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
지난번 마늘을 까다 도저히 다 깔 수 없어 저장이라는 명목으로 이웃들의 조언을 듣고 10kg 중 1/3쯤 김치통에 신문과 마늘을 켜켜로 넣어 위에는 신문을 두 겹으로 덮어 김치냉장고에 보관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늘이 걱정이 되었다.
김치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보니 뽀송뽀송하던 신문지가 젖어있고 마늘도 눅눅하다.
화들짝 놀라 김치통에서 젖은 신문지를 빼내고 물을 가득 부어놓았다.
그렇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마늘 까는 중노동이 시작되었다.
그런 내가 안 되어 보였던지 동생이 도와주겠단다.
다행히 물에 불린 마늘은 까는 게 수월했다.
지난번 마늘 까느라 손가락 끝 허물이 다 벗겨져 한동안 고생해서 내성이 생겼는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까고 또 까고 TV를 보면서 3시간여를 깐 끝에 드디어 마늘을 다 깠다. 지난번 경험이 축적된 영향인지 아니면 물에 불려 까기 쉬웠기 때문인지 쉽게 마무리한 것이다.
다 까놓고 보니 뿌듯하다. 썩고 상한 마늘을 따로 모아 두고 씻은 마늘을 물이 빠지라고 소쿠리에 담아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잤다. 다음날 아침 베란다에 있는 마늘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마늘이 제대로 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마늘이 매끈하게 껍질이 모두 벗겨진 것이 아니라 속껍질이 붙어있거나 겉껍질까지 일부 남아있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오래전 동생과 어머니는 신촌에서 갈빗집을 운영했었다. 갈빗집 특성상 마늘과 상추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재료였고 이따금 식당에 가면 엄마는 상추를 씻으시거나 마늘을 까거나 얇게 저미고 계셨다.
그때마다 심심찮게 나와 설전이 벌어졌는데, 마늘 까는 일 때문이었다.
엄마가 깐 마늘은 내가 깐 마늘같이 깨끗하지 않았다. 속껍질이 그대로 붙어있어 지저분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짜증을 냈고 엄마는 씻으면 다 없어진다며 화를 내셨다. 한 번에 깨끗이 까면 두 번 일을 안 해도 되는데 왜 그러냐고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그때 엄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깨끗하기가 칼 같은 엄마가 어째서 마늘은 지저분하게 까는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집안이 흐트러지거나 더럽혀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아 쌓아 두거나 빨래를 벗어 쌓아 두는 일도 우리 집에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그날 벗은 양말은 그날 밤에 빨아 널고 자야 했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가 사용한 그릇은 그때그때 반드시 씻어 제자리에 엎어 놓아야 했다.
그런 엄마가 왜 마늘 까는 일은 깔끔하지 못한 지...
마늘을 깔 때마다 투덜거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엄마가 한 말은 이랬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그게 뜻대로 되는지"
마늘을 깨끗이 까는 일과 나이가 대체 무슨 상관인지 나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 햇살에 드러난 마늘을 보면서 어젯밤 내가 깐 마늘이 오래전 엄마가 깐 마늘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끗이 씻어놓은 마늘 곳곳에 비듬처럼 허옇게 속껍질이 붙어있다.
잠시 나는 충격으로 가만히 서서 죄 없는 마늘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커다랗게 울려왔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그게 뜻대로 되는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엄마가 그때 왜 마늘을 그렇게 깔 수밖에 없었는지...
눈이 나빠 잘 보이지 않아 그렇게 깔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내 나이는 그 당시 엄마 나이보다 십 년도 더 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