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Hyperfocus 하이퍼포커스 능력

by 이가연

나의 다름을 보면서 소중하고 귀한 능력이라 생각해주는 것도 물론 좋다. 그런데 내 뇌를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뇌가 어떻게 다르게 돌아가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기보다 상대도 뇌 구조가 같아서 말하지 않아도 알면 좋겠다.

p85 "아니 우리 아들은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있는데 어떻게 ADHD예요?" 한다면, 그렇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런 게 '하이퍼포커스'로,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집중하여 주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인지가 안 되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은 ADHD인에게 흔하게 발견된다.

- 아니, 공부를 좋아하는, 혼자 책만 읽는 게 좋은 ADHD 어린이가 어디 있나 한다면 여기.. 있었다. 그래서 ADHD 진단이 늦었다. 나는 ADHD 진단을 성인 이후로 받은 사람들 모아두고, 여기서 공부 좋아하셨던 분? 잘하셨던 분? 손 들어보게 하고 싶다. 지금 2030대는 특히, 우리 어릴 때는 ADHD라고 하면 가만히 못 앉아있는 남자 애들만 떠올렸다.

p88 많은 ADHD인이 자신들의 관심이 아예 없거나 100%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아주 신나거나 아예 재미 없는, 중간이 없다. 그래서 이렇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최대한의 집중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 상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ADHD인이 그들이 즐기지 못하는 일을 한다면, 아마 잘하지 못할 것이다. 동기 부여가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열정 있는 일을 하여 그 일에 헌신한다면, 엄청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 이 얘기도 전에 쓴 적이 있는 것 같다만, 살면서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중에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요'와 같은 고민 상담에 흔히 보일만한 질문이 이해가 안 됐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잘 못하지. 아니 잘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좋아하지. 이해가 진짜 안 됐다. 그게 ADHD라서였다. 난 10살 때부터 노래를 잘했다. 노래 레슨 받기 전부터 잘해서 이미 반에서 가창 대회 예선에 뽑혀서, 본선 대비를 위해 처음 성악 학원에 갔다. 특별히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잘했다. 그래서 노래를 못 했으면 그냥 싫어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 '하이퍼포커스' 장점은, ADHD인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에 특출나다. 창의력, 문제 해결력, 도전 정신 같은 건 어느 정도 노력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갑자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친듯이 몰입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p90 그가 사회적으로 전혀 관심이 없는 것과 인터뷰를 잘하는 것,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ADHD 관점에선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하이퍼포커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런 상황이 충분히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그런 관심을 보이면, 그들도 그걸 보고, 더 마음을 열어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는, 충분히 흥미롭지 못하니 그는 지루하게 된다. 그는 아예 아무 관심이 없거나, 인터뷰를 본인이 진행할 때처럼 모든 관심이 있거나, 중간이 없다.

- 내가 진지하고, 그러면서 때론 웃긴, 나랑 맞는 극소수만 대화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다 ADHD 영향이다. 3시간이 30분 같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과 얘기하는 건 너무 힘든 거다. 나를 정말 좋은 사람, 요즘 애들 같지 않은 사람으로 보거나 부담스럽고 힘든 사람으로 보거나, 세상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도 중간이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은 나도 대체 내가 왜 이러나 너무 힘들었어서, ADHD 진단 이후로 계속 언급하게 된다. 내가 인터뷰를 받는 입장에서는, 질문을 아무리 받아도 좋다.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인 상황에서 질문 두 번만 해도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게 되었다. 바로 숨 막히고 목 졸리는 느낌이어서인데, 하지만 처음 듣는 질문, 신박한 질문, 고품격 질문에는 눈을 반짝거리며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고, 보통 다 도파민이 전혀 안 나오고 너무 싫어지는 거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이것이다.

만난지 1분 됐는데,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해야된다는 게 참 힘들다. 눈 앞에서 담배 피는 것 마냥, 즉시 꺼달라는 얘기인데, 힘들게 말을 해도 질문을 계속 한다. 나에겐 마치 담배 냄새 힘들다고 했는데 안 끄는거랑 똑같아보인달까. 비유가 참 정확하다고 느껴진다. 말했는데 안 끄는 사람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야 된다. 노력 노노해.

p91 자신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ADHD 기질을 가진 사람에겐 특히 더 하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못 찾았다면, 계속 찾아라. 그래도 못 찾겠다면, 더 오래 찾아라! 빠르든 늦든, 너는 성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ADHD 환자들 경험을 토대로하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걸 할 때 하이퍼포커스를 찾았다.

- 예술가. 오빠도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다. ADHD 기질이 아예 없고서야 가질 수 없는 직업이다. 그동안 나는 음악하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친구 찾기가 힘들었던 거 아닐까. 이 오빠를 알게된 이후로, 사람 만나는 풀이 중요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93 그런 컨디션이 아니었던 동료들에 비해, ADHD인은 더 긴박한 상황에서 쉽게 하이퍼포커스할 수 있었다. 그들은 먹거나 자는 것도 잊고 일을 끝냈다. 하지만 비 ADHD인 중에서는 같은 압박 환경에서 그런 강렬한 집중이 관찰되지 않았다.

- 그래서 ADHD인이 일을 미루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이라고 한다. 마감일이 얼마 안 남았을 때의 그 긴장 상태를 뇌가 즐기는 거다. 그런데 이건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일을 받으면 좀 이상할 정도로 빨리 해치운다. 남들과 다르면.. 그것도 ADHD다. 영국에서도 한 달 반은 남은 과제를, 이미 한 달 전에 끝내곤 했다. 나는 '빨리'에 초점이 맞춰줘있던 거 같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빨리 하는 것에 도파민이 도는 거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왜 사업가, 정치인 등이 다 ADHD일 거라 하는지 더 이해가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버릴 수 있는 능력, 이거저거 안 따지고 일단 뛰어드는 능력, 이게 과연 비 ADHD인이 아무리 자기 계발, 동기 부여 책과 영상을 많이 본다고, 또 노력한다고 될 일일까.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일정 레벨 이상은 타고나야할 것 같다.

내가 ADHD 때문에 가진 약점들이 그냥 타고나서 힘든 것처럼, 비 ADHD인들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는데 나에겐 당연하고 쉽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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