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살아남기

by 이가연

'왜 작년에 했던 해외여행들은 이토록 마음에 안 들까. 힘들었던 기억만 날까.' 싶었다. 이상했다. 나는 원래 항상 평발이었다.


사무치는 그리움.


해외만 가면 슬픔이 증폭되었단 걸 깨달았다. 여행의 설렘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온다고 하는데, 난 그러지 않았다. 일단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든 다 익숙한 유럽 거리로 느껴진다. 로마든 파리든 런던이든, 별로 볼 거 없는 아무 거리나 찍어서 여기가 어디인지 맞춰보라고 한다면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기서 거기다. 작년에 있었던 해외여행을 전부 돌아보면, 난 매 순간 걔 생각을 하며 심장에 돌덩이를 이고 걸었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눈 떠서 잘 때까지 디폴트로 머리에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지, 정도가 다르다. 해외여행을 할 때엔... 이걸 이제 깨달은 것도 놀랍다만... 진짜로 매 순간 옆에서 같이 걸어 다니는 정도로 매우 무겁게 느꼈다.


마카오 생각하니 확 알았다. 걔가 옆에서 한숨 쉬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영적으로 발달한 사람과 정신과 환자는 한 끗 차이인 거 같다.) 중국말, 중국 노래가 이렇게 눌릴 줄 몰랐다고 혀를 찼다. 지뢰 버튼이었다. 2학기 때 영국 학교에서 난 수업 중 유일하게 중국인이 아니었다. 사방이 나 빼고 중국말만 하고, 그러곤 거의 매일 평일 점심을 중국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갈 때마다 마주치고 싶단 생각을 가득 안고 가지 않았나. '이 shakeit 나 때문에 안 오나.' 하면서.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누구를 향한 내 마음 때문에 영국 갔을 땐 당연했고, 유럽 다른 도시를 가든, 마카오를 가든, 스트레스로 짓눌려 있었다. 한국이 답답하다고 숨통 틔고싶어서 나가던 해외인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에선 하루 종일 집 밖에 안 나갈 때도 있고, '야 인간적으로 오늘은 나가야지'하고 억지로 30분 산책하고 올 때도 많다. 해외에선 평소보다 걔 생각을 더 인텐시브 하게 하는 동시에, 하루 2만 보씩 걷기도 했다. 한국에선 일주일 동안 2만 보도 안 걸으면서. 호텔만 들어오면 종아리며 발이며 맨날 너무 아팠다. 몸이 아프면, 정신은 더 아프다. '내가 얘랑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이라도 나를 부르면 아마 방금 도착했는데도 한국 돌아가겠지?' 따위 생각이 수천번 돌아간다 생각해보라. (같은 ADHD인이 아닌 이상, 그 뇌 과부하를 가늠하지 못할 것 같다.)


해외에 더 자주 못 나가서 안달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의 결합이 대환장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


작년 말부터, 3월에 시드니를 괜히 예약한 거 아니냐며 많이 걱정했다. 그런데, '내 발 상태'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져서 그랬던 거라면 오히려 쉽다. 발 상태는 이미 비싼 평발 깔창 신고 걸어 다니고 있고, 중간중간 쉬려고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호텔도 항상 중심지에 잡고, 점심 먹고 들어와서 쉬고 저녁 먹으러 나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정신적인 이유가 상당히 컸다면,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공연이다. 작년 9월 영국 방문을 생각해 봐도, 런던과 사우스햄튼에서 노래했던 것이 가장 좋았다. 공연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누가 죽더라도, 평생 공연을 사랑함을 멈출 수 없다.


9월 영국 갈 때에도, 참 많은 펍에 문의 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못 받았다. 국제전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메일 답신이 없으면 확인할 길이 없어서, 홈페이지에 공연 공고가 있으면 그냥 찾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가서 공연 안 한다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허탕 쳤다.


그래서 이번에 호주 갈 때엔, 메일 답신을 못 받았으면, 내가 공연하겠다고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면,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처럼 '일단 가서 보고 안 한다 그러면 오지 뭐'가 아니라, 확실히 일정에 적어두기로 했다. 역시 모든 경험엔 의미가 있다고, 시행착오를 한 셈이다. 그래야 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어떻게든 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국과 마카오에서 브이로그를 찍어 올렸는데, 도움이 어느 정도 됐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 더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한 재미가 사라진 상태다. 이젠 혼자 카메라 들고 주절주절하는 걸로도 부족하다. 혼자 여행 다니는 거 이제 진짜 너무 싫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도착하자마자 시드니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으려 한다. 혼자 다니는 것의 문제점은, 어디 가서 잘 안 앉아있게 된다. 밥 먹으면 벌떡 일어나서 계산하고 나오고, 카페에 가서 여유를 부리고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발이 안 아플 수가 없다. 물론 중간중간 앉아서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쓰긴 했다. 이번엔 책까지 추가해 보겠다.


언제나 그렇듯 답은 사랑에 있다. 영어권 나라에 대한 사랑도 있다. 굳이 호주인 이유가, 영국이 아닌데 영국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 영어권 나라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하나의 사랑이 너무 아프게 하면, 다른 사랑에 기대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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