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6개월째 연애 중이란 사실을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절대 솔로라고 생각했다.. 원래 자기 연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지만,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친구라곤 한 명밖에 없는데, 그렇게 오래 연애 중인 것도 몰랐으니 서운할 만하다.
여기서 2년 전에 있었던 담배 사건이 떠올랐다. 이제 그냥 그렇게 부른다. 그 친구는, 내가 "너 담배 안 피지?" 라고 했을 때 펄쩍 뛰며 아니라고 한 장면이 세게 각인됐던 거다. 하지만 오빠는 어떤가. "오빠 연애 안 하지?"라고 했던 기억도 잘 없으니 펄쩍 뛴 기억이 없다.
'내가 솔로 취급해도 그냥 넘어갔으니까 그게 속인 거 아니냐!!!' 싶었지만 이해가 된다. 원래 연애 얘기 안 한다는 말도 이해가 되고, 내가 그 분야에 있어서 너무 아픔을 겪고 있는 걸 매일 지켜봤기 때문에 선뜻 '나는 연애하지롱'하기도 힘들었을 거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나는 말했다. 여자친구랑 싸우거나 본인이 힘든 날에도 그걸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어떻게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냐. 그랬더니 그럼 내가 이렇게 힘든 모습 보면서 거기서 또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근데 맞는 말이다. 원래 남의 얘기 들으면,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에 속이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나도 듣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원래 얘기 안 하는 사람인 걸 인정했다. '진정한 양어머니구나.' 생각도 했다. 엄마의 연애 생활을 자식에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 차이점도 더 확실히 느꼈다. 만일 "오빠는 여자친구 없지?" 라고 했는데 오빠가 펄쩍 뛰면서 "내가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딨냐"라고 한 장면이 기억에 박혀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이미 그릇이 박살 나서 테이프로 칭칭 감고 살아야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감정적 자극을 세게 받은 장면이, 원하지 않아도 뇌에서 자꾸 재생된다.
무엇보다 속이 시원한 부분이 있다. 그동안 오빠가 언제든지 "나 이제 여자친구 생겼다. 안녕"하고 사라져서 아주 가끔만 연락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 내가 가진,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불안은 너무 당연하다. 아무리 수십 번을 말해줬어도, '그래도 연애하면! 결혼하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찍 좀 말해주지 싶은 것이 크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았달까.
이 글이 왜 나왔냐. '2년 전에'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당사자는 본인 때문에 쓰는 글인지 알 것이다. 사실 나도 쓴 뒤에야 깨닫는다. 아. 걔 안심시켜 주려고 쓰는 글이구나. 나에게 모든 걸 다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단 걸. 원체 인풋 많으면 힘들어한다.
P.S. 이 글은 처음으로 발행 전 사전 허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