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탄생화
나는 사초, Carex라 불리는 풀이다.
사람들 눈에는 그저 흔한 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오랫동안 바람과 물가를 지켜온 식물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도 나는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형제인 납작보리사초가 그의 화단에서 자라며, 이미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왔다. 누군가 식물을 사는 길에 선물처럼 따라온 작은 풀, 이제는 삼 년도 넘게 자리를 지키며 화단의 한 식구가 된 존재.
봄이면 나는 대나무처럼 곧게, 벼처럼 늘씬하게 새순을 올린다. 그 모습만으로도 우아한 기품을 풍기지. 그러다 여름이 오면, 보리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듯한 이삭을 내놓는다. 이름도 그대로, 납작보리사초.
이름 하나에도 고마움이 담겨 있다. 누군가 나의 모습을 보고, 그 생김새를 떠올리며 붙여준 이름. 덕분에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내 모습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름을 지은 이들의 마음과 시선이 늘 고맙다.
나는 눈길을 끌지도, 큰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병충해도 거의 없고, 장마가 져도 스스로 견뎌낸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관심이 적어 미안하다는 그 마음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마다 점점 풍성해지며 청량한 기운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하는 것, 그것이 내 몫이다.
나는 외떡잎식물 벼목 사초과에 속한다. 세계에 2,000종 가까운 나의 친척들이 있고, 한국에도 140여 종이 자란다. 땅속줄기를 품고 여러 해를 살아가는 다년생 풀. 산과 들, 바닷가 모래땅, 습지와 연못가까지, 땅과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는 뿌리를 내린다.
내 줄기는 세모지고 속이 차 있으며, 잎집은 갈색이나 자줏빛을 띤다. 작은 이삭 같은 꽃을 피우는데, 겉은 수수해도 속에는 암꽃과 수꽃이 나란히 들어 있다. 눈부시게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자연은 내가 맡을 자리를 알고 그렇게 빚어주었다.
사람들은 내게 ‘자중(自重)’이라는 꽃말을 주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묵묵히 제 몫을 지키며 살아가는 내 삶에서 비롯된 이름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끌지 않아도 좋다. 다만 흙을 붙잡고, 바람과 물을 막아내며, 작은 생명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자라지만,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되는 존재다.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속은 꿋꿋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세상을 지탱한다.
오늘도 화단 한쪽에서, 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속삭인다.
“나를 대변해 주는 이여, 화려하지 않아도, 남들이 몰라주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히 빛나는 삶이 된다.”
https://youtu.be/sMTbSK76aHw?si=48UO2HiUZJxM6F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