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자재마트에 들렀다 많은 인파로 그냥 나온 일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조금 이른 시간이라 마트 뒤편에 있는 갈산 근린공원을 산책하기로 한다. 공원 앞 교회에 있는 파초와 꽃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보았던 파초를 지난번에 볼 수 없어 마냥 아쉬웠기 때문이다. 교회는 도로변 코너에 있어 건물의 세 면이 도로와 맞닿아있다. 지난번 산책길에 두 면만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 아파트 진입로 쪽을 살펴보기로 했다.
내 생각이 옳았다. 파초가 그곳에 있었다.
아파트와 인접한 곳에 좁고 긴 공간에 파초가 2그루 천사의 나팔꽃이 무려 5그루가 있다. 천사의 나팔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조금 바쁘게 움직였다. 대지가 첨차 어둠에 물드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귀가했다. 다음날 마트에서 물건값을 지불하려는데, 새로 발급받은 카드가 없어졌다. 핸드폰 케이스에 넣어둔 카드가 사진을 찍을 때 빠진 모양이었다.
카드 사용이 일상화된 나는 카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용하지 않는 것을 모두 정리하고 직불카드 겸용인 그 카드만 사용한다. 난감한 일이다. 허둥거리다 카드사에 분실신고를 하고 통장 잔액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분실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새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 은행에 방문해야 한단다. 무통장 거래를 한 지 오래이고, 특별히 현금이 필요할 때 ATM기를 사용하므로 은행에 갈 일은 거의 없었다. 오전 11시 은행으로 향했다. 주거래 은행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얼마 전 은행에서 문자로 내가 이용하는 은행이 곧 없어질 예정이라는 통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은행에 볼 일이 없어 무시하고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는데 문을 닫는다는 날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카톡이 울린다. 카톡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건너가시지 그래요."
양산을 쓴 백발이 고운 할머니가 한 말이었다. 나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며 할머니에게 묵례로 감사 인사를 하고 차도를 건넌다.
은행에 가기 위해서 차도를 건너서 다시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 걸음걸이도 얌전한 할머니도 내 곁에 선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도 은행에 볼 일이 있어 가신다는 걸.
다시 신호등이 바뀌고 서둘러 길을 건너 할머니는 인도로 나는 은행가는 지름길인 아파트 단지 샛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은행 문이 닫았다.
은행이 이전을 하였으니 아래 약도를 보고 가까운 지점을 찾아가서 일을 보라는 친절하지만 기분이 언짢은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점에 가려면 다시 10분을 걸어야 한다. 그곳은 양천구청 뒤 양천 보건소 건물 1층에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 양천구청 앞에서 신호등을 다시 한번 건너고 양천구청 현관문을 지나 긴 통로 끝에 있는 양천 보건소 건물에 당도했다. 보건소 주차장에 코로나 간이 검사소가 늘어서 있다. 이 간이 검사소 뒤에 있는 건물 1층이 바로 은행 지점이다.
은행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잠시 땀을 식힌다. 은행 창구에 대기자가 가득하다. 20여 분쯤 기다렸을까,
그때 조금 전 신호등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은행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익숙하게 대기표를 뽑아 들고 내 곁에 앉으신다.
"더운데 고생하셨어요."
그 말에 씩 웃으시는 할머니, 내 차례가 되어 카드 발급을 의뢰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다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 것 같아 조금 기다렸다 같이 오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인 고객의 업무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창구 직원과 고객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현금 인출이나 이체 같은 간단한 업무라는 사실이었다 할머니의 업무도 현금 인출을 하기 위해 한 여름 더위에 먼 이곳까지 거의 40분을 걸어오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있는 고령의 지인들은 대부분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을 쓴다. 카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카드 사용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고령의 노인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창구 직원과 잘 소통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문 앞에 있던 보안요원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도와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장이 다르다며 창구 직원은 다른 도장을 요구했다. 핸드백을 뒤적거리신 할머니는 없다고 하시고, 그럼 집에 가서 다른 도장을 가지고 오라고 하자 난감해진 할머니 그만 울상이 되신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일이다. 은행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신분증을 요구했고 마스크까지 벗어 할머니 신원을 확인한 뒤 다행히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어 새로운 통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기존의 통장은 앞으로 사용할 수 없으니 새 통장과 도장을 사용하라고 말씀해 준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눈만 껌벅거리고 친절한 보안요원이 조금 큰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전달해 준다.
할머니의 얼굴이 비로소 환해졌다.
"알았어요."
"기존 통장에 사용할 수 없다는 뜻으로 X 표를 해주세요. 할머니 헷갈리지 않으시게."
보다 못해 내가 거들자 보안요원이 기존 통장 표지에 크게 X자를 그려줬다.
은행 업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할머니에게 버스를 타시라고 말씀드렸다. 내게 묻는다. 나도 버스를 타겠느냐고? 내가 걷겠다고 하자 할머니도 걸어가시겠단다. 택시를 타자고 했더니 할머니는 한사코 거부하신다. 어쩔 수 없어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그러면서 이어진 대화.
할머니가 1928년 생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이시다.
국가유공자 아내인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걷는다. 아파트 단지 안 의자에 앉아 쉬는 동안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해군 장교였던 남편과 사별하고 삼 남매를 키우신 얘기, 보험회사에 다니며 세 아이를 공부시킨 일, 수의 봉사를 15년이나 하셔서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세 번도 넘게 받았다는 일.... 등
수의 (壽衣) 봉사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집 근처까지 다 왔다.
점심시간은 훌쩍 지난 뒤였다. 할머니에게 무엇을 좀 드실 거냐고 여쭤보니 치아가 안 좋아 드시지 못한단다. 그때 요구르트 아주머니 전동차가 보인다. 할머니가 서둘러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불러 세운다. 그러더니 우유를 구매하신다.
내가 돈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할머니와 우유를 마신다. 95세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와 사는 동을 물어보신다. 할머니에게 카드를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리니 웃으시며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