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나에게 필요한 답을 다 주는 것 같다.
어제 병원에서 "친한 친구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이 되었어요."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오늘 일본인 언니를 만나기로 했는데 화가 단단히 났다. 지난 번에 1시간 늦었을 때는 화를 전혀 안 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엔 30분이더니, 다음엔 1시간, 이제 보아하니 1시간 반은 늦을 예정이라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비행기 시간이 있어서 1시간도 못 만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긴 와서 밥만 먹었다. 얼굴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이런 경우 그냥 안 만나기로 다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도 못 마주친다. 참 나는 다 드러난다.)
데자뷰였다. 영국인 친구랑 끝이 난 결정적인 이유가 하루 2시간 늦고, 다음 날도 1시간 늦어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교통 수단 이용을 내가 안 해봤나... 나도 한국이 아니라 영국에서는 20-30분 늦어도 이해 된다. 전날 그랬던 게 미안해서라도 다음 날은 신경 썼어야 했다. 오빠가 내 주변 다 영국인인데 아무도 안 그런다고 쐐기를 박아줘서 더 후련했다.
오늘 언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일본인이라 어렵다고. 문제는 나도 어려웠다. 처음으로 서울이 아니라 서울 근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도 광역버스를 타야했는데, 이렇게 2층 버스로 되어있는줄도 몰랐다. 광역버스 정류장이 이상한 데 있어서 한참 찾았다. 나에게도 새롭고 국내 여행 수준이었다.
'참으면 다음에 더 화난다니까. 전에 상담사도 저 사람이 다음에 또 그러면 어떨까 생각하랬잖아. 처음부터 말해야 한다니까.'라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 나도 그 사람을 너무 보고 싶어 하니까, 1시간을 늦었든 넘어가고 얼른 보고 싶어 한다. 그 생각 적용이 되려면, 사람을 덜 좋아해야한다.
사실 힘든 이유는 따로 있다. '왜 자꾸 주변 사람들이 이래서, 무려 2년 전에 걔가 늦을 거 같아서 미안하다는데 그게 3분이었던 작디작디작은 사건이 자꾸 맴돌게 만들어? 그게 지극히 정상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비정상이잖아. 올려치기 되기 싫어!!!'가 있다. 또한, 그동안 친구고 애인이고 시간 약속 때문에 손절하게 된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살이 나로 향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그러는 건, 무의식에 늦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기 힘든 사람이거나 내 존재가 소중하면 그러지 않는다. 쉽게 예를 들어, 누가 차은우를 10분 기다리게 한다면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나. 그 정도 위치가 되지 못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나 싶다. 정말 거의 모두였다.
지난 10년 간 누굴 만나도, 지각의 수준이 5-10분이 아니라, 평균 30분 같았다. 나는 무기력에 날뛰지 않는 이상 늦을 일이 없다. 몇 년 전부터 '너도 똑같이 늦어라.'라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왜 수준이 내려가야 하는가. 하지만 온라인 일본어 수업은 튜터가 시간 칼 같이 지킨다. 돈을 내니까. 그래서 계속 이렇게 온라인 수업 듣고, 무료 강연 들으러 다니는 게 맞는 거 같다. 방금 전에도 코엑스 컨퍼런스 신청할까 알아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매주 만들어가고 있다.
친구에 대한 갈망은 이렇게 하늘이 끊어주는 게 느껴지는데, 걔는 자꾸 하늘이 밀어주는 거 같다.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면, 말도 안 했는데 내 마음을 꿰뚫어보던 사람은 가면 갈수록 신처럼 느껴지지 않겠나. 왜 3분 늦을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준 사람이 28년 동안 한 명뿐인지 모르겠다. 그때 약속 가려고 시티 센터 걸으면서 카톡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직도. 2023년 11월이라 이제 진짜 정확히 2년 전이란 말이에요.
하늘이 최면 치료 이후로 상처 받은 말 생각이 안 나게 만들더니, 이젠 좋았던 점만 생각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