 심산인가 보다. 오늘 아저씨는 사설을 길게 늘어놓으며 사람들 변죽만 울리고 있다.
맨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구경꾼 틈을 빠져나온다. 나는 아저씨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여 사람들 웃음을 유도하고, 어느 순간 약을 파는지 잘 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꼬마 이미자라고 일컫는 여자아이의 노래를 듣는 일이다. 또 입에서 불을 토하고 색색의 천을 꺼내는 마술이다. 그런데 오늘은 꼬마 신동 이미자가 보이지 않는다.
장날에는 볼 것이 너무 많다. 과일전 야채전, 어물전, 포목전, 옷가게, 정육점 이밖에 거리 난장에는 풋콩과 고들빼기 무말랭이 늙은 호박을 비롯해 살아있는 닭과 짚으로 만든 계란꾸러미 등을 늘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장터를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다가 튀밥 튀는 곳에 이르러 차례를 기다리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 곁에 나란히 놓여있는 깡통 하나에는 강정을 만들 쌀이, 또 다른 깡통에는 우리들이 간식으로 먹을 강냉이가 들어있었다. 나는 언니 옆에서 개미 몸통 같은 튀밥 기계와 풍로를 돌리는 아저씨를 바라본다. 아저씨가 돌리던 풍로를 멈추고 기계 머리 쪽 온도계를 보더니 불이 이글거리는 깡통을 옆으로 밀어놓고 긴 망태를 기계 끝에 갖다 붙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쇠로 된 막대기를 단단히 잡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뻥이요!”
귀를 막고 돌아선 언니 뒤에 숨은 나도 두 손으로 재빨리 귀를 막는다. 곧이어 뻥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시야를 덮는다. 김이 사라지자 하얀 튀밥이 망태에 가득 담겨있다.
“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아이들은 환호와 함께 망태 속 튀밥을 자루에 퍼 담는 아저씨 곁으로 달려든다.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한 주먹씩 방금 튀긴 튀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언니의 손에도 내 손에도 하얀 쌀 튀밥 한 주먹씩 쥐어졌다. 방금 튀긴 튀밥이라 따뜻하고 고소하다.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서너 차례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언니는 양손에 튀밥 자루를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향한다. 나는 호주머니에 가득 든 튀밥을 만져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장터의 곳곳을 더 돌아본다. 장터를 온종일 걸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추석빔이 궁금해 집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아직도 마당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텃밭 옆에 서 있는 언니에게 다가가 묻는다.
“엄마는 어딨어?”
“엄마는 왜?”
“그냥.”
“엄마 시방 되게 바쁘니까 엄마 귀찮게 해서 혼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언니가 엄마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는 마루에서 외삼촌과 함께 쌀이며, 콩, 그 밖의 여러 가지 곡식들을 되로 퍼 담느라 정신이 없다. 내 몫으로 어떤 옷을 샀는지 너무나 궁금하지만 장이 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남원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나는 남원관 집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줌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울타리에 숨어 울타리 틈으로 보니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있다.
“이 새까! 술을 처먹었으면 돈을 내야 할 것 아냐?”
“이년이 미쳤나, 이거 못 놓아?”
“돈 내놓기 전에는 죽어도 못 논다 어쩔래?”
“이 년이 뒈지려고 환장을 했나.”
“그래, 환장을 했다. 어쩔래? 이 새끼가 좋은 술 처먹었으면 돈을 내고 곱게 가야지. 어디서 행패는 행패야? 사람들 많은 데 개망신당하기 전에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돈 내놔!”
그러나 나는 곧 몸을 돌리고 말았다. 멱살을 잡힌 아저씨가 아주머니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엄마! 큰일 났어, 남원관 집 아줌마 막 운다.”
엄마에게 다가가 내가 말했다.
“아줌마가 울어?”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보며 묻는다.
“응, 막 울어.”
“아줌마가 왜 울어?”
“어떤 아저씨가 아줌마를 뺨을 이렇게 때렸어!”
나는 조금 전 보았던 아저씨 흉내를 내보인다.
“누님! 아줌마가 누군데 덕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그래요?”
외삼촌이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남원관 집 여자!”
“그 여자가 어째서요?”
“덕이 말이 남원관 집에서 손님하고 시비가 붙어 쌈이 벌어졌다네.”
“난 또 무슨 큰일이 났다고, 누님 술집 여자가 손님하고 싸우는 것 예삿일 아니에요?”
외삼촌이 손사래를 치며 쌀이나 마저 되라는 시늉을 했다. 아줌마가 불쌍했지만 도울 방도가 없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동생을 업고 마당을 서성이던 언니가 손을 까딱거리며 나를 부른다.
“남원관 집 아줌마가 참말로 울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가볼래?”
언니의 그 말에 힘을 얻은 나는 금세 얼굴이 밝아진다. 언니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언니와 내가 남원관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와장창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와 나는 깜짝 놀라 장승처럼 멈춰 서고 말았다. 엉클러 진 머리에 저고리 한쪽 소매와 옷고름이 뜯겨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아주머니가 대문 밖으로 기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람 살려! 저놈이 사람 죽이네.”
낫을 치켜든 채 아줌마를 쫓아오던 아저씨가 언니와 나를 보더니 잠시 멈칫거린다. 그리고는 치켜들고 있던 낫을 뒤로 감추더니 사람들 눈치를 살피면서 사라졌다.
아줌마가 언니와 나를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주머니의 손과 입에 약간의 피가 묻어있다. 그것을 본 나도 덩달아 소리를 내어 운다.
“덕아, 울지 마라, 아줌마 괜찮다.”
“아줌마! 참말 괜찮아요?.”
언니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다. 어머니 바쁘시더라도 내가 잠깐만 뵙자고 전해 줄래?”
그날 아줌마네 집에서 일어난 소동은 파출소 순경까지 출동해 난동을 부린 아저씨를 잡아간 뒤에야 끝이 났다. 아줌마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버버리 아저씨가 온 것은 모든 소동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버버리 아저씨는 입이 찢어지고 머리가 헝클어진 아줌마를 보고 왜 자기를 부르지 않았느냐며 두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줌마는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엄마를 붙잡고 서럽게 흐느꼈다. 그렇게 울고 불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아주머니 때문에 우리는 새 옷을 구경할 수도 입어볼 수가 없었다.
밤이 늦어서야 우리는 엄마 장에서 사다 장롱 속에 넣어둔 추석빔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언니는 빨간 스웨터와 검정 코르덴 치마, 오빠는 검정 양복, 내 옷은 너무나도 깜찍한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다. 나는 색동저고리를 품에 안고 방안을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자 양말 한 켤레씩과 오빠에게는 운동화와 언니와 내 몫의 까만 구두도 있다.
“낙낙하게 산다고 샀는데 잘 맞는지 모르겠다. 어디들 신어 보거라.”
나는 구두가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가슴에 꼭 끌어안는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의 코에는 예쁜 리본도 붙어있다. 제일 먼저 구두를 신어본 언니가 말했다.
“이게 뭐야? 구두가 너무 커서 헐렁거리잖아!”
언니 말처럼 구두는 너무 커서 언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벗겨지려고 한다.
“아껴서 오래 신으려면 커야지. 꼭 맞으면 금방 발이 클 텐데 그땐 내 버리고 또 살래? 나중에 네가 돈 많이 벌면 그땐 니 발에 꼭 맞는 신발 사 신어. 어디 이리 와 봐.”
엄마가 언니의 구두 앞부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면서 말씀하셨다.
“신발이 이렇게 낙낙해야 발이 안 아파. 양말을 신으면 그렇게 큰 것도 아냐. 양호 네 운동화는 잘 맞냐?”
오빠 운동화 역시 약간 컸지만 끈을 조절해서 묶으면 언니처럼 발이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까만 구두 속으로 발을 쏙 밀어 넣었다.
“어디 보자, 이렇게 예쁜 구두를 누가 사 줬어? 말도 잘 안 듣는 우리 막내딸한테,”
아버지의 놀리는 말에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살짝 눈을 흘긴다. 내 구두도 언니처럼 헐렁거리긴 하지만 그런 것은 괜찮다. 나한테도 예쁜 구두가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쁠 뿐이다. 이제 미숙이가 구두를 신고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눈꼴신 꼴은 보지 않아도 된다.
“니 엄마 눈대중이 자보다 정확하구나. 어때 새 옷과 신이 마음에 드냐?”
아버지의 물음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시했다.
“너네 들은 참 좋겠다. 이렇게 예쁜 옷과 신도 사 주는 사람도 있고, 근데 나와 네 엄마는 그런 사람이 없구나.”
농담처럼 그 말을 하며 아버지가 담뱃대에 불을 붙인다.
“아버지, 이담에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아버지하고 엄마도 좋은 옷 많이 많이 사 줄게.”
오빠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참말로, 양호 니가 커서 그럴래?”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고,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새로 산 옷이 늘 그렇듯 팔과 바지 밑단을 두 번이나 걷어야 할 만큼 헐렁하고 크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색색의 천을 일정한 간격으로 잇대어 만든 무지개처럼 고운 색동저고리는 내 맘에 꼭 들었다.
오빠가 학교에서 오면 머리를 깎으러 샛담에 가야 한다. 마루에 앉아 오빠를 기다리면서 새로 산 옷과 구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 이마에 수건을 동여맨 아줌마가 파리한 얼굴로 마당에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며칠 전 싸운 일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 뻔했다.
“아니, 따순 방에 누워 몸조리하지 왜 그새 일어났어?”
엄마가 깜짝 놀라 아주머니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몸이 심상치가 않아요.”
“몸이 심상치가 않다니 뜬금없이 그게 먼 소리여?”
“자꾸 하혈을 해요.”
아줌마의 말에 엄마의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하혈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엄마의 표정으로 미루어 엄청 큰일이라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다.
“아니 언제부터?”
“며칠 됐어요. 그러다 말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점점 양이 많아져요.”
“근데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얼른 큰 병원에 한번 가보지 않고?”
“아무래도 전주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번 해봐야겠어요.”
“이 몸으로 혼자 어떻게 전주까지 가?”
“그것보다 언니, 병원에서 죽을병이라도 들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게 걱정이에요.”
아줌마의 말에 엄마가 잡고 있던 손을 홱 뿌리치면서 말했다.
“젊은 사람이 별 쓸데없는 소릴 다하네, 하혈을 한다고 다 죽을병에 걸렸다던가? 암 것도 아닐 수 있은 게 지레 겁부터 먹지 말고 진찰부터 받아 봐. 명절 때만 아니면 내가 병원에 가주면 좋은데 명절 때라 그렇게도 못하고 어쩐대?”
“말씀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워요. 추석이나 쇠고 나서 제천댁 데리고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하도록 해.”
아픈 배를 부여잡고 마루에서 일어나는 아주머니의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나는 아주머니의 그 웃음이 눈물을 흘릴 때보다 훨씬 더 슬프다고 느꼈다.
엄마가 아줌마의 어깨를 부축해주면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덕아, 아줌마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올래?”
나는 아줌마의 희고 앙상한 손을 꼭 잡았다. 오늘따라 아줌마의 손은 너무나 차갑다.
“덕아, 우리 집까지 나 바래다줄래?”
아줌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조심 대문을 나서면서 아줌마가 가는 도중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줌마는 쓰러지지 않았다. 내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줌마를 보고 제천댁이 한걸음에 달려와 아줌마를 덥석 안으며 말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새 또 어딜 댕겨오는가요?”
“우리 집에 댕기러 오셨어요.”
아주머니 대신 내가 대답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덕이가 아씨를 모시고 왔구나! 아이고 착해,”
“아줌마 그럼, 저 그만 갈게요. 안녕히 계셔요.”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새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줌마 집까지 잘 모셔 다 드렸냐?”
엄마가 마당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응, 근데 오빠 아직 학교에서 안 왔어?”
“아직 안 왔다. 제천댁은 집에 있고?”
“응. 있어.”
“알았다. 오빠 올 때까지 맨드라미 이파리나 따거라.”
“맨드라미 이파리는 따서 뭐하게?”
“뭐하기는 적(부침) 부치려고 그러지.”
“맨드라미 꽃 이파리로 적을 부쳐?”
“그럼, 얼마나 맛있는데.”
“알았어. 엄마!”
나는 장독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수탉처럼 벼슬 모양의 꽃을 머리에 인 맨드라미 이파리를 요리조리 살펴본다. 자줏빛 기운이 감도는 파란 잎 하나를 따서 엄마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렇게 생긴 것 따면 돼?”
“그래, 좋은 것으로 골라 따.”
“얼마만큼?”
“아주 많이!”
“알았어.”
맨드라미 이파리 중 크고 예쁜 것만 골라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따 차곡차곡 바구니에 담았다. 걸음을 옮기는데 톡 하고 봉숭아 씨앗이 터진다. 고개를 숙여보니 까만 씨는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빈 깍지만 또르르 말려있다.
“엄마! 이제 됐어?”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 맨드라미 잎은 그만 따고, 들깻잎 따거라. 너무 쇠지 않고 연한 것으로. 다 쇠어 빠져 장작개비같이 뻣뻣하게 쇤 것 따지 말고.”
어떤 잎이 좋은 잎인지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잘 안다. 깻잎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언니와 며칠 전 들깻잎을 딴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키보다 훨씬 더 큰 들깨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어리고 연한 잎을 골라 따 맨드라미 잎 옆에 차곡차곡 담는다. 전 중에서 나는 들깻잎 전과 부추 전을 가장 좋아한다.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사람들 많이 기다리겠다. 얼른 덕이 데리고 가서 머리부터 깎고 오너라.”
엄마가 치마를 들치고 속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오빠에게 건네며 말했다.
장터의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다. 그러나 오빠는 상고머리다. 물론 오빠가 상고머리를 하고 다니기까지 오빠의 기나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빠는 어떤 일에 함에 있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그런 오빠가 자랑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이유는 오빠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공부는 물론 운동 등 모든 일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은 오빠의 고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급되는 차갑고 냉랭한 집안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엄마나 아버지는 물론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양호가 뚝 성질 때문에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만약 잘못 풀리면 큰일이 아닌가요. 해서 하는 말인데 누님이 양호를 위해서 모쪼록 공을 많이 들여야 된당게요.”
외삼촌의 말처럼 오빠를 위한 일이라면 엄마와 아버지는 최선을 다 했다. 밥을 지을 때마다 밥 지을 쌀에서 한 움큼씩 덜어 부뚜막 위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그렇게 모은 쌀은 매월 초하루 안천면 노채에 있는 절에 가 불공을 드리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라 매일 새벽 안성장터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 물을 길어와 부뚜막 위에 떠놓고 조왕신에게 비는 것도 소중한 일과였다.
상고머리는 단정해 보이고 보기도 훨씬 좋다. 하지만 머리 깎는 삯도 까까머리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까까머리에 비해 빨리 자라기 때문에 머리를 깎을 때마다 엄마는 짧게 자르고 오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는다.
“짧게 깎아달라는 말 빼먹지 말고.”
오빠와 나는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흘려듣고 이발소가 있는 샛담 고샅으로 접어든다. 이발소라 해봤자 격식을 갖추어놓은 정식 이발소가 아니다. 집에서 의자 하나 놓고 머리를 깎는 무허가 이발소였다.
오빠와 꼽추 아저씨네 대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대여섯 명 아이들이 마루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다 아는 얼굴들이다. 오빠 친구도 두 명이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있던 꼽추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니 이게 누구여, 양호랑 덕이도 왔구나? 그동안 잘 있었냐?”
“네, 어머니가 안부 전하시래요.”
오빠가 토방으로 올라서자, 병수 오빠가 얼른 일어나 마루를 손으로 쓸어내더니 오빠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오빠는 당연하다는 듯 병수 오빠가 비껴 준 자리에 나를 앉게 했다.
“그래 고맙기도 하시지. 부모님도 다 무고하시고?”
“네, 덕분에 잘 계세요.”
“이 생원님은 아들 하나는 똑똑하게 잘 두셨어.”
꼽추 아저씨 어머니인 김제댁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와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머니의 옆구리에 낀 소쿠리에는 감자가 가득 담겨있다. 할머니는 토방에 쭈그리고 앉아 오빠에게 이것저것 물으시면서 몽당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어 물이 담긴 함지박에 담는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아저씨 특유의 재치 있고 걸쭉한 입담에 웃음이 끊길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순서가 먼저인 아이들이 자기 차례가 되면 오빠에게 순서를 양보했지만 오빠는 거절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빨랫줄 가운데에 매달려 있는 전등을 켰다.
“니들 배고프자? 쪼깨만 기다려라. 내가 감자 맛있게 쪄 줄 테니.”
할머니가 방금 껍질을 벗긴 감자를 물에서 건져 마당에 있는 솥에 넣으면서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그 말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저녁때가 얼추 되어 배가 출출하던 터였다. 그러나 오빠는 관심이 없다. 오빠는 다른 집 음식은 먹지 않는다.
“다 됐다. 어디 보자, 예쁘게 잘 깎아졌나? 어이구 이 녀석 인물이 훤해졌네.”
아저씨가 수건으로 얼굴이며 목 뒷덜미에 묻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 내면서 병수 오빠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머리를 깎아놓으니 병수도 인물이 훤해 딴 사람 같구나.”
할머니가 마당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는 콩깍지를 한 아름 안아다 아궁이 앞에 내려놓으며 말하자 병수 오빠가 몸을 배배 꼬며 수줍어한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톡톡 소리를 내며 콩깍지가 타 재가 되는 모습이 신기하다. 처음 보는 일도 아니지만 넋을 놓고 바라본다. 곧 물 끓는 소리와 함께 가마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면서 감자 익는 냄새가 가득하다. 할머니는 타다만 콩깍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고 무릎을 짚고 굽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샛담 사는 영철이와 오빠와 나만 남았다.
안성장터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아이가 바로 영철이다. 내가 흘겨보자 영철이는 재빨리 소매 끝으로 누런 코를 쓱 문질러 닦는다.
“아이, 드러워!”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가득한 양푼을 마루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야, 감자 먹고 잠시 쉬었다 하거라. 점심도 못 먹었는데.”
감자를 보고 침을 삼키며 오빠 눈치를 살핀다.
“자, 눈치들 볼 것 없다. 식기 전에 어서 하나씩 들고 먹거라.”
할머니가 감자가 든 양푼을 우리 앞으로 밀어놓았다. 꼽추 아저씨가 감자를 집어 들더니 깜짝 놀라며 내던지듯 놓는다.
“저런, 뜨겁다니께, 손은 안 디었냐? 조심하지 않고.”
할머니는 젓가락으로 가장 큰 감자를 골라 꼽추 아저씨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꼽추 아저씨가 씩 웃더니 할머니가 건네준 감자를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오빠가 노릇노릇하게 눌어 맛있어 보이는 감자를 집어 나한테 주면서 말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나는 오빠가 건네준 감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호호 불면서 입으로 가져갔다.
“양호 너는 왜 안 먹고 느 동생만 챙기냐?”
할머니가 기특하다는 듯 오빠를 보며 물었다.
“저는 배가 불러 못 먹겠어요.”
오빠가 얼른 그렇게 둘러대자 할머니는 못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그렇지, 그래도 늙은이 정성을 봐서 한 개라도 먹는 시늉이라도 하지. 실은 우리 아들도 아들이지만 양호 너 배고플까 봐 찐 감자인데.”
할머니가 큼지막한 감자를 오빠에게 내밀었다. 오빠는 마지못해 감자를 받아 들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서 먹어봐. 사카루(사카린) 많이 넣고 쪄서 달고 포근포근하다.”
우리가 감자를 먹는 동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자 오빠는 나부터 깎으란다. 의자가 너무 높아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아 의자에 앉혔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콧등까지 자란 앞머리는 고무줄로 묶고 있다. 아저씨가 내 어깨 위에 보자기를 두르고 한 손에 빗을 들고 묶은 머리를 풀어 물을 뿌리고 빗질을 한다.
“엄마가 앞머리를 짧게 잘라 달래요. 너무 길면 눈 찌른다고.”
오빠가 의젓하게 말했다.
“어때 이만큼 자르면 되겠지?”
아저씨가 빗으로 가지런히 빗은 앞머리의 길이를 가늠해 보며 가위로 싹둑 자른다. 옆머리와 뒷머리까지 단정하게 자른 뒤 목덜미에 난 잔머리를 바리깡으로 민 다음 비누 거품을 묻혀 날이 시퍼런 면도로 말끔히 밀었다.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고개를 이쪽저쪽 돌려보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울을 보여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거울을 보는 일은 어색하고 쑥스럽다. 나는 거울을 보는 둥 마는 둥 얼른 고개를 돌리고 오빠를 바라본다. 꼽추 아저씨가 수건으로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털면서 오빠를 보고 말한다.
“이렇게 머리를 깡똥하게 자르니께 덕이 참말로 예쁘다 안 그러냐 양호야?”
의자에서 내려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니 짧은 머리가 찰랑거리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빠 순서다. 오빠가 의자에 앉자 꼽추 아저씨가 커다란 보자기로 오빠 어깨를 두르며 짓궂게 묻는다.
“우리 도련님은 어떻게 깎아드려야 마음에 드실랑가?”
“상고로 짧게 깎아주세요.”
“짧은 상고머리라? 그래 알았다. 내가 안성장터에서 최고로 멋지게 깎아주마.”
아저씨가 바리캉을 움직일 때마다 오빠의 머리카락은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아저씨는 오빠의 앞머리와 정수리 부분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한동안 오빠의 머리를 다듬던 아저씨가 정수리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채 배드민턴 공처럼 생긴 솔에 비누거품을 잔뜩 묻혀 오빠의 목덜미에 발랐다. 그리고 가죽 혁대에 면도칼을 몇 번 쓱쓱 문지르더니 비누거품이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밀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면도로 밀고 간 자리는 오빠의 속살이 오스스 몸을 사리며 파르라니 드러났다.
“자, 다 되었다.”
아저씨가 수건으로 오빠의 얼굴과 목에 묻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가 오빠의 정수리 한가운데를 독도처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참말 다 깎았어요?”
“그럼, 누구 솜씬지 모르지만 아주 멋들어지게 잘 깎았네.”
아저씨는 자신의 옷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 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던 할머니가 웃으며 거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싹 깎아놓으니까, 우리 도련님 뉘 집 자식인지 참말 인물이 환하네.”
“그렇지요? 양호 인물 좋은 거야 안성장터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가 깎았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최무룡 장동휘도 양호 널 보면 아마 울고 갈 거다.”
“하먼, 그렇고 말고. 안성장터가 다 훤하다.”
오빠는 아저씨와 할머니의 치켜세우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울을 비춰보더니 정수리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여긴 왜 남겨놨어요?”
“다 깎았는데 그게 뭔 소리여?”
“여기 이렇게 긴 머리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오빠가 잔뜩 부어 터진 소리로 깎지 않은 부분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저씨는 태연히 마루에 털썩 걸터앉으며 말했다.
“아이고 죽겠다. 추석 대목이라 점심도 못 먹고 온종일 머리를 깎았더니 뒷골도 뻣뻣하고 허기가 지네. 엄니, 이제 나도 늙었나 봐요. 작년하고 또 다르네요. 저녁 다 되었지요?”
아저씨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할머니가 웃음을 애써 참고 정지로 들어가며 말했다.
“하먼 벌써 다 해 놓았지. 우리 아들 오늘 수고 많았네. 쪼그매만 기다려라. 내 얼른 상 차려올팅게
아저씨가 마루로 올라서며 말했다.
“우리 도련님과 덕이 아가씨도 이리 올라와, 늦었는데 아무 데서나 한 숟가락 뜨고 가거라.”
“아저씨, 장난 그만하고 빨리 남은 머리마저 깎아줘요.”
오빠가 씩씩거리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머리 다 깎았는데 더 깎을 것이 어디 있느냐며 자꾸만 억지를 부린다. 오빠가 화를 참지 못하고 마당을 뛰쳐나가기 직전, 아저씨의 장난은 끝이 났다. 아저씨는 오빠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 한 다음 오빠의 정수리 부분 다복솔처럼 소복하게 남겨두었던 머리를 마저 깎아주었다.
“두 번 다시 이놈의 집구석에 머리 깎으러 오나 봐라.”
할머니가 어머니 갔다 드리라며 건네주는 보자기를 마지못해 받아 들고 나서면서 오빠가 한 말이었다.
“조심해서 반듯이 들고 가거라 안 그러면 안에 든 거 깨지니께. 양호야! 덕아 데꼬 밤길 조심해서 잘 살펴 가거라. 추석도 잘 쇠고”
꼽추 아저씨의 목소리가 뒷덜미에 와 꽂힌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오빠가 몸을 획 돌려 아저씨 집 대문을 흘겨보더니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힘껏 발로 차 버린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찬호네 집 멍멍이가 물어뜯을 듯 짖기 시작한다. 화가 있는 대로 난 오빠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돌멩이를 집어 든다. 멍멍이에게 돌을 던지는 시늉을 하자 멍멍이는 뒤로 한발 물러섰지만 조금 전보다 더 앙칼지게 짖어댄다. 문득 엄마의 당부가 생각났다.
“찬호네 멍멍이 새끼 뱄다더라. 새끼 가진 어미 개는 신경이 예민한 게 건드리지 말고 조심하고. 며칠 전 명복이가 까불다가 찬호네 개한테 물려 무주 읍내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왔다더라. 그니께 찬호네 집 앞을 오고 갈 때 각별히 조심하고.”
나는 살며시 오빠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오빠는 따라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멍멍이를 한번 노려보고는 몸을 돌린다. 꼽추 아저씨의 장난으로 이래저래 오빠의 심기는 불편하다.
열사흘 달이 둥실 떠올라 오빠와 나를 비춰준다. 오빠와 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달빛을 동무 삼아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배고플 텐데 왜 이리 늦었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가 보다?”
저녁도 먹지 않고 기다리던 엄마가 우리를 깜짝 반기며 묻는다.
“이거, 할머니가 어머니 갔다 드리래요.”
오빠가 퉁명스럽게 할머니가 준 보퉁이를 엄마한테 내밀며 말했다.
“아니, 농사도 짓지 않는 집에서 뭘 보냈다냐?”
보자기를 풀어본 어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내다 팔지, 형편도 어려운 양반이 이런 걸 보내셨을까?”
할머니가 주신 보퉁이를 풀자 보리쌀 안에 여섯 개의 달걀이 들어있다.
“며칠 전 내가 그 말을 공연히 했나 보네.”
아버지가 언짢은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무슨 말을 했는데요, 즈 아버지?”
“요 며칠 전 덕수네 집에서 돼지를 한 마리 잡았잖아. 그때 그 어른 생각이 나서 추석 때 드시라고 살로 두어 근 사다 드렸거든,”
“그랬구만요. 참말 잘하셨네요.”
“미안하다며 죽어도 안 받겠다고 하시길래 마루에 놓고 나오는데, 그 어른이 물어보더만 우리 양호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뭣이냐고 달걀찜을 젤 좋아한다고 했더니만,”
“그랬군요. 그 말을 듣고 그 착한 양반이 이 달걀을 모았다가 이렇게 보내신 거로군요.”
추석을 가까워오자 되재 작은 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할머니가 큰집인 우리 집에서 함께 살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작은아버지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엄마는 할 일이 많아진다. 그리고 반찬이 달라진다. 명절 때나 생일날에야 맛볼 수 있는 고깃국이나 생선이 끼니때마다 빠지지 않고 올라오고 반찬도 많아진다.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도 많다. 할머니는 오빠를 끔찍이 귀히 여기셨다. 할머니 드시라고 상에 올라오는 생선을 할머니는 입에도 대지 않고 손으로 가시를 발라 굳이 싫다며 화를 내는 오빠의 밥 위에 올려놓는다.
“더럽기는 뭐가 더러워. 어서 많이 먹고 쑥쑥 크거라. 내 새끼!”
그러면서 연신 오빠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셨다.
“어머니! 애 버릇 나빠집니다. 어머님이나 드세요.”
보다 못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머니는 그것이 대체 무슨 해괴한 소리냐는 듯 화를 버럭 내셨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 나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우리 양호가 맛있게 먹는 것이 훨씬 더 배부르다.”
그럴 때마다 손자밖에 모른다며 언니는 할머니에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할머니가 밉지 않다.
차례 음식 준비를 위해 아침 일찍 돼재와 앵밑에 사시는 작은어머니가 장터에 올라오셨다. 마당 한쪽에 임시 아궁이를 만들어 솥뚜껑을 엎어놓고 작은어머니는 전을 부칠 준비를 한다. 잘 달궈진 솥뚜껑 위에 납작하게 썬 돼지기름 덩어리를 올려놓자 지글거리며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미리 준비해 둔 배춧잎과, 넙적넙적 하게 썰어 채반에 담아놓은 고구마, 호박, 무, 동태 포와 물에 불려놓은 북어와 오징어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옷을 입혀 노릇노릇 부쳐 채반에 담아낸다.
어제 내가 딴 들깻잎과 맨드라미 잎, 배춧잎, 쪽파는 치자열매를 우린 물을 넣은 반죽에 무쳐 솥뚜껑 위에 놓고 손으로 다독거린 뒤 국자로 밀가루 반죽을 끼얹어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작은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침을 삼키는 내가 안 되어 보였던지 작은어머니가 방금 부친 전을 내 입에 넣어주고 주섬주섬 작은 채반에 담아주며 말씀하셨다.
“제사도 산 사람이 먹고살아야 지내는 것이여, 자 이거 할머니한테 가서 간이 맞나 물어보고 오너라.”
나는 작은어머니 말이 백 번 천 번 옳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늦게 엄마와 할머니가 엿과 강정을 만들었다. 내가 몰래 한 개 집어 들었다가 엄마한테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이놈의 손모가지! 되지 못한 가시나가 제사 지낼 음식에 어딜 함부로 손을 대.”
엄마가 어찌나 세차게 내 손등을 후려쳤던지, 나는 아프단 소리도 하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야만 했었다. 그런데 작은어머니는 죽은 조상보다 산 사람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행여 엄마에게 들켜 뺏길까 봐 얼른 방으로 들어와 할머니 앞에 채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할머니! 작은어머니가 간이 맞나 봐 달래.”
방을 훔치던 할머니가 걸레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채반 앞으로 다가앉으셨다.
“그래, 어디 간 좀 보자. 맛있게 부쳐졌나.”
손으로 전을 찢어 입에 넣으려던 할머니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애써 침을 삼키는 내 입에 먼저 넣어주며 말했다.
“참, 우리 덕이 정구지 적을 좋아하지?”
따뜻한 정구지 전을 덥석 한입 베어 물자 고소한 전이 입안에 사르르 녹아들었다.
“맛나냐?”
할머니가 손으로 쭉 찢은 전을 자신의 입에 넣으시면서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이 딱 맞은 게 맛나게 부쳐졌구나. 내 눈치 볼 것 없다. 이리 가까이 당겨 앉아 실컷 먹거라.”
나는 채반 앞에 바싹 다가앉아 깻잎 전이며, 호박전, 그 밖의 전들을 골고루 맛을 본다. 엄마 몰래 먹는 전이 정말 맛이 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치듯 채반 가득한 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고 빈 채반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 사이 작은어머니는 세 개의 채반 가득 종류별로 담아 장독 위에 올려놓고 계속 전을 부치고 계셨다.
“할머니가 간이 잘 맞다고 그러시대?”
“네, 할머니가 아주 맛나게 잘 부쳤데요.”
“덕이 너도 많이 먹지, 모자라면 더 주랴?”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공진동에 사는 영숙이처럼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와 동갑이며, 이종사촌인 영숙이는 얼굴과 몸 전체가 바싹 말라 앙상하다. 그런데 배만 남산 만하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쌕쌕거린다. 엄마 말에 의하면 영숙이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한 것은 식충이처럼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