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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ar Dec 03. 2024

나는 자해하는 엄마입니다

사춘기 시절의 그날처럼

(앞의 글에 이어 쓰는 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을 겨우 등원시키고 난 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 모든 책임을 묻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어딘가에 쏟아내야 했다.


가장 안전하면서 치명적인 것은 나 자신이었기에 나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가족들 앞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죽여버릴거야, 죽어버려라고 외쳐댔다. 목이 따갑고 기침이 나며 눈물이 터졌다.


그리곤 거울을 보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같은 살 가치도 없어. 맞아도 싸. 더 맞아야 해. 차라리 죽어버려”라고 외치며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뺨이 부어올랐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더 세게 때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일생동안 나는 맞아본 적이 많지는 않았다. 대체로 순하고 착한 아이였기에 그랬지만 한참 반항이 심한 사춘기 시절에도 우리집에서는 나를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 왜 혼내는 어른이 아무도 없지? 왜 내가 자해를 하고 방에서 틀어박혀 소리를 지르며 욕을 내뱉어도 할머니 뿐 아니라 모든 친척어른들이 그저 말 한마디 못하는 게 이상했다. 나는 내심 빗자루 몽댕이로 실컷 두들겨 패주길 바랐다. 그렇게라도 해서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그런 것도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아니기에 아무도 쉽게 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엄마 아빠 없는 아이를 함부로 때린다는 것은 가족들은 차마 할 짓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발악하는 아이를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괜히 혼냈다가 삐뚤어지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그것이 어른들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철없던 사춘기의 그날처럼 뺨이 부어오르게 나 자신을 때리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아파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아이를 향한 죄책감과 한심한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순간에는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미쳐가는 내가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 숨어지내는 내 안의 또다른 자아..


내가 외면해왔던 혹시라도 드러날까 꼭꼭 숨겨왔던 나 자신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외로움이었고, 두려움이었다. 슬픔이자 버림받은 마음이었다.

물리적으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있듯 사람의 감정 또한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고 한다. 그것이 마음 저 깊은 곳에 있어 의식하지 못했을 뿐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 감정덩어리는 이제 나를 잡아먹을 듯 분노의 에너지가 되어 나타나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외친다.

“이제와서 날 버리려고 하지마. 난 절대 안 떠날거야”


내 얼굴이 저렇게 무서웠나 싶을만큼 마치 싸이코패스같은 얼굴로 내가 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슬펐기에 나는 악마같이 변한 내 모습에서 순간 연민을 느꼈다.



이토록 내 자신을 방치하고 버려두고 살아왔었구나. 내 감정을 꾹꾹 눌러 살아온 결과 이토록 마음이 썩어문드러져있었구나. 그런 마음이 분노가 되고 슬픔이 한이 되었구나.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니 남편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 남자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이 있겠지. 아이를 향한 사랑이 아프지만 잠시 그렇게 나타난 것이겠지.


아이도 자라면서 엄마아빠에게 맞기도 하고 혼도 나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오후 하원을 하고 온 아이는 엄마에게 웃으면서 안겼다. 그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울컥 하는 감정을 재빨리 추슬러 집으로 향했다.


곧이어 퇴근하고 온 남편은 오자마자 막내에게 뽀뽀를 했다. 그건 아마도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언어였을 것이다. 나도 아이도 그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찹쌀밥에 갈치를 굽고 된장국을 끓였다. 밑반찬은 김치 하나에 지극히 평범한 저녁상이지만 ‘오늘의 이 평범한 하루’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안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떠한 감정도 잘못된 것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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