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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ADHD인의 사랑

by 이가연

이찬혁이 왜 '멸종위기사랑'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는지 좀 알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이 아니라, 사랑이라곤 모르는 사람들 같다. 문득 'ADHD인의 사랑'이라는 노래가 쓰고 싶어졌다. 모든 비 ADHD인이 다 그렇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ADHD인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있는 거 같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뭐 반나절 지나 봐야 아나. 눈빛만 봐도 아는 것을. 늘 내가 먼저 연애를 성사시켰다.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남자가 고백하게 유도한 적은 있어도, 95% 내 주도에 남자는 그냥 쫓아왔다. 남자가 먼저 데이트 신청할까 고민할 틈을 준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썸붕'이다. 서로 간 보다가 끝난 걸 말하는 건가. 어느 한쪽이라도 마음이 똑바로 있었으면 썸붕이라는 게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ADHD가 한 몫한다. 그 불확실함을 견딜 수 있는 역치가 0이다. 내게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고문인 줄 모른다. 친구가 30분, 1시간씩 약속에 늦는 게 너무 힘든 건, 그들의 특징이 지금 정확히 어디고 몇 시 도착인지 제 때 잘 안 알려주기 때문이다. 늦는 사람은 실시간 카톡으로 어딘지 말해야 된다.


걔는 어디 사는지, 살아는 있는지, 나를 싫어하는지 정말 단 한 톨도 알 수 없는 채로 거의 2년 째다. 내 인생에 이거보다 더 큰 사랑은 찾아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친구 관계에서 많이 확인했다. 남들에겐 별 일 아닐 수 있는 일들도, 뇌가 지져지는 것 같다. 걔에 대한 마음은 남들도 대단한 일이라고 해준다. 아니요 여러분들은 이게 ADHD인에게 얼마나 힘든지 쥐똥만큼도 알 수 없어요.


썸이란 것은,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아닐까.' 헷갈리는 상태 아닌가. 저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걸 내뱉고 있다. 너 나랑 같은 마음이냐고. (이 글도 왜 쓰겠어요. 내 이걸 걔한테 직접 말을 몬해도 말해야 사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든다면 말과 행동을 주체할 수 없는 ADHD인의 사랑. 재고 따지는 게 없다.


'별도 달도 따다 줄게'가 아니라 별도 달도 만들어서 주겠다. 이 창조적인 ADHD인의 사랑.


하이퍼포커스는 ADHD의 강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거의 모든 걸 하다가 때려치웠지만, 음악엔 중학교 때부터 지금껏 목숨 걸었다. 난 무대에 서기 위해 태어났다. 모든 사람에게 금사빠 금사식이었지만, 얘 2년 째다. 이 미친 몰입. 1년 반 동안 16곡 썼었다. 난 너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 진짜 짜증나게 한다 어후 (웃음)



오빠 지인들 말이 맞다면 걔 ADHD 아니다. 아니면 그렇게 가만있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싶다. 군사 훈련을 어디서 받았길래 그게 가능하냐. 김종국 씨가 깜짝 결혼 발표하셨을 때, "넌 독립군을 했어야 돼."라는 말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 너는 독립군, 나는 일본 군인이었나 보다. 왜냐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기에는 내 인생에 좋은 일도 많았거든. 그치만 니는 진짜 독립군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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