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우울증 잡아내는 법

by 이가연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다. 밥만 봐도, 어떤 사람은 아예 안 먹을 수도, 어떤 사람은 폭식하게 될 수도 있다. 우울증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 '초기' 우울증은 본인, 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알아차리기 쉽다. 아래는 나의 초기 우울증 증상들이다.


1. 일상 : 샤워하기, 밥 먹기가 매우 힘들다.

해야된다는 건 아는데 거기까지가 힘들다. 밥을 안 먹으면 에너지가 확 떨어지고, 에너지가 떨어지니 샤워할 힘도 없고, 샤워를 안 하니 밖에 안 나가게 된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밥부터 해결해야 한다. 괜히 혼자서 체크할 때 '밥, 잠, 통증 유무'를 떠올리도록 습관 들여둔 게 아니다. 잠은 잘 자는 편이기 때문에, 보통 밥 아니면 신체 통증이거나 둘 다다.


2. ADHD + 우울증 결합 증상 : 필터가 하나 사라진 기분이다.

ADHD만 가지고도 즉흥적, 충동적이다. 원래 우울증도, 우울하고 슬픈 게 아니라, 분노가 많아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난 원래도 ADHD 약점 중에 '충동성'이 특화되어있다. (사람마다 ADHD 주요 증상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주의력 결핍 증상이 거의 없다.) 그러니 그 둘이 만나면 파국이다. ADHD 하나만 가지고는, 장점을 드러내며 살 수 있는데, 우울증이 치면 약점이 드러나기 쉬워진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이 많아진다. 차분히 쓰는 게 아니라, 뭔가 가슴에서 욱해서 쓰기 때문이다. 하루에 7개씩 글을 올리던 시기는, 다 우울증이 결합된 시기라고 본다. 평소에는 발행 전에 몇 번이고 검토를 거친다면, 검토가 줄어든다.


비 ADHD인은 원래 말하기 전에 필터 5개를 가지고 있다고 치자. ADHD인은 한 2개 쯤 가지고 있다. 그러니 ADHD인은 사회 생활하기 힘들다. 가면 쓰는 걸 잘 못한다. (본인이 안 그러기 때문에, 가면 쓰는 사람들 구별 자체도 어려워하는 거 같다.) 말과 행동이 충동적으로 그냥 튀어 나온다. 그런데 우울증이 오면, 필터가 더 줄어서 1개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싶어진다. 하지만 예전 상담사가 누누히, '그 정도는 말해도 된다. 지금 말하면 안 되는 거 말한 거 하나도 없다.'라고 했지만, 내 심장에서 욱!! 하고 올라오는 정도가 상당히 다르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내 안에는 그러면 안 됐던 때의 데이터도 많기 때문이다.)


3. 과거 매몰

과거 경험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원래도 ADHD인은 남들보다 감정을 백배로 느끼는데, 우울증이 오면 진짜 안 된다. 그래서 올 1-2월에도, 6-7월에도 몇 주씩 우울증 약을 먹었다. 사실 원래 이 가을이 제일 고비다. 원래도 사람들이 '가을 탄다'고 하는데, 나는 날씨가 아니라, 그냥 과거가 굉장히 껴있다. 몆 주 전에는 길을 걷기만 해도 하라언니 얼굴이 둥둥 떠다녔고, 어제는 도서관 가는 길에도, 오는 길에도 걔 생각에 울었다.


올해 우울증 약 먹은 시기를 보아하니, 딱 시기별로 알겠다. 계절이 확 바뀔 때마다, 4-5개월마다 치는구나. 알았으니 내년엔 더 잘 살 거다. 감사하게도 늘 약한 우울증만 겪고 지나가서, 1-2주만 약 먹어도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나에게는 좀 감기다. (물론 약을 수년간 먹어도 치료가 어려운 우울증 환자 분들도 많다.)


4. 과거에 조울증으로 오진 되었던 이유. 도파민 결핍

분명 며칠 전까지만해도 날라다녔다. 너무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날 괴롭히는 스트레스 하나 없다고, 이런 시기가 어딨냐고 좋아했다. 이게 과거 조울증으로 오진 났던 이유다. 과거엔 그 시기가 조증, 지금이 우울증이라고 전문가들이 판단했다. 그 탓에, 나는 기분이 좋아도, 행복해도 '이거 어차피 조증 아니야?' 하고 불안해했다. (그게 최악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조울증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판명 났다. 그냥 유튜브가 잘 되니 기분이 좋았던 것 뿐이다. 수익이 팍팍 들어오는데 누가 기분이 좋지 않겠나. 당연한 기쁨이다. 이것은 ADHD로 설명 된다.


그러다가 도파민 분비가 팍 떨어진 것이다. 알고리즘 팍 탔던 영상 조회수는, 점점 느는 속도가 줄었다. 원래는 자다 일어나면 댓글이 33개도 달렸는데, 이젠 기껏해야 4-5개다. 하나도 없던 날도 있었다. 이미 그거만 봐도 도파민 떨어질 이유 충분했다. 또한 유튜브로 뜻하지 않게 돈을 벌게 된 건 알겠는데, '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어쩌다 점쟁이가 되었나. 사람들이 노래를 안 들어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이 들게 되었다. 노래 채널 조회수는 10이 될랑말랑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타로 채널을 하려는 욕구가 팍 꺾였다.


'내가 지금 어떤 것에 확 도파민이 날뛰었다가, 갑자기 팍 꺾였는가' 보면 초기 우울증을 잡아낼 수 있다.




쓰고 나니, '지금 초기 맞아?' 싶다. 글 쓰기 전에 이미 병원에 전화해서 다음주 예약했다. 진짜 초기였으면 병원 예약하지도 않는다. 보자보자하니까 맞는 거 같으니 전화한다. 목 아플 때도 '이게 과연 병원 갈 정도인가' 하지 않나. 마찬가지다. (다른 환자분들은 안 그러실 수 있지만) 나에겐 감기와 같으니, "요즘 우울증 약 다시 먹기 시작했어."라고 해도, 제발 심각해하지말고 '아. 한 2주 감기 걸렸구나.' 생각해주면 좋겠다. 어차피 내년에도 또 찾아온다. '평생 다시는 감기 안 걸리겠어!' 백날 다짐해봐라 막을 수 있나. 가장 효과 좋은 감기약을 알고 있는 게, 감기 기운 들었을 때 빨리 약 먹는 게 방법이다.


혼자서도 잘해요.



P.S. 이 노랠 듣고 불렀으니 우는 게 당연하다.. 이건 뭐 매운맛 떡볶이 먹고 콧물 훌쩍이는 거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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