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 16회 아버지와 소다

장편소설

by 가야

16회 아버지와 소다


언니가 솔잎을 따오고, 작은어머니가 마루에서 송편 반죽을 한다. 엄마는 미리 삶아서 준비해둔 송편 속으로 밤이며, 콩, 팥, 깨 등을 마루에 죽 늘어놓고 송편 담을 소반과 쟁반을 내오셨다. 언니와 오빠는 깨가 든 송편을, 아버지는 나처럼 밤과 콩이 든 송편을 좋아한다. 점심때가 얼추 되자 막냇동생을 업고 마실 가셨던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순희네 집에서 점심 먹고 가라고 붙잡는 데 그냥 왔다. 때가 되었는데 우리도 점심을 어떻게 때워야 할 것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솥에 밥 안쳤어요. 어머니! 시장하시면 단술(식혜)이라도 한 그릇 갖다 드릴까요?”


엄마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아니 됐다. 순희네 집에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아무 생각 없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무 밥 안쳐놨어요.”


“무 밥?”


“네, 어머니!”


“그거 좋지, 무밥은 뭐니 뭐니 해도 정구지(부추)쫑쫑 썰어 넣고 양념장에 쓱쓱 비벼 먹어야 제맛이 나는데 양념장도 만들었냐?”


“그렇지 않아도 정구지 뜯어다 동서가 양념 맛있게 만들어 놨어요.”


“오랜만에 무 밥 먹어보겠구나.”


누비포대기를 풀어 막내를 마루에 내려놓으며 할머니는 웃었다. 할머니는 왜 질컥하고 맛도 없는 무밥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밥이 싫다. 그건 오빠나 언니도 마찬가지다. 참 이상하다, 우리들이 싫어하는 무밥을 뭐가 맛있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까 전을 미리 먹기 잘했다. 땅바닥에 팔방을 그려놓고 혼자 팔방 놀이를 하고 있는 데 나무를 지게에 가득 진 아버지가 온다.


“아부지!”


나는 돌을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천천히 오거라, 넘어질라.”


“아부지, 잘 댕겨 오셨어요?”


나는 까치발을 짚고 서서 지게 위에 먹을 것이 있는지 살핀다.


“아버지, 먹을 거 없어?”


“있지, 오늘은 맛있는 으름 넝쿨 걷어왔다.”


“야, 신난다.”


일을 나간 아버지가 귀가하실 때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봄이면 참꽃(진달래) 한 무더기가, 가을이면 으름이나, 다래, 까맣게 익은 머루를,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겨울에는 하다못해 칡뿌리라도 캐어 오신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면서 우리들 먹을거리를 잊지 않고 챙기셨다.


“아부지! 작은어머니가 맛있는 적 겁나게 많이 부쳤다.”


나는 아버지가 없는 동안 집에서 일어난 잡다한 일들을 참새처럼 종알대면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래 맛나더냐?”


“응, 아주 맛있어. 근데 아버지 오늘 점심은 할머니 좋아하시는 무 밥했대.”


“그거 잘됐구나. 할머니가 아주 좋아하셨겠구나?”


“응, 할머니 순희네 집에 마실 가셔서 이것저것 집어먹어 밥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시더니 엄마가 무 밥했다니까, 정구지 넣고 양념간장에 맛있게 비벼서 한 숟가락 드시겠대, 근데 아부지!”


“왜?”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로 지게를 받쳐놓고 나무 단 위에 있는 으름 넝쿨 한 가지를 건네주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잘 익어 흰 속살이 드러난 으름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한다.


“아버지, 나는 무 밥 먹기 싫어. 그니까 아버지가 이따 엄마 보고 덕이는 다른 밥 주라고 해. 알았지?”


“무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러냐? 먹기 싫어도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 먹기 싫다고 안 먹고 그럼 쓰나?”


“그래도 싫어. 밥이 진 것도 싫고 무 냄새도 맡기 싫어.”


“알았다. 근데 만약 찬밥 남은 게 없으면 그땐 너 점심 굶을래?”


아버지가 쌈지에서 잎담배를 꺼내 곰방대 가득 넣어 입에 물면서 말씀하셨다.


“그럼, 아부지가 무 밥 대신 적이나 주라고 그래!”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시며 하늘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샛노랗다.


“알았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지의 얼굴빛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아부지! 왜 또 배 아파?”


아버지가 힘없이 담뱃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후딱 소다 먹어.”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한다.


“소다 봉지 나무하다 잃어버렸다.”


그 몹쓸 병이 다시 도지는지가 보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아버지가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는다.


겁이 더럭 난다. 울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아프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소다 봉지를 꺼내어 한 숟가락씩 소다를 입안에 털어 넣으셨다. 그러면 통증이 좀 덜하다는 것이다. 소다는 우리 집 비상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들 배가 아프거나 체했을 때도 엄마는 소다를 조금씩 먹게 했다. 소다는 우리 집의 비상약인 동시에 만병통치약인 셈이었다.


“그럼 내가 얼른 집에 가서 소다 가지고 오까?”


“됐다. 거진 다 왔는데 쪼금 참았다가 집에 가서 먹으마,”


배를 감싸 쥐고 주저앉아 고통을 삭이던 아버지가 억지웃음을 보인다. 지게를 걸머지고 간신히 아버지가 일어섰다.


아, 아버지만 안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으름 씨를 땅에 뱉어내며 아버지보다 한 발 앞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지문을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부지 오셨어.”


“잘되었다. 밥도 뜸이 다 들었는데 때맞춰 오시는구나.”


행주로 부뚜막을 훔치던 엄마가 말했다.


“근데 엄마, 아부지 많이 아픈가 봐.”


“뭐? 느 아버지 시방 어디 계시냐?”


엄마의 안색이 변하더니 들고 있던 행주를 힘없이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쉰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참 쉬었다가 시방 집으로 오고 있어.”


“소다 많이 드시대?”


그렇게 묻는 엄마의 두 눈은 두려움이 가득하다.


“아니,”


“그렇게 많이 아프다면서 소다를 안 잡수셨어?”


엄마의 안색이 환해진다.


“응, 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 소다를 잃어버렸대.”


내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를 거듭하던 엄마는 아예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왜요, 성님 아주버님 많이 편찮으신가요?”


송편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온 작은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엄마를 보고 말씀하셨다.


“그런가 벼, 요새는 늘 소다로 사는데”


“성님, 참말 큰일이네요. 소다를 그렇게 많이 드시면 위에 안 좋을 텐데.”


“그러니 어쩌겠나? 소다 말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걸,”


“아주버님 지금 오시는가요?”


앵밑에 사는 막내 작은어머니가 나무를 지고 집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제수씨! 고생이 많네요.”


“마땅히 제가 할 일인데요. 수고는 무슨.”


“어머님 저 댕겨 왔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뒤 헛간 옆에 방금 산에서 해 온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오냐! 어서 오너라. 아침 먹고 느지막하게 가더니 그새 나무를 그렇게 많이 했냐, 시장하지?”


그러면서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혼잣소리로 말씀하셨다.


“되재 작은놈이 지 성 반의 반 만이라도 닮았으면 좀 좋아?”


아버지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더 노래졌다. 할머니 걱정하실까 봐 통증을 참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일곱 살인 네게 너무 벅찬 일이다.


“아부지, 많이 아파?”


“이제 괜찮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거짓말!”


“참말이야. 이제 하나도 안 아파.”


“아냐! 시방도 아버지 얼굴이 노란데?”


자신을 걱정해주는 어린 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실은, 아주 쪼끔 눈곱만치 아프단다. 그렇지만, 우리 덕이가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해주니까 참을만하다.”


“참말?”


“그럼. 참말이고 말고.”


“아버지. 내가 빨리 커서 아버지 병 꼭 고쳐줄게.”


“고맙다, 우리 딸이 최고구나.”


“소다 잃어버렸다며 아파서 어떻게 참았어요? 그냥 오시지 나무는 뭐 하려고 저렇게 많이 해 와요? 미련하게 사람이 아픈데 저까짓 나무가 다 무슨 소용이 있다고.”


아픈 아버지를 보살필 생각은커녕 오히려 핀잔만 하는 엄마가 너무 밉다.


“목소리 낮춰. 어머님 들으시면 걱정하셔. 날 따습고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나무 한 짐이라도 더 해다 놔야지 엄동설한 때 때지. 내가 아파 덜컥 누워 봐, 나무 구경을 어디서 하겠어.”


“그래도 몸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무리하다가 오히려 병이 도져 덜컥 눕기라도 하면 그땐 참말 어쩌려고 그래요?”


“어허, 그만 하래도 어머님 들으시겠네. 잔소리 그만하고 손이나 씻게 물이나 한 바가지 떠와!”


하루가 다르게 볼품없어지는 봉숭아 옆에 놓인 세숫대야 앞에 아버지는 쭈그리고 앉으셨다. 대야에 손을 담그신 아버지는 벌써 몇 번째 통증을 참느라 손 씻는 것을 멈추고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아프면 심란하고 불안하다.


내일이 추석인데 그동안 잠잠하던 아버지의 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작은어머니가 엄마 몰래 쥐어준 대추 한 주먹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선 나는 부러울 것이 없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샛길을 걸어간다. 이 집 저 집에서 차례 음식을 만드느라 맛있는 냄새로 안성장터에 가득하다.


호박잎으로 덮인 길수 네 돌담을 돌아가면 낮은 언덕이 있다. 언덕 위에는 큰 밤나무 여섯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며칠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언니와 오빠는 이 언덕으로 뛰어간다. 간밤에 떨어진 알밤을 줍기 위해서였다.


밤나무는 언덕 땅 주인인 대성상회 소유지만 저절로 떨어지는 알밤은 부지런한 아이들 몫이었다. 점심때가 지났으니 그사이 떨어진 밤이 꽤 있을 것이다. 다행히 밤나무 밑에는 아무도 없다.


때마침 바람이 불자 밤나무 잎과 가지가 흔들리고 알밤과 밤송이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나는 얼른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밤나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떨어지는 밤송이를 맞으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아프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잠잠해졌다. 밤나무는 언제 흔들렸냐는 듯 의연하고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밤나무 아래로 달려가 떨어진 밤을 줍는다. 알이 몹시 굵다. 방금 밤송이에서 떨어진 밤들은 한결같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잠시 주웠는데 치마는 밤으로 가득 찼다. 언니나 오빠가 있다면 떨어진 밤송이를 쉽게 까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주먹보다 더 큰 밤송이들을 보고 그냥 가는 일은 욕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잠시 망설인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잔가지가 무성한 둔덕에 날아가 살며시 앉는다. 둔덕 아래는 바람이 모아둔 낙엽이 소복하다.


나는 밤송이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며 하나하나 집어다 언덕 밑으로 날라 낙엽 더미에 감춰놓았다. 그리고는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아부지!”


치마 가득한 밤 자랑을 하며 아버지부터 찾는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조막만 한 것이 어딜 그렇게 싸돌아 댕기다 오냐?.”


허리에서 책보를 풀며 언니가 말했다. 나는 밤이 담긴 치마를 언니 앞으로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것 봐라!”


“아니, 이렇게 많은 밤이 어디서 났냐?”


“내가 주웠다. 언덕에서.”


“참말? 아침에 다 주워왔는데 그새 이렇게 많이 떨어졌데?”


언니는 좀처럼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어서 들어와서 밥 먹지 않고 뭣들하고 있냐?”


반 바가지도 넘는 밤을 엄마 앞으로 내밀었다.


“엄마, 이것 내가 주워왔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큰 알밤을 많이 주워왔다냐?”


엄마와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언덕에 겁나게 떨어져 있었어. 이거 삶아서 아부지 드리려고.”


“우리 덕이 참말로 효녀구나. 알이 이렇게 굵은데 이걸로 차례 지내면 조상님들이 아주 좋아하시겠다.”


할머니가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모처럼 내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수저를 드시는 아버지의 안색은 아까보다 화색이 돈다. 다행히 나는 무밥을 먹지 않았다. 엄마가 오빠를 위해 무 밥 한쪽에 따로 쌀을 안쳐 밥을 했기 때문이다.


“덕아, 참말로 언덕 위에 알밤이 그렇게 많대?”


오빠가 내게 묻는다.


“응, 오빠. 그리고 밤송이도 엄청 많이 떨어졌다.”


“그 밤송이들 다 어쨌냐?”


“나는 가시 땜에 못 까잖아.”


“그래서 어쨌냐고?”


“오빠 오면 나중에 까라고 감춰놓았다.”


“참말, 어디다 감췄는데?”


“언덕 아래 찔레나무 덤불 아래.”


“그래? 그럼 다른 애들 오기 전에 빨랑 가보자.”


오빠가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양호야! 할머니 수저도 아직 안 내려놓으셨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서면 어떻게 하냐?”


아버지 때문에 심기가 미편한 엄마는 오빠에게 눈을 흘기며 건성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빠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여 밥도 제대로 못 먹게 하느냐며 내 허벅지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아야!”


졸지에 엄마의 공격을 받은 나는 너무 아파 입속에 밥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입을 벌리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밥상머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런 엄마를 나무라신다.


“사람도 참,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소리 안 들어봤소?”


할머니가 엄마 어깨를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근게 말이여. 덕아! 괜찮다. 이따 느 에미 혼내 줄팅게 그만 울고 어서 밥이나 먹거라.”


할머니까지 내 편을 들자 와락 서러운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다. 나는 그만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만다.


“이놈 가시내 내가 뭘 어쨌다고 울고 지랄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아버지 몰래 눈을 흘긴다. 그렇지만 아버지만 곁에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덕아! 괜찮다, 어서 밥이나 먹거라.”


아버지가 내 등을 두들기며 수저를 쥐어준다. 서럽게 울음을 삼키며 밥을 먹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오빠와 함께 언덕을 향해 내달린다. 명절을 앞둔 때라 밤나무 아래에 아무도 없다.


“어디? 어디다 감춰놓았다고?”


나보다 한 발 앞서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간 오빠가 숨을 헐떡이며 묻는다. 나는 찔레나무 밑을 손으로 가리켰다. 다행히 내가 숨겨놓은 밤송이들은 그대로 있다. 오빠가 두 발로 밤송이 가운데를 밟아 옆으로 밀면서 쇠꼬챙이로 껍질을 벗기면 모자 쓴 알밤이 그 고운 모습을 드러낸다.


밤송이 속에는 대개 세 톨의 밤이 들어있다.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것은 약간 홀쭉하고, 가운데 밤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두 톨만 들어있는 밤송이도 있고, 커다란 밤 한 톨만 있는 밤송이도 있다. 덤불 밑 밤송이를 까서 오빠는 주머니란 주머니에 나눠 담고, 나는 그동안 떨어진 알밤을 줍는다.


오빠와 둘이서 주머니가 터지도록 불룩하게 밤을 주워 집으로 오는 길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빠가 밤 껍데기를 벗겨 속살이 하얀 밤을 내민다. 풋밤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오빠가 또 한 개의 밤을 꺼내어 껍질을 벗기려다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건 굵으니까 추석 차례상에 깎아 올려야겠다.”


생각까지 아버지 같은 오빠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 말이 아니더라도 오빠는 잘 생겼다. 새까만 눈썹이며, 커다랗고 부리부리한 눈은 영특함으로 빛나고 얼굴 중앙 우뚝 솟은 코는 쭉 뻗어 있고, 입은 남자답게 도톰하면서 의젓하다.


사람들은 오빠를 보면 ‘어유, 그놈 참 잘 생겼다.’ ‘나도 저렇게 인물이 훤한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라고 하나같이 말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원관 집 아주머니의 오빠에 대한 칭찬은 그 끝이 없었다.


“언니! 어쩌면 양호는 저렇게 잘 생겼을까? 언니는 정말 복도 많아. 저런 아들을 두었으니 밥 안 먹어도 배도 안 고프겠어요.”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 오빠만큼 잘생긴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빠는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공부와 운동 심지어 싸움도 잘한다. 전쟁놀이를 할 때도 오빠는 언제나 대장이었다.


아, 정말 그런 오빠를 둔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다. 사람들은 내 이름보다 잘생긴 양호 동생, 공부 잘하는 양호 동생, 싹수 있는 양호 동생으로 불렀다. 엄마는 양호 엄마였고, 아버지도 양호 아버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들이 전혀 서운하지 않다.


앞서 걷는 오빠가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른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요즘 오빠는 심심하거나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면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오빠가 그 노래를 어찌나 많이 불렀던지 나도 그 노래를 2절까지 다 외운다.


오빠의 구성진 휘파람 소리는 여전히 뜸북뜸북 뜸북새를 부르고 나도 덩달아 오빠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그 노래를 부르면서 뽕나무 가지를 흔들며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던 오빠의 말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노래는 꼭 오빠와 나를 두고 만든 노래인 듯하다. 오빠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면 서울로 갈 테고, 노랫말처럼 오빠는 내게 비단구두를 사다 줄 것이다.


아, 어서 그날이 왔으면!


돌담 위에 왕잠자리 한 마리가 한가롭게 앉아 있다. 오빠가 휘파람을 멈추고 가만가만 까치발을 짚고 다가가 날쌔게 잠자리를 잡아 건네준다. 왕잠자리는 꽁지를 꾸부리며 콩같이 동그란 얼굴에 새까만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몸부림을 친다. 왕잠자리는 행동이 민첩하고 날쌔 잡기 힘든 잠자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긴다.


“오빠! 우리 이 왕잠자리 시집보내자.”


“그럴까.”


오빠가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잘라왔다. 그리고 내게서 넘겨받은 잠자리 꽁지 끝을 약간 잘라낸 뒤 나뭇가지를 끼워 넣었다. 왕잠자리는 원치 않는 무거운 나무 꽁지를 매달게 되었다.


“자, 이제 됐다.”


오빠가 나무 막대기를 꽁지에 매단 왕잠자리를 날리고 나는 큰소리로 말한다.


“잠자리가 시집을 간대요. 얼레리 꼴레리 왕잠자리가 시집을 간대요.”


잠자리 시집보내는 일이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엄마나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나무라신다. 온통 황금들판으로 물든 논에는 허수아비가 바람에 우쭐대고, 때마침 부는 바람에 빈 깡통의 요란한 소리는 고요한 들녘을 흔든다.


좁은 논둑에 콩까지 심어놓아 더더욱 비좁은 논길을 조심하며 걷는다. 메뚜기들이 앞다투어 숨는 소리로 부산하다. 말린 메뚜기 반찬은 오빠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나는 논가에 있는 강아지풀을 뽑아 잡은 메뚜기를 꿰어 넣는다. 곧 강아지풀 줄기는 메뚜기로 가득 찼다. 주머니 속엔 토실토실한 알밤이 손에는 메뚜기 꿰미를 달랑달랑 들고 귀가하는 길이 마냥 즐겁다.


한숙이네 논두렁을 지나 우리 논두렁으로 접어들었다. 논 가장자리가 휑하니 비어있다. 그저께 아버지가 추석날 차례 때 햅쌀밥을 올리기 위해 베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벌써 벼들을 베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추석날 조상님 차례 때는 모두 햇것을 쓰는 거란다. 밥도 햅쌀로 짓고, 밤이나 대추, 감, 그 밖의 여러 가지 음식들도 모두 그해에 수확한 햇것으로 하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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