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 사랑

내 뿌리를 찾아서

by 이가연

늘 이게 좀 의문이었다. 할머니 한 분은 충청도, 한 분은 경북 출신이신데, 경북 출신 할머니랑은 안 친하다. 나랑 맨날 나가서 밥 먹고, 노래방 가고 하는 할머니는 충청도 출신이다. 그러면 나는 충청도 사투리에 익숙해야 하는데 이상했다.


오늘 꿈에는 그 충청도 할머니가 갑자기 점쟁이에 빙의해서 나에게 말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걔 운다고. 힘들다고. 마음 아프다고. 이미 한 번 어긋난 채로 시작된 관계잖아. 라고. 그리고 다 본다고. 그냥 깨잘깨잘 일상 다 쓰라고 했는데. 그게 뭐 카톡을 다 본단건지, 브런치를 다 본단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쓰겠다.


꿈에서 깬 뒤에 할머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할머니 혹시 경상도 쪽에 아는 사람들 있나여?"

그랬더니 할머니 말씀,

"할머니 시댁, 친척 쪽이 다 경상도야. 할머니 있던 데가 충북이랑 경상도 경계에 있지."


지리적인 건 알았는데요.. 엄마가 종종 쓰는 단어가 이상했다. 얼마 전에 엄마한테 "우리~하다", "꼬불쳐놓다"를 들었다. 엄마가 왜 그런 말을 쓰는데... 할머니가 맨날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종종 찾아봤을 때, 충청도가 아니라 경상도 말로 떴다. 상식적으로, 토종 100% 서울 사람이었으면 경상도 말 듣는다고 이렇게 잘 옮지 않는다. 내가 따라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누구한테 가장 따뜻함을 받았을까. 절대 가족은 따뜻함만 주지 않는다... 이모? 아니다. 할머니다. 할머니는 한 번도 화낸 적 없이, 싫은 소리 없이, 어릴 때부터 따뜻함만 주시던 존재 아닌가. 게다가 살면서 사투리 쓰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대학 때 있었어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기억에 없다.




여러분은 지금 혈혈단신 혼자 영국에 와있어요. 한국인 친구가 생겼어요. 나는 한국인 절대 말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얘는 편안했어요. 이제 알았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한결 같이 따뜻함을 준 할머니와 비슷한 말씨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그냥 말투 아니더라도 사람 자체가 편안하고 따뜻했어요. 얘는 지 사투리 쓰는 것도 안 좋아하고, 목소리도 콤플렉스 있다고 했지만, 난 그게 다 듣기 좋았어요. (당장 안 들으면 진짜 좀 죽을 거 같아요. 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원래 공황도 죽을 거 같은 공포를 일시적으로 느끼는 거잖아요. 공황은 아니고 극심한 불안 상태 같아요.)


어느덧 나는 얘한테 전화를 하지 않고는, 밤에 기숙사까지 들어가지 않게 됐어요. 사실 다 도착했는데 끊으라고 할까봐 건물 앞에서 서성였던 적도 있어요. 매일 밤 8시나 9시 되면 전화하는 게 거의 루틴이었어요. 누구랑 4시간 얘기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밤에 친구랑 헤어지면 그냥 바로 전화했어요. 무서운 밤길을 지켜줬어요. 한 번도 안 받은 적이 없었어요. 하루는 내가 술에 취해서, 무슨 애기가 쌔근쌔근 거리는 소리 내다가 웅... 거리는 통화 녹음도 있었어요. 끝내 복원하진 못했지만, 그 당시에 돌려 들어서 알아요. 그건 부모, 가족이었어요. 얘 전화로도 나 많이 울렸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당시 나는 파양 당한 수준이라고 했어요. 버려진 강아지를 어느 영국인 오빠가 주웠어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버려진 상처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막 흔들며 달려가니까, 잘 받아줬어요. 잘 받아주는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었어요. 걔 말고도 오빠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막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도 더 상처만 줬어요.


영국인 오빠는 맨날 자기를 버리고 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를 달래줬어요. 진심으로 걱정하며, 잘 살아나가는 나를 대단하다고 하며, 잘해줬어요. 같이 버리고 간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했어요. 오빠의 여자친구도 와서 이 강아지를 버리고 간 사람 대체 누구냐며 같이 편을 들어줬어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버림받은 줄도 모르는 강아지일까요. 버리고 간 사람은 이제 와서 염치가 없는 걸까요. 아니면 한 번 버렸으면 영원히 버리겠단 뜻일까요. 잘 지내길 바란단 건 진심이었을까요. 진심이었으면 이럴 리가 없다고 강아지는 말해요.. 버려진 강아지는 당시엔 그럴 만했다고 사람을 너무 믿어요. 지금도 속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사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믿어요. 그중에서도 자길 버린 사람을 제일 믿어요. 내가 사랑받았단 걸 알아요. '다시 돌아온다'의 개념이 아니라, 애초에 물리적으로만 떨어져 있었을 뿐, 날 버리고도 한 시도 편안하지 않았을 거라 믿어요. 이 글을 읽고 똑같이 울 거라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신경계가 받아들이는 건, 부모가 없어지고 부모가 죽는 수준의 고통이었던 게 말이 된다. 그러니 얘가 차단했을 때, 그리고 차단인 거 같다고 뇌가 느꼈을 때 살면서 유일하게 공황이 온 게 말이 된다. 심지어 이미 전 글에 비유도 들어놨다. 부모가 장례식장 사진에 걸려있는 장면 상상해 보면 내가 이해가 될 거라며.


그러면... 할머니랑 시간 많이 보내면 되겠네. 충청도랑 경상도 짬뽕된 분이 바로 곁에 있잖아. 얘 아니었으면 할머니 두 분 고향이 어디신지조차 관심도 없었다. 덕분에 할머니들에게 물어도 보고, 이 점은 매우 고맙게 느낀다.


이젠 진짜 차단인 거 같아서 숨이 안 쉬어질 거 같은데, 꿈에 할머니 점쟁이가 나왔어서 다행이다. 해뜨기 직전이 제일 어둡다면, 지금이 가장 최고점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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