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 사랑

가만히 못 있는다

260109 프리 라이팅

by 이가연

또 상처를 입고야 말았다.


예술인 모임에 하나 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한국인 싫다고 해도, 그게 진심이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늘 '아닌 사람들이 있을 거야.'라는 그 희망 때문에 문제다. 가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야 그냥 제발 가만히 좀 있어라.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면 상처가 더 늘어나진 않잖아.'라고 할텐데, 이보세요. 저는 ADHD예요. 죽어라 노력해도 그건 정말 안 이루어진다.


나에게 단톡 트라우마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몇 번 단톡을 만든 적도 있었다. 음악 방이고, 타로 방이고, 오빠도 다 투입시켰다. 오빠도 음악인이자 타로하니까. 그런데 오빠가 있어도 열폭하고 상처만 남겼다. ADHD인들은 거절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 내가 한마디 했는데 계속 아무도 대답을 안하는게 수십번 반복되면 크게 터진다. 그건 일반인도 열 받을 일인데, 나에겐 백배였다.


아무튼 정말 싫었지만 늘 그렇듯, '이번엔 다를 거라 생각하고' 단톡에 들어갔다. 데이터를 믿어! 다르지 않아!


단톡에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각자 남겼다. 자기소개를 보고 관심 있는 분야 하는 사람에게 갠톡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1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안그래도 그냥 단톡에 있는 거 자체가 싫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그래서 단톡을 나가고 담당자에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1이 사라지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갠톡이 왔다. 소통 때문에 나갔다고 들었는데, 괜히 자기 때문인 거 같아서 연락했다며, 자기는 낯선 사람하고 카톡하는 게 어렵다고 그래도 인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나는 너의 갠톡이 더 당황스럽다...


그런 피드백 자체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과거 사람들 대표로 대답해준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당황스럽구나. 대면 모임을 안 나가겠다고, 강연이나 원데이 클래스만 가겠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나는 한국 사람들의 그 당황스러운 얼굴을 대면해서 마주해야 한다. 벽 침을 느낀다. 거기에 쌓인 혐오감이 상당하다. 외국은 그렇지 않다. 갠톡에서 자기는 내성적이어서 당황스럽다고 했는데, 외국에는 뭐 내성적인 사람이 없나??? 한국처럼 벽 치기 느낌을 줘서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은 외국에 전혀 없었다. (대신 질문으로 목 조르기만 할 뿐...) 내성적이고 나발이고가 아니야 이 MBTI의 민족아. 나도 I가 70%다. 난 유료 검사도 몇 번씩 했는데 찐 내향형이다. 차라리 '제가 낯선 사람은 경계가 되어서'라고 했으면 이해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얼마나 안전한 사람인지 인터넷 각종 링크 다 보내기 때문에, 한국인은 그냥 안 될 거 같다.)


인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단톡에서 개인적으로 말을 걸었는데, 그게 그냥 인사하려고 걸었을까. 그래서 나는 잘 맞으면 1대1로 만나서 수다하고 서로 예술적인 교류를 위해서 말을 건거지, 인사만 하려고 말을 왜 걸었겠냐는 식으로 욱해서 말하고 차단했다. 저 사람 딴에는 내가 나갔으니까 괜히 자기가 답장 안 해서 그런가 신경 쓰여서 갠톡 보낸 거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쌓인 분노를 달래기가 너무 어렵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오빠에게 와다다 음성 메시지를 보내고, 자판을 두드린다.


먼저 말을 걸었어도, 두세번만에 왔다갔다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너무 흔한 일이라, 그냥 나가기 누르고 기억에서 지우고 있었다. 수백번 겪은 일이다. 그런데 갠톡을 받는 바람에, 더 각인이 되었다. 하도 흔했어서 그게 상처였는줄도 모르고 있었다. 갠톡을 받으니 진짜로 깊이 찔렸다.


한숨이 나온다. 걔 생각이 나서다. 너도 내가 안부 인사만 하고 꺼지는 줄 알았는데, 더 와서 당황스럽겠구나. 그래서 저 사람처럼 인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럽겠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노래들을 들은 게 맞나. 나 너무 걔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나 쥐뿔도 모르는데. 한 번 밖에 없던 기회를 제발 좀 생각하고 보냈어야 했나. 만든지 1년도 넘은 카톡이었다. 1년 동안 연락하고 싶은 걸 그렇게 죽도록 참았는데. 기회를 너무 날렸나.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쌓인다. 나는 왜 '잘 지내길 바라'라고 붙였을까 대체. 내가 그동안 걔한테 기프티콘 보낼 때 그 글자수 맞춰서 얼마나 교정을 하고 교정을 해서 보냈는데. (차단한 계정으로 보내서 기프티콘이 왔다는 건 알아도, 메시지는 읽지도 못했을 거란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정작 진짜 읽을 수 있는 계정으로 보낼 땐, 며칠씩 검토 안 했나. 지난 1년 반을 어떻게 이렇게 날렸을 수가 있지. 학교 이메일 계정 사라진 이후로 정말 피 토하며 지냈잖아. 내 1년 반. 누군가의 죽음 정도는 와줘야 고통이 맞먹을까말까한 내 1년 반.


물론 아닐 수 있다. '이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 너무 의미 부여를 하면 안 된다. 하늘이 '야 걔도 너가 인사만 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대! 그래서 1이 안 사라지는거래!'라고 말하고 싶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괴롭지 않겠나. 별개의 사건인데.


자책 그만해야한다. 나랑 분야가 맞아보이는 두 명한테 말 건게 대체 어떻게 사람 중독인가... 분명 사람 중독 끊었다. 작년 1월까지만해도, 정말 자랑스럽지 않지만 며칠 안에 모르는 사람 150명씩 말 걸었다. 한때 스레드 중독에 걸려서,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분야가 같은 사람들 인스타로 디엠을 막 보냈다. 그건 아주 아무나 걸려라다. 그게 중독이고, 두 명은 중독 아니다. 합리적이었다. 그냥 한국인이 한국 한 거다.


오빠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잠깐 얘기해보겠다. 오빠도 똑같았다. 저 사건을 겪은 건 며칠 전에 들어간 한국 예술인 모임이고, 그때는 영국 예술인 모임이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그때도 오빠만 알게 되고 단톡은 금방 나갔다. 그때 단톡에 오픈 프로필로 되어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한 20명은 말 걸었다. 정확히 오빠만 받아줬다. 대꾸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서 자기랑 겹치는 부분도 없는데 무슨 교류를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거절하는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 영국에 사는 한국인도 똑같다는 생각하며 좌절감이 심했다. 오빠만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오빠를 알게 된 순간부터 일상 얘기를 공유했다. 오늘은 무슨 수업을 듣네, 라디오하러 가네, 하면서. 그랬기 때문에, 걔가 이 카톡방이 니 일기장이냐 했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될 수 있었다.. (걔랑 설령 카톡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오빠한테 하는 것처럼 편하게 일상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말 들은 상처를 2년 째 가슴에 못 박아 품고 있는데. 저 말 말고도 수두룩한데. 못을 빼도 자국이 남을텐데. 2년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소름 끼치게 힘든 이유는, 첫째,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말 안 걸려고 힘들게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줄곧 얘기해왔다. 나는 어디 모임에 가면 자꾸 사람들에게 말 걸고 싶어하는 충동이 심해서, 그냥 하루 즐겁게 놀고 끝내면 됐을 시간을 그르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앞으로는 강연, 원데이 클래스처럼 뭔가 배우는 것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연 들으면서 옆 사람에게 말 걸고 싶은 충동 정도는 참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또 단톡에서 말을 걸어버렸다. '또!!!!!!!!'라는 생각이 매우 힘들게 한다. 어쨌거나 한국에 살아야하고, 오빠는 한국에 없다. 한국에 2030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가만히 있는 거 못 한다. 아는 사람이 4050대 뿐인 거, 나도 싫다.


둘째, 걔는 별 대화 하지도 않고 처음에 바로 만났었다. '그건 걔도 해외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같은 동네에 사니까 그렇지!'라고 사람들은 그럴 거다. 상황이 그렇게 아다리가 맞아 떨어졌다. 걔는 원래라면 안 그럴 짓을 한 거겠지만, 나에겐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서 뭐하던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도 곧장 사람 만나는 거. 이건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만, 내 기억엔 걔가 먼저 나에게 말 걸었다. 나는 보통 그런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도, 사람들 보고 말 걸라고 오픈 프로필로 들어가기 때문에, 걔가 말 걸었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정확한 건 굉장히 순조롭고 빨랐다는 것과 난 걔 얼굴도 몰랐던 거다. 그러니 타로 노트에, 걔 만나면 좋을까, 잘생겼을까 타로 본 내역이 있다. 여자친구 있는 것도 만나서 알았다. 타로 결과가 어땠냐고? 비밀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면, 안 그래도 불 타는 지옥인데, 지금은 뭔 지옥인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이 된다. 1년 반 전부터 매우 느꼈다. 주변 상황이라도 좀 좋아야하는데, 자꾸 상황이 날 더 걔 밖에 없도록 밀어 넣는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래왔다.


사람 폐가 두 짝이면, 나는 2년 째 한 1/5만한 걸로 숨 쉬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 그게 한 1/4 정도로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들고 그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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