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꽈리 이야기

12월 29일의 탄생화

by 가야

12월 29일. 오늘의 식물은 꽈리, Winter Cherry이다. 학명은 Physalis alkekengi var. francheti. 동아시아와 유럽, 서아시아에 넓게 걸쳐 분포하는 식물이지만, 나는 이 식물을 더 좁고 선명한 장면 속에서 기억한다. 시골 장독대 옆이었다. 국화와 과꽃이 가을바람에 물들어 가던 자리, 그 곁에서 얇은 막처럼 붉게 익어가던 꽈리가 있었다.

우리는 씨를 빼내고 속껍질만 남긴 채 입에 대고 불어 소리를 냈다. 아주 오래된 장면이지만, 그 단순한 놀이 속에 그 시절의 햇살과 냄새, 바람과 공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꽈리는 오래전부터 약재로 기록되었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산장(酸漿)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해열과 해독, 이뇨 관련 처방에 사용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 용례일 뿐, 현대 임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된 상태는 아니다. 익지 않은 열매에 독성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언급도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식물을 약초로 대하는 것보다는 그 형태와 이야기가 주는 감각으로 바라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꽈리의 상징 의미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미’, ‘순수한 마음’, ‘소박한 아름다움’, ‘평온함’이라는 의미가 주로 소개된다.

반면 유럽과 영어권에서는 Chinese lantern이라는 이름 아래 ‘행운’, ‘번영’, ‘보호’, ‘변화와 성장’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미가 공존하는 이유는 이 식물의 외형이 한 가지로 단정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얇고 붉은 자연미가 먼저 떠오르고, 서양에서는 이국적인 등불 모양의 상징성과 ‘멀리서 온 빛’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읽힌다.

예술 속에서도 꽈리는 작은 강조점으로 쓰였다. 동양에서는 가을빛을 인도하는 작은 등불처럼 표현된 적이 많고,

서양 정물화에서는 곡식과 과일, 금빛으로 빛바랜 병 가운데 한 점의 붉은 악센트로 등장한다. 작고 가볍지만, 계절의 온도를 보존한 채 오래 남는 조형적 존재. 그것이 꽈리이다.

나는 이 식물이 좋아 화단에 몇 포기를 심었는데, 번식력은 놀라울 만큼 강하다. 뽑아내도 다음 해 다른 자리에서 다시 올라온다. 공간이 넓다면 공존이 가능하겠지만, 제한된 화단에서는 결국 다른 식물의 자리를 잠식한다. 그래서 매년 뽑아내고 다시 뽑아내는 과정을 거듭하면서도, 몇 포기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아무도 더 이상 눈길 주지 않는 붉은 열매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한때 너무 흔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존재가, 점점 사라질수록 오히려 더 귀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꽈리도 그 중 하나다.


https://youtu.be/HkL2-jWpGXM?si=ZJmcI40fsiynIN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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