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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Jun 13. 2023

괜찮아, 침착해

영화 '나 홀로 집에 2'를 보면 케빈의 부모는 비행기 시간에 놓칠세라 정신없이 뛰어가다 아들을 두고 탄다. 나에게 케빈은 노트북이었다. 가진 물건 중에 가장 값이 비싸고 똑같은 것을 다시 구할 수 없고 잃어버렸을 때 가장 가슴이 철렁한 것이었다. 장시간 비행 끝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해 그제야 노트북이 없는 걸 깨달았다. 몸은 한국에 도착했지만 나의 분신, 아니 분신처럼 여겼어야 할, 노트북은 아직 런던 공항에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도 정확히 기억했다. 탑승 직전 마지막 관문으로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바구니에 내려놓고 수색문을 통과한 뒤, 그때 미처 노트북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노트북은 패딩과 다른 바구니에 넣으라고 안내받은 것까지 기억했다. 급하게 패딩을 챙겨 입고 티켓에 적힌 시간을 확인했고 탑승하는 곳이 바로 눈앞에 있어 안도했던 순간까지 전부 생생했다. 반면 그 속에 노트북을 챙긴 기억만 없었다.


국제선 타기 전에는 적어도 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건만 예상치 못한 교통 체증에 겨우 오십 분 남짓 남기고 도착했다. 비행기를 놓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캐리어를 가지고 탈 수가 없는데 짐 부치는 시간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내 공항에 도착해서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웨어 이즈 코리안 에어"를 외치곤 달렸다.


한국은 여섯 시에 퇴근하지만 여기는 다섯 시면 퇴근한다는 걸 잊고 네시면 낮이니 교통 상황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공항에서 여권 확인하며 들어가는데 줄이 꽤나 있어 마음이 초조해져 갔다. 그 줄이 화장실 줄이었다면 당장이라도 바지에 실례할 것 같은 표정이었을 거다. 하지만 짐 수색을 하는 지점에서는 더 이상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탑승이 시작한 것도 아니고 설령 시작했더라도 거기서부터는 오분이면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비행기 타기까지 삼십 분 정도 기다렸다. 그렇지만 '내가 평소에 이런 사람이 아닌데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는 자괴감에, 놀란 정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웠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시간 개념이 철저한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된 거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뇌가 얼어버릴 것 같더라도 어렵겠지만 침착하자. 그 어떤 일이라도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나와 똑같은 일을 겪어보았다. 나에게 처음일지언정 누군가에게는 꽤 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괜찮다.


다행히 노트북은 찾았다. 히드로 공항 분실물 센터 홈페이지를 수십번 새로고침한 결과 한국으로 무사히 배송 받을 수 있었다. 상당히 비싼 값을 치렀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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