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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 아니고 증오의 음악학부

by 이가연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니,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오빠가 저 말을 했을 때 얼마나 묘한 감정이 들었는지 모른다. 첫째는, 나만 느낀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그럼 뭐 나한테만 그랬겠는가? 이 학교 음악학부는, 모두에게 다 그랬던 거다. 둘째는, 슬픔이다. 내가 학교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다 좋아한 만큼 실망을 한다. 사우스햄튼 도시 자체는 나와 안 맞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강남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시골도 시골도 그런 시골이 없다. 그런데 학교 가는 것만큼은 참 좋아했다.

오빠의 저 얘기로 깨달은 게 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다. 버티면 동지가 생긴다.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겠는가.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 '나한테만 이러나? 대체 왜 이러나?' 생각이 들면 힘들어진다.

음악학부 다른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수업 관련 외에는 말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했다. 당연히 과제, 시험 관련한 메일은 대답을 하겠지. 내가 밴드 관둔다고 하니까 그건 답장 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험 관련해서 내가 이의제기 했던 메일이며, 하도 메일 답을 안하니까 만나서 얘기하자고 언제 괜찮냐고 묻는 메일이며, 그밖에 무수한 메일을 학생 때부터 다 무시했다. 그래서 그렇게 교수를 하나둘 포기했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한 여섯 명 되는데, 예를 들어 한 명은 이미 작년 2월에 포기하고, 한 명은 작년 여름에 포기하고 이런 식이다. 도대체 어떤 학교가 학생이 선생을 하다하다 지쳐서 포기하게 하나.

지난 달엔 그래서 두 명에게 분노의 메일을 보냈었다. 정말 그럴만 했다. 그 친구처럼, 정말 딱 과제, 시험 얘기만 했으면 분노할 일도 없었다. 학생 때도, 졸업생 때도, 나는 심하게 노력했다. 저 학교가 품기엔 내가 너무 우수한 학생이었던 거 같다. 학생대표하면서도 석사생 중에 제일 적극적이고 말 많았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이렇게 팽당할 줄 알았으면 그 에너지와 시간을, 차라리 라이프 드로잉이나 다녔으면 행복했겠다.

음악학부는 칭찬할만한 게 눈곱 짜가리만큼도 없다. 처참했다. 석사생이 절반은 클래식, 절반은 보컬이라 기악 파트가 없어 밴드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학사 때 밴드 경험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기대했다. 그런데 학사생과는 교류할 기회도 전혀 없었다. 졸업 공연을 영국에서 안 한건 내 잘못이지만, 그렇다해도 난 학교에서 공연을 단 한 번 했다. 심지어, 내가 오픈마이크 공연을 다니거나, 라디오 DJ를 하는 것도, 비자 문제로 떨떠름해했다. '돈을 안 받는데 무슨 문제인가' 싶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봉사도 안 된단 거였다. 그러면 학교에서 음악 활동을 시켜줘야할 거 아닌가. 나는 단순히 수업 들으러 온 게 아니었다. 혼자서 학교 밖 활동이 활발했단 건, 그만큼 학교에서 할 일이 없었단 뜻이다.

유일하게 교류하는 교수가 한 명 있다. 내가 하도 그걸 강조해서, 나의 다음 학년도부터는 이런 연합 공연을 하여, 내가 말을 안 했으면 그런 공연은 없었을 거라고 나에게 참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얘기 들으면서 참 씁쓸했다. 아, 나는!!! 그 홍콩인 교수는, 유일하게 내 연락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분을 엄청 칭찬했지만, 사실상 그 분도 대단히 나에게 해준 게 없다. bare minimum, 당연한 걸 해준 사람이 그 분 한 명이었다. 사우스햄튼이 애증이라면, 학교 음악학부는 그냥 증오만 남은 셈 같다. (사우스햄튼은 걔와 연관이 있으니 사랑이 남아있고, 음악학부는 전혀 아니니 증오만 남은 것인가.)

'학교가 잘한 것. 소정의 장학금을 줘서 내가 사우스햄튼 선택하게 한 것. 그래서 걔를 만나게 한 것.' 싶었는데, 그것도 음악학부랑은 관련 없다. Arts & Humanities 부서에서 준 거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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