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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남아있을 거야

by 이가연

남아있을 거야
음악학부 한국인 동기도, 긴 시간을 나만 연락해서 마음 아파서 카톡 삭제한 사람이었다. 이젠 제발 내가 먼저 안 보내기 위해, 나를 통제하기 위해 카톡 연락처를 삭제하면, 죽어도 연락 안 온다. 그게 한 두사람이어야지, 매번 아픈 일이다.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빼빼로데이 하니까 생각 났다. 그렇게 타국에서 친구한테 빼빼로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게 나만 가진 기억일까. 다 사느라 바쁘더라해도, 그들 기억에 내가 없을 리 없다.

너무 속상해할 필요 없다.


원피스
원피스 입을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거면 끝난다. 원피스를 언제 입는가. 일단 날씨가 좋아야 한다. 유럽에서는 겨울에도 입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겨울에 유럽에 간다면 모를까.

도서관, 서점 가는데 원피스 입지 않는다. 물론 영국에서 친구는 나랑 밥 먹는데도 드레스 수준의 원피스를 입었다. 한국은 그럴 수가 없다. 공연 때만 입는다. 영국에서 사온 드레스도 두 벌 있는데, 그건 아예 입을 일이 없다. 한국은 어디에서도 다 과하다.

유럽 가고 싶다. 공연하고 싶다.
그런데 저 두 가지는, 친구나 애인을 감히 바라지 못해서 생기는 욕구다. 유럽이나 공연은 노력해서 돈을 벌면, 더 열심히 발로 뛰면 가능하다. 진짜 바라는 건 노력하면 할수록 힘들기만 해서 그냥 원피스 입고 싶단 말로 덮고 싶다.


첫 곡과 끝 곡
첫 곡은 거의 항상 인어공주 노래를 부른다. 최근 들어 그게 지겨우니, 미녀와 야수도 종종 부르지만 거의 대부분 인어공주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즐겨 불러왔기 때문에, 컨디션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고척돔에서든, 미국 대통령 앞에서든, 북한에서든... 다 안 떨고 부를 수 있다. 아.. 북한은 미국 싫어하니 그 노랜 안되겠구나. 모르는 일이다. "이 에미나이는 영국에서 공부해서 영국 발음으로 부른다우"하며 섭외해줄지도. 북한은 그래서 미국 영어가 아니라 영국 영어로 배운다고 들었다.

마지막 곡도 중요하다. 마지막 곡이 가장 임팩트 있게 사람들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근래엔 보통 '오 샹젤리제'를 부른다. 한국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곡이고, 분위기 좋게 마무리 된다. 또한 마지막이면 성대가 피로한 상태인데, 부르기 어렵지 않다. 기분 좋은 공연 시작과 마무리, 얼른 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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