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난 뭐 지금까지 바보라서 안 그랬냐.' 했던 아까 한 생각이 웃기다. 그동안 아직 한계치에 달하지 않았음에도 호텔 들어와서 의무적으로 쉬게 했다. 아침에 나가서 점심 먹고 들어와서 한~참을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는 일이 흔했다. 그게 루틴이었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감히 어제 겁도 없이 밤 10시에 호텔방에 돌아오다니. 아무리 2박 3일이라 해도 다음날이 두렵지 않더냐.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서 3시 반에 다시 제대로 시켜 먹었다. 바로 호텔 푸드코트에서. 진작 여기만 올 걸 싶었다. 가격이 적당할 뿐더러, 밥도 한식 같았다. 저녁도 여기로 와야지. 생각해보니 메뉴 선택 잘못하면 작살 나는 것도 혼자 다니는 단점이다. 영국에선 한두입 먹고 버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남들은 그래도 좀 참고 먹을텐데 그 역치가 다방면으로 낮은 거 같다. 금사빠 금사식이 ADHD 특징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과 다 같은 맥락이다. 음식도 하나 꽂히면 질리지를 않아한다.
밥, 잠, 아픔 중에 늘 잠은 잘 자는 편이다. 밥 제대로 맛있게 못 먹고, 발과 종아리가 아프니 무진장 짜증 났지. 보통 이렇게 체크하는 정도면 이렇게 두가지 문제가 있다. 그러면 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에게 처방 내릴 수 있다.
다만 혼자 이렇게 매번 체크하는 것만 몇 년째이니 누군가랑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거 같다. 처음 런던 갔을 땐 반나절을 단백질보충제 하나로 버텼을 거다. 여행 가면 밥 생각이 잘 안 난다. 정말 무수히 많은 짜증과 화를 견디면서 나를 갈궜다. 이제는 그래도 '야 짜증 내지 말고 내가 체크하라했지?'하고 윽박지르진 않는다.
스스로에게 계속 '너 배고파? 너 어디 아파? 그래. 그래서 너가 그런거네. 얼른 밥 먹자. 밥만 먹고 올라가서 쉬자.' 하고 남들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힘들다.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맥시멈인 것도 맞다만, 다양한 욕구가 맥시멈을 찍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누가 좀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나도 호텔 왔으면 호텔 수영장 가서 놀고싶다. 나는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공유를 해야 비로소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실감한다. 필수다. 그래서 카톡이라도 해야 한다. 오빠가 바빠서 카톡 부재중이라, 마카오 와서 계속 브런치에만 공유한다. 나도 글쓰기 그만하고 옆사람과 말하고 싶다. 왜 이 소박한 꿈이 이렇게나 힘들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인데. 상대방이 팔 한짝을 잃었든, 다리 한짝을 잃었든 상관 없는데 돈이 있는지 직업이 있는지 상관 하겠나. 내가 다 먹이고 무조건적 사랑을 줄 사람인데. 아. 그런 나이기에 하늘이 차라리 혼자 냅두는 거 같다. 내가 가진 마음이 귀해서 설령 하늘이 계속 고개 저으며 '그 사람은 아니야. 제발'하고 있어도 이해한다.
욕구들을 인정할 수록 더 괴로운 건, 보통 사람이었으면 아무라도 연애한다. 버티고 앉아있지 못한다. 나가서 찾는다. 내 마음이 지금보다 얕던 작년 하반기엔 그랬다.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가 날 싫어하는지, 한 달에 한 번은 생각이 나긴 하는지, 뭘 알아야지. 8월 내가 진짜 본인 마주치고 싶어서 비행기 탔던 걸 인지는 했었는지, 9월 내가 지 고향에 혼자 무슨 생각하며 가서 뻔히 찔릴 노래 BGM으로 깔아가지고 영상 올렸는지 알긴 하는지, 티끌도 알 수 없었다. 미쳐서 다른 사람 찾으며 전환시키려 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결과 10월에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더니 시간 낭비, 감정 낭비만 제대로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한 번만 더 다른 사람 만나라는 사람 있으면 대화 안 할 각오로 살았다. 하늘이 그 시간 낭비 하게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절대 아무도 안 된다.
얼마 전 오빠가 데드라인을 언제까지로 생각하냐 물었다. 없다 그런 거. 다 해결책이 있다. 그런 생각 들면 공부하고 일하면 된다... 이 마음이 그냥 흘러갈 마음이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옅어져야한다.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해졌다. 감정 소용돌이는 작년이 제일 심했는데, 깊이는 제일 얕았다. 지금이 오히려 소용돌이는 약하고, 깊이는 부모다. 당당하게 말하건데 내가 간이식을 해줄 수 있을 때 고민할 정도, 각종 아주 안 좋은 소식에 반응할 정도 전부 동급이다.
모솔은 아니지만, 연애에 좋았던 기억 에피소드 남는 게 전혀 없으면 욕구 수준은 모솔이다. 한 번도 호텔에서 누군가랑 좋은 시간 보내본 기억이 없다. 연애 기간이 한두달이어도, 그 기간의 50% 이상 보면 싸우고 화내고 무진장 힘들다 헤어졌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캠프로 단짝 친구랑 미국에 갔었는데, 그때 친구랑 2인 1실이라 해리포터 얘기하며 수다 떤 거. 그게 마지막 같다.
'왜 혼자 못해?'하며 남들을 답답해할 정도로 혼자 잘 다녀서, 혼자여서 오는 한계에 많이 지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