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by 이가연

뇌는 안타깝게도, 좋은 것보다 부정적인 걸 더 잘 기억한다. 그래서 걔가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대부분 부정적이다.


오늘은 또 뭐에 꽂혔나. 남자한테 공감을 바라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한테 자꾸 감정 이입 되는 내가 싫다."였던 말이다.


'진심이 아니었다. 속 뜻이 뭐였을까.'하는 이런 노력은 진짜 가족만 해봤다. 가족이 아니고서야, '에잇'하면서 빨리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겠나. 상처 주는 말 하는 사람들은 내 인생에 안 중요하다고. 나랑 잘 맞는 사람 찾으면 된다고. 그런데 얘는 2년도 더 전에 했던 말을, 쪼개고 쪼개고 분석하고 씹고 뜯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걔가 하고 싶던 말은, '남자는 공감을 잘 못한다'가 절대 아니다. 공감이 너무 되니까 그런 감각을 차단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거다. (나도 네이버 뉴스 탭도 안 보고, 드라마도 주인공이 억울한 장면은 못 본다. 이입이 너무 되어서 애초에 인풋을 조절한다.)


날 차단한 게 아니라 메시지를 안 보고 있는 거라면,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된다. 내 노래 한 곡만 들어도 마음이 버거울 거다. 창원 영상 하나만 봐도 심장이 쿵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다. 그 와중에 내가 하는 말까지 마주할 자신이 없을 수 있는 게 이해가 된다.



이 남자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완전히 닻 내린 거 아닐까. 내면을 들여다보고 또 그걸 표현하는 건 참 매번 부끄럽다. 그런데 또 매번 얘 덕분에 이렇게 나를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지니 좋기도 하다.


저걸 뒷받침해주는 건 하나 더 있다. 내가 기억하는 얘가 했던 긍정적인 말은, 몇 개 없다. 그런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게 "니가 울든, 어쩌든 저쩌든, 니가 하는 게 다 맞아."다.


그리고 저것이 내가 가족으로부터 못 받은 것이다. 아마 많은 한국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지금 성인인 사람들이 그럴 거다. ADHD 얘기를 달고 살았던 이유도, 그게 내 보호 장치가 되어주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ADHD라서 이래'라고 하면 '인간적으로' 받아줘야 하니까. 그런데 나는 나라는 사람은 이렇다는 걸 항상 수용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최근 들어 ADHD 언급을 줄이고, 그냥 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젠 걔를 만나더라도, '내가 ADHD라서 이랬어'가 아니라 '나는 이랬어'라고 말하게 될 거다.




단순히 사람 하나를 계속 붙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평생 금사빠 금사식이었는데, '이게 1년 간다고?'하면서 얼마나 스스로 이해가 안 갔겠나. 소개팅도 막 해봤고, 대화 통하는 사람이 소수긴 해도 없진 않다.


만 번 생각해도 난 나를 믿는다. 이건 쌍둥이 영혼이다. 평생 두 번 다시 없을 사람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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