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향기! 납매(臘梅)

12월 30일 탄생화

by 가야

12월의 끝자락은 언제나 마음을 조금 더 깊게 가라앉히는 계절입니다. 길고 긴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듯한 이 감각 속에서, 저는 늘 납매(臘梅)를 떠올립니다. 겨울 한가운데 피어나면서도 그 향은 은근하고 또렷하여, 그 순결한 노란빛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꽃. 바로 납매입니다.

납매(臘梅)는 원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학명은 Chimonanthus praecox입니다. praecox라는 종소명은 ‘이르게 피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한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먼저 꽃을 열어 보이는 겨울의 문지기 같은 식물입니다.

간혹 납매(臘梅)가 측천무후와 연결되어 언급되는 글을 볼 때가 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혹독한 겨울에 피어난 납매의 상징성과 강렬한 여성 권력을 지녔던 측천무후의 이미지를 후대 문인들이 비유적으로 겹쳐 쓴 표현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중론입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납매를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비견시키며 군자(君子)의 지조(志操)와 고결함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고전 전설도 전해집니다.

눈과 얼음이 모든 것을 덮고, 바람이 나무마저 꺾어버리던 한겨울 어느 날, 한 노승이 혹독한 추위 속을 지나가다가 작은 움막을 발견합니다. 움막에는 한 소녀와 어머니가 서로를 의지해 겨울을 버티며 살고 있었지요.

노승이 너무 지쳐 쓰러지자 소녀는 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노승은 떠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마음은 반드시 은혜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 해, 엄동설한에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는 노란빛의 꽃이 이 집 앞에 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납매의 첫 시작이라는 이야기. 사람들은 이를 ‘추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납매의 꽃말 또한 인내(忍耐), 지조(志操), 고결(高潔)이라는 의미가 대표적입니다. 오랜 시간 향이 간직된 겨울밤의 이야기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이 남는 꽃입니다.

원향매(Chimonanthus praecox var. concolor)

납매는 종류도 몇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소달매(小達梅) 외에 꽃잎이 더 두터워 향이 더욱 깊은 종도 있습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납매 꽃봉오리를 건조시켜 향긋한 납매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다만 정확한 체질과 용량이 중요하여 과다 섭취 시 속이 더부룩해지거나 두통을 유발하는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어, 생활 속 음용은 적정한 양으로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예술 속 납매는 늘 ‘겨울 속 고독한 빛’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시인들은 흰눈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떠오르는 납매의 노란빛을, 고요한 세상의 한 줄기 의지처럼 노래했습니다. 설경 속에서 차분히 향을 퍼뜨리는 납매는,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는 듯한 정적의 미학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12월 30일이라는 날짜는 늘 한 해의 마지막 풍경을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저는 이 시기마다 이 꽃을 떠올립니다. 눈 속의 미세한 황금빛.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먼저 피어나는 용기. 그런 것들이 납매를 단순한 겨울꽃이 아니라, 시간을 지키는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어 줍니다.


겨울 속에서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제 자리에 서 있는 것. 그런 삶이야말로 어떤 화려한 계절보다 더 큰 빛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는 납매 앞에서 또 한 번 하게 됩니다.





https://youtu.be/vWYuBzZfmWc?si=hWe7A1fvqugxCe4u

매거진의 이전글추억 속, 꽈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