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글
처음 보는 한국인들에게 받는 상처는 다음과 같다. 물론 워낙 평상시에 계속 일어나는 일이라, 상처는 아니고 '짜증'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영국 가고 싶게 만든다. 특별히 '영국'이 좋아서가 아니다. 미국 유학 갔었으면, 미국으로 계속 갔을 거다. 익숙한 곳이 거기라 그렇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 뒷 팀이 와있길래 "두 분이서 공연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봤다고 치자. 그럴 때 "엇, 아니요."라고만 하면 그당시에는 "아..." 하고 돌아서지만, 집에 오면서 또 한국 사람 욕하기 시작한다. 이유가 뭘까.
영어로 바꿔보자. "Oh! No." 하면 얼마나 이상한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아무도 "Oh! No. no."하지 않는단 말이다. 지난 9월 영국에 갔을 때도 느꼈다. "여기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일지언정 서로 TMI를 잘 털어서, ADHD가 ADHD 티가 잘 안 나겠다' 싶었다. ADHD의 약점이 상대방이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잘 파악이 안 되고 내 얘기만 와다다 하기 쉽단 거다.
영국은 계산하면서 "어우 오늘 바람 엄청 부네요."라고 하면, "그치. 근데 이 정도면 별로 안 부는 거야. 지난 주엔 정말 심했어. 그래도 지금 시기가 나아. 여름엔 사람 엄청 많아." 정도는 말해준다. 이게 기본이다. 내향형이고 외향형이고 나발이고 내가 본 평균이다. 이 따뜻함 때문에 자꾸 영국 가는 셈이다.
그런데 내가 본 한국 사람들은, 나의 질문에 "아 저는 혼자 공연하고, 이 쪽은 저 공연 보러 와준 친구예요."도 어려워하는 거 같다. 내가 기대하는 건, "아 저는 혼자 공연하고, 이 쪽은 저 공연 보러와준 친구예요. 방금 공연하시는 거 잘 들었어요. 옷 되게 예쁘시네요."까지인데 내 안의 나는 그걸 바랐으니 복장 터지나보다. 나도 이렇게 쓰면서 깨닫게 된다. '두 문장도 못하냐?'싶었는데, 내가 바란 게 두 문장이 아니다. 진짜 바라는 말은 한국인들에게 너무 수준 높구나.
영국이고 미국이고, 누가 봐도 딱 튀는 옷이나, 가방, 목걸이 등 '얼굴이 아닌' 칭찬할 요소가 있으면 처음 딱 봤을 때 칭찬하는 게 기본 중에 기본이다. 슈퍼에서 장 보다가도 자켓 너무 이쁘다 어디서 샀냐는 소리, 바닷가에서 사진 찍다가도 골져스하다고 칭찬 받았다. 내가 말을 걸었으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보이는 거 칭찬하는 걸 기대한다. 그러나 그건 바라지도 못하니까, 적어도 문장으로 똑바로 대답해주길 바라는데 그거 되는 사람 진짜 없다.
내가 만일 "와 모자 너무 예뻐요."라고 한다면 머쓱하게 "아아 네." 할 거다. "아아 감사합니다."라도 하면 다행이다. 그 누구도 거기서 나에게 똑같이 아무거나 칭찬해줄 거란 상상도 안 된다. 한국에선.
영국은 어느 상점에 들어가도, 어느 처음 만나는 사람을 봐도, 웃으면서 맞아줬다. 설령 폭풍 질문을 해서 숨 막히게 하더라도, 이 '거절감'을 느끼게 한 사람은 못 봤다. 근데 한국은 '폭풍 질문' 아니면 '벽 치는 사람들'이다. 아닌 경우는 1%다. 이게 진짜 힘든 이유는, 그 아닌 사람 1%가 나타나면 내가 너무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100명 중에 99명하고 다 말하기 싫으니, 그 1명한테 계속 선톡하고 만나자하다가 지쳐나가떨어져왔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대화가 잘되는 사람이면, 얼마나 사교성 좋은 사람인가. 오빠와 친구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오빠는 30명의 사람들이 카톡 100개씩 보내도 다 읽고 다 답하고 다 감사하게 느끼는, 보기 드문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별명이 신부님이다. 일반인은 그렇게 감당 못 한다.
내가 ADHD라서, RSD(거절 민감성)이 있어서 매번 이렇게 짜증나나보다.
내가 영국을 잠깐만 있다 와서, 거기도 분명 안 좋은 점 많은데, 좋은 점이 더 각인되어 이러나보다.
내가 타고난 내향인인데 사람들에게 툭 말을 걸게되는 건 ADHD 특성 때문이라서인데, 외향인이었으면 괜찮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좀 안 들게... 전반적인 한국인이 그냥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건 젊은이들의 문제다. 아파트 반상회도 하고, 윗집 아랫집 이웃끼리 친하게 지낸 경험이 있는 어른들은 덜 그런 거 같다.
그래서 영어에 좀 자신이 없는 한국 사람들이 외국 나갔을 때 걱정이 될 정도다. 누가 뭐 물어봤을 때 Yes 나 No 로만 대답하면 아주 무례하다... 물론 그 정도면 외국인들도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알겠지만 그래선 안 된다.
나에겐 가장 정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