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 영국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서 올렸다. 신나게 영국의 단점에 대하여 30분을 떠들었다. 그래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은 한국에 살면 편하고, 좀 남들과 다른 사람은 해외에 살아야 편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제 영국에서 사서 주구장창 입었던 바지랑 안녕하기로 했다. 커서 입기 불편할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길 걸어가다가 골라줬지만, 역시나 못 샀다. 바지 사기 굉장히 어렵다.
한국은 딱 44, 55, 66, 즉 스몰, 미디엄, 라지 세 사이즈가 전부다. 영국은 6, 8, 10, 12, 14, 16, 18, 20, 22까지 봤다. 난 지금 10 아니면 12인데, 한국은 12부터 안 판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55, 66이 안 들어가는 게 아니다. 남들 같았으면 충분히 다 입는다.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사놓고 안 입는 걸 알기 때문에 못 산다.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낮아서 손이 안 간다. 그래서 라지를 입으면 점원들은 '넉넉한데 왜 그러냐' 하지만 나는 "하. 아는데. 이 정도 불편해도 안 입게 된다." 한다.
2023년 가을부터 2025년 봄까지, 여름을 제외하고 같은 바지를 입었다. 그러니 늘어난 모양이다. 영국에 있을 때 몸무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늘어난 옷이.. 줄어들 순 없나.. 건조기를 돌리면 줄어들지 않나...
문제는 사이즈만이 아니다. 바지통이 넓으면, 그 통 넓은 게 다 느껴져서 못 입는다. 다리 전체가 다 걸리적 걸리적거린다. 다리에 생리대 찬 기분이다. (참고로 생리대도 불편해서 못 쓴다..) 그래서 한 번도 통 넓은 바지가 있어본 기억이 없다.
주구장창 입었던 바지는 부츠컷이다. 한국에 잘 안 파는 거 같다. 지난 9월 영국 갈 때, 한국에 도저히 여름 원피스를 마음에 드는 걸 구할 수가 없어서 원피스 사 오는 것만 신경 썼다. 바지도 없을 줄이야.
영국은 매장 들어가자마자 하나 입어보고, 원피스를 하나 사서 나왔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한국은 아예 원피스란 게 안 보이고, 온라인을 뒤져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무대에 서야 하니 온라인에서 중국산 원피스를 겨우 골랐었다. 고른 거 마저도 중국산이라 웃겼다. 한국산 원피스는 아무리 봐도 다 싫었다.
이미 영상을 찍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한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한국보다 영국 가면 옷 사는 게 훨씬 쉬운 사람도 있단 것도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한국은 절대 옷에 내 돈 나갈 일이 없이 엄마가 다 사주는데, 영국 가면 직접 사야 하기 때문에 거의 사지 않았다. 영국에서 바지, 롱패딩 살 때도 다 따로 보내줬다. 그거 살 돈만 보내줬으니, 다른 건 돈 쓸 의지가 없었다.
옷 한 벌 고르기 참 어렵지만, 내가 뭐 옷 고르기만 어렵나. 그냥 이렇게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영국에서 사 온 원피스가 얼마나 소중하게 보이는지 모른다. 나랑 맞는 사람 찾기는 옷 고르는 거보다 수백 배 어려워도,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귀해진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귀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모두였던 것이 슬플 뿐이다.
바지 한 다섯 벌 입어보고 못 산 걸로도, 이렇게 글 한 편이 나온다. 이 늘어난 부츠컷이랑 당분간은 잘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