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상담사

by 이가연

타로 상담은 평범한 연애 상담은 아니다. 상대방 속마음도, 재회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도 타로에 나온 그대로 말한다. 그래서 내가 사실상 연애 고자에 가깝지만 괜찮다. 타로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나라도 과거 안 좋은 기억들이 있다. 상담사가 본인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내담자에게 투사하는 것을 '역전이'라고 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 있는데?' 싶을수록 조심해야 한다. 공감이 매우 잘 되어서 내담자도 '이 타로 상담사는 참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구나.' 하며 만족할 수 있지만, 과거의 나는 못했던 걸 내담자는 제발 하시라고 하게 되지 않을까. 카드에 나왔으니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강조가 될 수 있다.


내가 치를 떠는 부류가 있다. 바로, 싫은 소리 해야 될 때 안 하고 회사도 아닌데 사적인 인간관계를 '좋게 좋게'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다. 한 달 사귀고, 한 달 동안 헤어진 전남친이 있다. 내가 수십 번을 매달렸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 허상이고 도파민이었다. 상대방이 완전히 먹이 공급 차단만 해주면, 연락을 4일만 끊었어도 헤어지는데 한 달 걸리지 않았다. 평생 한두 달만 연애해 봤지만, 늘 전부 4일이면 끝이었다. 3일은 폭풍처럼 울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달랐다.


내가 수십 번을 매달렸는데도, 얘기는 다 들어주고 절대 다시 사귀지는 않겠다고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순간, 드디어 그 연락 4일 끊은 순간, 완전히 정이 떨어지다 못해 도대체 저 사람을 왜 좋아했었나 귀신 씌었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 상대방은 내가 아직도 본인을 잊지 못해 난리인 줄 알고 안부 연락이 왔다. 이틀 연속 무시하니 그 뒤엔 오지 않았지만, 절대 다시 안 만날 거라하면서 꾸준히 떡밥을 던진 행위가 어이가 없었다. 당시 상담사가 딱 '남 주긴 아깝고, 자기가 갖긴 싫고'라고 얘기해줬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최악의 연애로 남게 되었다. '애가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으니까 너무 걱정이 되어서'라는 마음으로, 원래는 4일이면 되는 걸 한 달을 죽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는, 아예 딱 잘라버린 작년 초의 걔를 감당하게 해 주려고 하늘이 전남친도 겪게 했나 싶다. 걔는 그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한 30번은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언제든 '야 내가 솔로여도, 아무리 외로워도 너는 아니다. 짝사랑 이제 그만 접어라. 남자는 한 번 여자로 안 보이면 아닌 거다.'의 말을 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 내 이름도 모르던 여자친구에게 다 들통 나서 날 없앤 거라는 이 믿음이 강해서 그렇지, 여자친구 탓 아니었다고 당사자가 깨주면 한 방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리 간단한 일인데, 내 마음을 알고 있다면 어지간히 걔도 나쁜 것 같다.




내담자의 전 애인이 나의 전남친처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다시 사귀고 싶지는 않아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사람을 안 놔주고 있는 모습이 타로에 드러난다면... 매우 이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전문 상담사가 아니다. (물론 상담을 매우 오래 받아서 이렇듯 역전이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 그래서 더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싫은 소리를 하는 게 훨씬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인데, 그걸 안 해줘서 사람 질질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어디 한두명이겠는가. 내 짝사랑도 다 그랬다. 심지어 과거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을 때, '6개월 안에는 안 받아줄 거다'라는 말도 들어봤다. 그럼 6개월 뒤에는?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 지금이야 '저 사람이 제니가 와도 거절했겠냐.'하며 이성적 판단이 되지만, 나 ADHD인은 그렇게 가면 쓰고 말해주면 못 알아 듣는다. 나는 상대방이 연락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진짜로 줄이기만 한 사람이다. 매일 수십마디를 보내던 것을, 매일 몇 마디만 보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달라고 했는데, 싫다곤 안 했으니 정말 줄이기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역전이가 일어나서 내담자 말에 공감을 매우 잘하든, 안타까운 마음에 막 조언하게 되든, 일반 상담이 아니라 '타로 상담'이어서 괜찮다. 타로에서 벗어난 얘기는 안 하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강조가 좀 세질 뿐이다. 진심 어린 해석으로 느껴지실테니, 부담은 내려놓겠다.


나는 타로가 이야기하는 그대로 전달하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이입이 많이 된다해도, 그게 내담자에게 상처 주진 않을 거다. 전문 상담사들도 상처 많이 주는 거 봤다. 충분히 내 역할을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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