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작년부터 내 머리에 벌레처럼 돌아다니는 생각이 있다. 공대 석사랑 음대 석사가 같아?
분명 졸업식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참으로 늦게 철이 든 게 아닌가 싶다. 음악 하려면 집에 돈이 좀 있어야 된단 말이 뭔 소린가 싶었다. 보컬 전공하는데, 어차피 몸이 악기기 때문에 악기 값이 억대로 드는 것도 아니고, 한 달 학원비 40-50만 원이면 입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 사교육비 300-400만 원인 동네에서 자랐다.
아... 졸업하고 할 게 없어서였다. 인터넷에서 봤다. 하프 전공을 하는 사람은, 악기 값이 문제가 아니라, 하프 전공을 하고도 나중에 할 거 없는 거 알면서도 그 전공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 돈이 많은 거라고.
이걸 반 평생 음악해왔는데 만 27-28살에 처음 깨달았단 건, 집에 감사해야 할 일인 건 맞다. (어린 시절 아동 학대 환경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퉁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우울한 얘기는 안 하기로 해요.)
얼마 전 SNS에서 서울대 나오고, 박사까지 나와도, 한 달에 30만 원 번 적 있다던 게시글을 봤다. 나도 지금 한 달에 적으면 10만 원, 페이 공연이 잡히는 여름-가을엔 조금 더 많은 수준이다. 한 달에 백만 원 벌어본 적이 평생 동안 한 손에 꼽힌다. 엄마 집에 기생하고 있다.
어우야... 너도 멋지게 살고 있는데 뭘 그렇게 깎아내려.
벼룩처럼 튈 때마다 잡아다가 던지지만, 계속 튄다. 오늘도 학교 커리어팀과 상담을 앞두고 확 우울해졌다.
왜 우울해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행여 '이가연 뭐 하나 봤더니, 그냥 백수인데?' 라거나 '얘 그냥 뭐 점쟁이 된 거 같은데?' 하면서 무당이 신당 차린 이미지라도 생각하겠나.
나는 그렇게 모자란 사람을 두 달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두 달 안에 알아서 내가 싫어한다. '유일한' 사람이라면, 핵심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이제껏 만나본 사람 중, 가족, 정신과 선생님, 그리고 얘만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내 생각에 파묻혀있지 말고, 남들이 했던 말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3-4년 전 상담사조차도, "가연님이 돈 벌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정녕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게 가장 하고 싶은 거라면, 거기에만 매진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했다. 또 예전에 한 친구는 내가 하도 심각해하니, "야. 영어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아."라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유일한 친구인 영국 오빠는, 나는 세계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거라고, 남극 가도 펭귄들한테 타로 봐줄 거라고 했다.
나한테 안 중요한 건 보통 상대방에게도 안 중요하고, 나한테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도 중요하지 않을까? 어련히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 안 할까.
'역지사지'는 만병통치약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도 나랑 똑같이 부모님 집에서 먹고 자고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나랑 똑같이 '오늘은 서점을 갈까. 전시회를 보러 갈까' 하고 한 2시간 나갔다 들어오고, 돈을 100원이라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곤 유튜브 영상 찍어 올리는 일이라고 치자. 나는 뭐 상대방이 한심하게 보이나? 6개 국어를 계속 돌려가며 공부하고, 유튜브 채널 두 개를 꾸준히 하고, 전 세계에 있는 페스티벌을 60개 이상 지원하고 그거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졸업한 지 꽤나 지난 학교 커리어팀이랑 상담 앞둔 내가, 뭐 얼마나 별로로 보인다고. 야! 공대 애들 그런 거 있는 줄도 모를 거다. 다음 달에도 졸업한 학교에서 하는 온라인 세미나 신청했다.
걔가 뭐 지금 너가 돈 못 번다고 연락 안 하냐. 아무리 이유를 몰라도 그렇지...
나도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커리어팀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따가 또 쓸 예정이지만, 하루하루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살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도전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일이다. 어련히 똑같다.
문득 이 글을 쓰게 해 준 하늘에 고맙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등감은 반드시 지금 혼자 있을 때 극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