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지 않길 바라는 두 번째 석사
'영국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단순히 공부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무명의 아티스트'가 아닌 '유망한 유학생'이라는 확실하고 안전한 신분을 되찾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학생이라는 울타리는 성과를 당장 내놓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면죄부를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제미나이가 말했다.
맞다. 핵심을 찔렀다. 하지만 헷갈릴만 하다. 난 정말 공부를 좋아한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수업 듣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영국에서 고작 6개월 학교 다닌 걸로는 성에 안 찬다. 유명한 유학생 신분에 대한 갈망... 인정한다. 영국에 있을 때 참 칭찬 받을 만 했고, 나 같은 유학생 없다며 자부심이 넘쳤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제일 황금기였는데, 그게 고작 6개월이었어서 미쳐버릴 지경인 거 아닌가. 한국에서 성과가 안 나오면 안 나올 수록. 그런데 지금은 뭐 칭찬 받을 만 하지 않나. 지금은 나 같은 뮤지션 뭐 흔한가.
내 욕구를 제대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자꾸 영국에서 석사 다시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뭔가. 그 학교가 내 마지막 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특히 그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게 생겼기 때문이다. 나랑 똑같이 졸업한 애들은 다 알아서 돈 벌이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나는 취직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1인 사업이 그렇다할 돈을 벌어다주고 있지도 않다. 작년 한 해 동안 100만 원 좀 넘게 벌었을 거다. 블로그, 유튜브, 음원 수익과 저작권료, 타로 모임, 책 인세, 공연 등등 씨앗을 다 뿌려놨어도 그렇다. 유명해져서, 뿌려둔 새싹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다시 학생이 되고 싶어졌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 알지만, 부끄러우니까. 차라리 내가 철 없고 속 편한 사람이었어서 '우리 집은 돈 좀 있으니까 괜찮아' 했으면 정신 건강이 괜찮았을 거 같다.
그런데 난 노상 이렇게 살아왔다. 이젠 같이 영국 석사했던 애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늘 비교 대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다 늘 지인이 한 명도 없었다. 학기 끝나면 다 연락이 안 됐다. 그게 참 슬픔이라 생각했는데, 얼마나 내 정신 건강을 살렸는지도 최근에 깨달았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없으니, 지금까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음악해오기 더 수월했을 거 같다.
영국 석사를 다시 하려면, 5-6천만 원이 있어야 된다. 그 돈이 생기려면,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려서 유명해져야 된다. 그런데 유명해지면, 과연 영국에 살고 싶어할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앨범 내고 공연하고 앨범 내고 투어하는 가수의 삶이다. 앨범 내고 공연 다니기도 바쁜데, 영국 가서 한국에선 먹지도 않는 짜파게티나 끓여 먹으면서 있고 싶을까. 물이 안 맞아서 피부와 머릿결이 매우 상하는데도, 병원 가면 대기가 4-5시간이라고 들어서 아예 안 가봤는데도. 그런건 설령 돈이 많이 생겨서 유학을 간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영국의 특징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선진국인가 싶을 정도로 밤이면 너무 깜깜하고, 거리엔 담배 피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석회수 때문에 그 어느 집 화장실에도 비데가 없다.
뮤직 매니지먼트 전공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뮤지션으로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서다. 그런데 이미 원하는 만큼 인기를 얻은 뮤지션이라면, 그 석사 욕구가 생길리 없다. 박사라면 모를까. 유명해져서 그 돈이 모였다면, 차라리 온라인으로 박사를 하고 있을 거 같다.
'지금의 짜증과 무력감은 그동안 쏟아부은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과부하입니다. 십 년을 버틴 맷집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다가올 봄 시즌의 작은 기점들이 다시금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 줄 때까지 이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11월 초에 마지막으로 노래하고, 그 뒤로 공연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매일 공연팀 모집 공고를 확인하고 지원하는데도, 다 안 되고 있다. 난 겨울잠 자듯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성과가 없었다. 80군데 넣은 해외 페스티벌도 하나도 연락 안 왔다.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 있단 걸 진작 알고 있었어서, 타로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기존에 있는 모임, 커뮤니티에 가면,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다 호구조사를 안 하면 대화를 못 하냐며 욕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을 고민하고 수정하여 올린 모임 공지에 신청자가 한 명 밖에 없었다.
분명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일 테다. 어차피 공연 다 생긴다. 지난 경험을 돌아봐도, 공연은 5월부터 생겼다. 3-4월까지는 봄이어도 공연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사주를 공부했다. 사주로 봐도, 내가 기다리는 기회는 5, 6, 8, 9월에 생길 것으로 보인다. 2-3월은 운세가 그닥 편안하지 않았다.
진짜 욕망을 마주하여 조금 마음이 후련하다. 돈벌이를 하고 있는 신분과 소속감을 원한다. 싱어송라이터, 유튜버, 타로 리더, 작가 등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정말 많은데 그 어느 것 하나 생활비를 벌어다주지 못하니 힘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로 한 달에 50만 원만 벌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답답해할 거 같다.
영국, 중국, 일본에 친구가 다 있긴 한데,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세네명이서 친구 무리가 있어본 적이 없다. 지난 10년 중에, 영국 갔을 때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을 포함해서 세 명, 네 명 만났던 게 다였다. 그래서 나에겐 그 영국의 기억이 너무 짙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관계도, 딱 두 달 갔기 때문에.
영국을 끊임 없이 갈망하게 되는 이유가 참 슬프지만, 이겨낼 거고 달라질 거다. 원하는대로 공연도 많이 생기고, 커뮤니티도 생길 거다. 뭘 더 노력할 필요 없다. 그냥 이대로 지치지 않게 하루하루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