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강사 자리를 알아보려고 공고를 클릭했다. 해외 대학 졸업자는 무슨 졸업증명서를 번역 공증본으로 제출하라길래 바로 껐다. 공증...? 교대역 살 때 길가다가만 본 단어다. 교수 자리도 아니고 뭔 공증인가 싶었다. 난 분명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귀찮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학위를 하나 더 따고 싶어도, 음악 분야가 아니면 안 될 거 같다. 음악이 아니면 그 기나긴 학위 과정을 끝까지 마칠 힘이 없다. 영국 오빠는 연주학 박사 학위가 있는데... 아마 그런 식으로 학위를 하나 더 취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공연팀 모집 공고에서, 똑같이 해외 대학 졸업자는 번역 공증본을 제출하라고 되어있었으면 어땠을까. 필수가 아니라 선택 제출이었어도 냈을 거다.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쳐있는 일을 해야 된다. 한 때 실용음악과, 싱어송라이터에 미쳤었다. 물론 그 불타는 열정이 항상 불 타진 않는다. 하지만 뜨겁게 불 타 봤어야, 그 열정이 잔잔바리로 오래간다.
남들은 귀찮다고 생각하는 일에 내 적성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들은 나처럼 외국어 공부하는 게 매우 귀찮아서 안 할 거다. 나에겐 놀이이자 즐거움이다. 그러니 내 특기다.
공연팀 공고를 보고 지원할 때에도 분명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귀찮음보다 설렘이 더 크다. 아무리 많이 떨어져 봤어도, 늘 '올해는 다르겠지.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희망이 있다. 헛된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믿어주면 몇 개는 합격한다. 열 번 중에 아홉 번을 떨어져도, 하나가 붙으면 계속한다. 내 길이니까.
하지만 열 번 중에 일곱 번 떨어져도 그냥 안 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다. 나도 공연이 아닌 일엔 금방금방 포기 잘 한다. 내가 특별히 실패를 잘 견디고, 도전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공연을 하고 싶은 갈망이 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