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ADHD 몰라도 생존

by 이가연

ADHD인 거 몰라도 잘 살지 않았냐고요?

본인이 생존 스킬을 개발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덥고 추운 건 누구나 싫어합니다. '내가 이걸 왜 입고 나왔을까'하며 짜증이 나죠. 감각이 초예민한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요즘 같은 날씨에, 뭐 입고 나가야할지 너무 잘 압니다. 13도, 15도, 17도, 19도에 따라서 그 '2도 차이'에도 각각 입을 옷이 달라요. 일교차까지 다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서, 17도일 때 나가서 15도일 때 들어올 예정이잖아요? 그럼 넉넉~하게 15도 겉옷을 입습니다. 너무 덥거나 춥게 입고 나왔을 때, 감당이 안 되니까요.


그러니 저는 옷이 많은 게 별로 반갑지가 않습니다. 옷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옷은 입고 나갔다가 불편할 리스크까지 감수해야돼요. 입었던 옷만 입게 됩니다.


ADHD인은 똑같은 옷 여러 벌 사놓고 옷 고르는 스트레스 줄여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생각해보세요. 저는 그걸 몰랐거든요? 근데 알아서 학교 티셔츠 하나 사온 걸 잘 입으니까 여러 벌 더 사오더라고요. 그런 생활 속에 하나하나가 다 힘드니, 스스로를 어떻게든 더 편하게 해주려고 진화해왔습니다.




영국 취직 원서를 넣을 때 보면, ADHD는 장애 중에 'Learning difference'에 들어가있어요. 학업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너는 6개 국어를 하잖니."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할 말이 있습니다. 영국 유학 갈 때, 영어 시험 성적을 제출해야했어요. 영국이면 아이엘츠를 보는 게 보편적이죠. 그런데 저는 아이엘츠 문제를 도저히 못 풀 거 같았어요. 그냥 제가 독해 실력이 부족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ADHD였던 거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지만, 글자를 80%도 안 읽어요. 정말 몰입한 책이어야 70-80% 정도 읽는 거 같고, 평균 50% 될까 말까합니다. 그냥 쉭쉭 넘기죠. 고등학교 때도 그래서 국어는 힘들었고, 영어는 쉬웠어요. 영어는 지문 제대로 안 읽어도 쓰윽 봐도 주제가 딱 보이는 쉬운 문제들이 많은데, 국어는 꼼꼼하게 안 읽으면 못 푸니까요.


그래서 저는 듀오링고 시험(DET)하고 PTE를 봤습니다. 원래 LA 학교 가려고 DET를 봤었고, 사우스햄튼은 PTE로 제출했었는데요. 둘 다 '실용적인 영어 시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PTE는 막 '방금 들려준 문장을 그대로 말하세요'와 같은 재밌는 문제들이 있었어요. 그런 시험 유형은 처음이라, 도파민이 돋았죠.


그래서 저는 일본어, 중국어로 말은 잘해도, 한자는 거의 못 읽습니다. 난독증 40%가 ADHD도 같이 있다고 하니, 제가 ADHD만 있는지, 난독증도 같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난독증 검사도 한 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인터넷으로 뭔가 열심히 하면, 안구 건조증과 두통이 자주 찾아와서요.


늦게 진단 받은 성인 ADHD인들은, 다 저마다 생존 기술이 있을 겁니다. 저도 하나하나 찾아보면 더 많을 거예요. 몰라도 잘 살았기 때문에 진단이 늦었던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은 거니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DHD, 나를 알아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