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슬픈 것은

by 이가연

한국에서 일본 노래 부르기는 아직까지 좀 어려운 거 같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젊은 세대 인식은 훨씬 낫지만, 관객 연령층이 워낙 다양해서 60대 이상도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가능한 건 요네즈 켄지의 레몬처럼 2030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곡이어야할 거 같다.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은 뇌에서 지워지지 않다고 하던가. 나 역시도 청소년기에 들은 그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에 공감한다. 다행히도 나름 다양하게 접했다. 일본 노래는 우타다 히카루 'First Love', 'Flavor of Life'처럼 발라드의 매력을 진작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처음 꾸던 시기부터 알고 있었다.

일본 발라드 특유의 뭔가 쓰린 감성이 있다. 쓴 커피 같달까. (커피도 까라멜 마끼아또밖에 안 마셔봤으면서) 하여간 뭔가 쓰다. 한국 발라드가 한의 정서를 건드린다면, 일본 발라드는 그 쓰림을 건드린다.



이 노래는 클래식 'Jupitar'를 워낙 좋아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멜로디가 명확히 들려서, 가사를 붙여서 노래해도 좋은 클래식이 내 취향이라는 얘기를 오빠에게 하던 중, 유튜브 뮤직에서 보고 '이미 있었네?'하고 찾았다. 역시 나만 생각한 게 아니었다.

반면 이 곡의 첫 인상은 좋지 않았다. 이미 클래식 원곡에 익숙해져있으니, 악기 구성이 계속 바뀌면서 뭔가 정신 없이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참 첼로 선율처럼, 진한 초콜릿처럼 느껴졌다. 역시 여자 저음이 멋있으면, 절로 '언니' 소리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듣다보니 6분 동안의 짧은 영화처럼 와닿았다. 노래에서 가사를 잘 안 듣는데, 궁금해서 이 곡은 가사도 찾아봤다. 그러자 이 곡이 더더욱 좋아졌다. 내가 느낀 경건함에 딱 맞는 가사였다.

클래식 '주피터'를 사랑한 이유도, 그 경건함에 있다. 오케스트라 곡은 7분이 넘는데, 그중 3분부터 딱 2분 가량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돌아보는 느낌, 결혼 서약해야할 것 같은 느낌, 서양 장례식 느낌도 난다. (결혼 서약이며 서양 장례식 다 실제로 한 번도 본 적 없다.) 이 곡은 다이애나가 생전 좋아하던 곡이라고 해서 좋아하게 됐던 곡이기도 하다. 명예 영국인답게 다이애나 좋아하고 누구 안 좋아한다.

다시 일본 노래로 돌아와서, 가사를 보면 이러하다.

꿈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것
-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것,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거기에 나의 사명이 있음을 근래 타로 채널하면서도 느꼈다. 나는 단순히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래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그칠 사람이 아니다.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더욱 더 모습이 명확히 그려진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고등학교 때에도, 힘들 때일수록 더더욱 나를 믿고, 내 꿈을 믿고, 꿈을 지키며 살아왔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고독이 있는 거라면, 의미가 없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요
- 가장 와닿는 가사였다. 나도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곡을 쓴 것도 어느덧 5월이다. 의도적으로 이제 진짜 곡 안 써도 된다고 피곤하다고 뇌를 멈췄다. 이 노래가 다시 나를 조금 자극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의미 부여를 하기 위해 하던 본능적 행동이 곡 쓰기였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럴 땐 가만 앉아만 있어도 술술 나왔다. 결과물이 없으면 너무 괴로우니 생존 본능이었다. 그런데 이젠 안 그런다. 어차피 의미가 없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으니.

우리들은 누구도 혼자가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 계속 사랑 받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노래할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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