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원하는 걸 추구해라

by 이가연

원하는 걸 그냥 추구해라.


작년에 한국 돌아와서 나에게 집을 구해주느라, 엄청 많은 돈을 날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쓰렸다. 그 돈이었으면 영국에서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숙사 소음만 없었어도, 그렇게 나를 욱하게 만들어서 한국에 안 왔을 수 있다. 그건 ADHD인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반인도 미치고 팔짝 뛸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 구한 집조차도, 집에 있을 수 없이 소음 문제가 생겼다. 도대체 하늘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는 말을 종종 보지만, 도망치는 사람은 천국을 바라고 도망치는 게 아니다. 지옥만 아니길 바랄뿐. 근데 한국은 지옥이었다. 불지옥.


기숙사에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면, 영국에서도 새로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너무 참고 참아서 6월에 폭발해버리는 게 아니라, 6월부터 9월까지 있을 집을 구할 재력이 있었단 말이다. '우리 집에 이런 재력이 있구나' 뒤늦게 알았으면 영국에 다시 갔으면 안 됐나. 아무리 학생 비자를 끊어버리고 갔을지라도, 영국은 무비자 입국 가능하다. 뒤늦게 남은 두달이라도 학생 생활 할 수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한 게 절대 늦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진짜 죽을 거 같아서 당일 비행기로 갈 정도면, 졸업 공연 때까지 두 달도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거기 살 수도 있었다. 작년 8월의 나는 진짜 죽을 거 같았다. 죽을 거 같다는데 충분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정신과 문제가 아니라, 영국 땅만 밟아도 숨 쉴 거 같았다. 물고기가 스포이드로 한방울 한방울 물을 공급 받다가, 바다에 들어갔다고 비유를 했다. 그랬으면 그냥 '나는 진짜 한국에서 죽을 거 같으니까 돈 좀 보내달라' 했어야 된다. 왜 죽을 거 같은 걸 참고 살았나. 누구도 나를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냥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되었다.


ADHD인이 우울증을 만나면 파국인데, 영국에선 안 그랬다. 그때는 한국성 우울증이었다. 한국이라서 우울했던 것뿐이었다. 누군가를 마주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는 한국 땅에 돌아왔다는 지독한 상사병이었는데, 그건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학교를 돌아다니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 당시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와도, 다른 병원에 가도, 약이 듣질 않았다. 정신과를 오래 다녔지만, 한 번도 수면 문제로 그랬던 적이 없다. 잠은 항상 잘 잤다. 그런데 딱 그 시기만, 몇 달을 하루에 3시간 이상 못 잤다. 당장 못 만나도, 그 도시에서 걸어다니기만 했어도 숨 쉬어졌는데.


내 시야가 왜 그렇게 좁아졌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전 뇌과학자 강연에서, 본인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며 말씀하셨다. 자살하는 사람들 시야가 정말 좁아져있다고. 그게 우울증 환자 사고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맨날천날 '누가 설리랑 하라를 어디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서 한 달 살기 하라고 했으면 안 죽었을까.' 했으면서, 지는 지를 구하지 못했다.


런던 근교 원룸이 250만원 정도였기 때문에, 사우스햄튼이라면 200만원에는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9월까지 천 만원도 되지 않는다.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도, 그걸 할 수 있었다는 걸 생각도 못한 게 화가 난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난다. 나는 나를 구할 수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내 탓하기 힘드니까 상대 탓을 한다. 우린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어떻게 걔는 그냥 돌아가라고 싫다는 답도 안 할 수가 있어'하고 탓을 했는데, 나만이 날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그럴수록 더 뼈에 새겨야 한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걸 추구하지 못하는 것, 예전에 상담 받을 때에도 계속 해결이 안 됐던 이슈였다. 그래서 하늘이 이번에는 제대로 깨닫길 바란 거 같다.


그냥 내가 원하는 걸 좀 추구해라. 주변에서 도와줄 수도 있다. 내 통장에 천 만원이 없었더라도, 한국 돌아와서 3억 5천짜리 전세에 살았다. 부동산에 전화할 때에도, 대출 없고 전액 현금이라고 할 때마다 내 돈도 아닌데 뭔가 있어보였다. 폭발해서 한국 돌아온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럴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몇 달을 소음에 시달리면, 너무 심한 몸살이 왔는데 병원도 못 가면,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갈 수 있었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폭발은 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있다. 세상에 사람이 죽은 게 아닌 이상, 거의 모든 걸 돌이킬 수 있다.


그냥 좀 원하는 걸 추구하지 못한 건, 올해도 계속 되었다. 해외 생활 다시 하는 걸 바라던 게 아니라, 그냥 해외에 자주 왔다갔다하고 싶었다. 비자 발급에도 상당한 돈이 든다. 거의 오백 만원이다. 내가 가서 먹고 살 돈만 있으면, 그 돈도 지원해준다고 했다. 초기 정착금이 필요하다고 해도, 가서 살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올해는 그걸 다 알게 되었어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9월에 영국 갔을 때도, 교수가 아무리 봐도 내가 비자가 없어서 떨어지는 거 같다고, 아무리 워홀 비자 가능 체크했어도 얘네 입장에서는 내가 올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안 되는 거라 했다. 왜냐하면, ADHD인은 영국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최소 기준만 넘으면 반드시 인터뷰해야할 법적 의무가 있다. 내 스펙이 최소 기준을 못 넘는 게 절대 아닌데, 서류에서 떨어질 이유가 없다. 장애 특별 전형을 체크한 거니까...


그러니 거기서 또 한 번 확인했다. 나는 해외 생활을 다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한국에 살면서 자주 왔다갔다 하는 게 딱이다. 영국도 일주일 이상 있으면 욕하기 시작하는 거 다 알았다. 그런데 한국에선 돈 벌 길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는 수익 창출 유튜버가 되었고, 세계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낯선 한국 사람하고 대면해서 대화하기 극혐인 건 아직도 여전하다. 이유는 딱 하나다. '나한테 호구조사, 질문으로 목 조를까봐'이다. 그런데 타로 유튜버는, 그냥 유튜브에 영상만 올려도 광고 수익, 개인 상담을 하면 더 수익이 들어온다. 개인 상담도 카톡, 전화가 아니라 영상 전송으로 했기 때문에, 대화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나에게 질문 공격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얘기를 줄줄 한다.


이 속도면 6개월 뒤에는, 내 나이 직장인 월급을 넘어선다. '내년에도 영국 가고 싶어할텐데' 하며 올해 내내 돈 걱정을 하며 나를 옭아맸거늘... 그럴 필요 없었다. '셀프 목 조르기' 하고 있었다.


그걸 당연히 몰랐으니 힘들었겠지만, '과정이 어떻게 될진 몰라도 일단 나는 이걸 원한다' 하면 어땠을까. 그게 R=VD의 핵심 아닌가. 어떻게 이뤄질진 몰라도, 엄청난 금액이 써져있는 가짜 수표를 지갑에 넣고 다니고, 엄청난 집의 사진을 비전 보드에 붙이는 게 R=VD다. 어떻게 이뤄질진 몰라도 늘 유학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싱어송라이터로서는 라디오, 방송, 페스티벌 출연, OST 부르기 등 줄줄이 읊으면서, 당장 너무 간절히 필요한 욕구는 누르고 사는데 익숙했다.


욕구가 눌려있는데 익숙한 것, '한국인이라면 응당'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부모 세대는 욕구가 눌려져있는데 너무너무 익숙해서 내가 배우지 못한 부분이고, 앞으로 스스로 해나가야할 부분이다. 당장 이뤄지지 못한다고한들, 추구하며 살 것이다. 당장의 욕구가 중요하다. 우린 모두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20대에도 사람은 죽는다. 당장 죽을 거 같으면, 당장 목이 졸리면, 당장 잠을 못 자면,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단 먼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해보고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든, 잠깐 접어놔도 된다. 추구하고자하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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