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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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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11. 2024

1. 설렘인지

“너가 김현우를 좋아한다고.”

“...”


“그럴 수 있지.”

“아니 그럴 수 없어..”

“사람 마음이 어떻게 마음대로 되냐. 내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김현우에 대한 마음이 생겨버렸단 걸 알게 된 건 지난주였다. 아니,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지지난주 학기가 시작될 무렵, 같이 온 친구들과 함께 학교 동아리 연합회 행사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줄 서고 있던 와중, “우리 타로 동아리에서...”라고 같이 온 친구에게 말하는 김현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졸업이 코앞인데 2번의 휴학 탓에 동아리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외로웠던 찰나였는 지라, 방금 저 사람도 우리 동아리인가 하는 생각에 눈이 번뜩였다. 


원체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고 친구 되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지나가는 목소리가 남자였는 지라 조금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동안 뒤로 줄은 길어졌고, 더 늦기 전에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타로 동아리이신가요?”

“오 네네.”

“와 반가워요. 저도예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곤 행사장에 입장하도록 나는 같이 온 친구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가히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게 만드는 외모를 지녔었다. 이것이 동아리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서인지, 잘생긴 사람과 대화해서 오는 설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랑 씨는 저희 동아리 언제부터 계셨어요?”

“저 예전부터 있었는데 휴학하기도 하고.. 아마 그래서 못 보셨을 거예요.”

“저 군대 있을 때 있으셨나 보네요. 얼마 전에 전역했거든요.”


휴학하기 전, 1년 전만 해도 동아리 모임에 몇 번 나가곤 했었는데, 어쩐지 처음 보는 얼굴이다 싶었다.


“아 그러시구나.. 저도 이제 막 학기인데 아쉬워서 졸업할 때까지 자주 모임 나가보려고요.”

“너무 좋죠. 참, 제가 회장이에요.”


대박. 헬스 동아리도 아니고 타로 동아리인데 회장을 얼굴 보고 뽑았구나. 행사장 줄은 20분을 서 있어도 입장이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그 덕에 얘기할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줄 선 위치에선 행사장 입구도 보이지 않아 지금 입장 시작해도 다 들어가는데 한참은 걸릴 것만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김현우가 담배를 꺼내 들고 피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부터 누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첫째로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잠깐 줄 서고 있는 이 틈을 타서도 담배를 꺼내 물다니. 흡연 구역도 아니고 이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 평소 같았으면 바로 그럼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하고 같이 온 친구에게 돌아가서 합류했을 거다. 내가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도 모르는데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내겐 상식 밖의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앞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도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지조차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김현우는 놔두고 김현우와 같이 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이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혼자서 담배 피우고 있는 김현우에게 가 있었다. 마치 언제든지 담배를 다 피고 대화에 바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곁눈질로 계속 보는 것이 들키지는 않을까 선글라스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섹시해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희 단톡에도 그럼 계시나요?”

“앗.. 제가 휴학해서 없었어요. 카톡으로 링크 보내주시면 바로 들어갈게요.”


단톡의 존재는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휴학 탓이 아니라 그저 단톡이 싫어서 들어가 있지 않은 것뿐이었다. 웬만한 공지는 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기에, 굳이 단톡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자잘한 대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김현우와 자연스럽게 카톡을 공유하고 같은 단톡방에도 속하게 되었다.


동아리 사람 아무도 모르는데 줄 서다가 회장님을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날 내가 말 걸지 않았더라면, 4학년 2학기 시작이 달라졌을 거다. 학기가 시작된 지 단 며칠 만에 ‘어떻게 하면 복학해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온통 김현우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러나 정기 모임은 한 달 뒤에나 열릴 예정으로 보였고 좀처럼 김현우를 다시 만날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니 김현우 아냐.”

“왜.”

“아니. 그냥 너네 동아리 회장이잖아.”

“근데. 니랑 뭔 상관인데.”

“왜 시비냐. 아무튼 걔 아냐고.”


신찬성이 대뜸 전화가 와서는 김현우랑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알긴 아는데. 왜.”

“니가 어떻게 알아. 니 복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에 학교에서 봤어.”

“그럼 니 연락처도 있나?”

“니가 왜 우리 동아리 회장 연락처가 필요한데.”

“그냥 니네 모임 한 번 나가볼까 해서.”

“니 요즘 뭐 할 일 없고 심심하냐. 여자친구가 안 놀아줘?”

“그건 니가 알 거 없고. 모임 언제 하는데.”

“몰라. 우리 다음 달 중순은 돼야 할 거 같던데. 니가 그게 왜 궁금한데.”

“아니 나도 니네 동아리 한 번 가볼까 해서. 재밌는 거 많이 하던데.”


우리 동아리가 재밌어 보이긴 하지.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편의상 ‘타로 동아리’라고 하지만 손금, 관상, 찻잎점, 점성술 등 온갖 점술에 관련된 건 다 다룬다. 멤버마다 각자 전문으로 다루는 분야가 있었는데, 그중 나는 타로를 제일 잘 봤다.


“타로 보게? 그럼 나한테 보면 되지. 현우 오빠는 왜.”

“니는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여자친구 있어서 못 만난다고. 김현우가 니네 회장이니까 잘 아나 싶었지.”

“야 전화로도 봐줄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하냐. 내가 뽑으면 된다니깐.”

“니는 못 믿는다고. 어후씨. 됐다.”


잠깐. 당분간 우리 모임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 아닌가. 타로는 카페에 가져가서도 볼 수 있다.


“야 그럼 내가 물어볼게. 현우오빠랑 나랑 니랑 셋이서 만나자고.

“니한테 오빠임?”

“어. 니랑 동갑”

“니는 왜 나한테 오빠라 안 하냐.”

“니?”

“됐다. 그래. 니가 함 물어봐라.”


전화가 끝나자 옳다구나 싶었다. 김현우와 빨리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밥을 먹자거나 카페를 가자고 말하기엔 너무 이상했고, 정기 모임 날짜는 아직 잡히지도 않았으며 김현우는 음대 건물에서 한참 걸리는 체대 건물에 주로 있을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렇게 김현우와의 첫 만남이 있고 일주일 만에 신찬성과 셋이서 만나게 되었다. 당장 김현우와 둘이 약속을 잡는 건 말이 안 되는지라, 새삼 신찬성이 있어서 고마웠다. 그것도 동아리 관련된 일이 아닌가. 당장 모임도 없고 우리 동아리에 관심이 있다는데 회장으로서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김현우와 나는 4학년이라 곧 졸업하지만, 신찬성은 3학년이다.


“야. 현우오빠 알바 끝나고 바로 오느라 늦을 거 같대. 우리끼리 먼저 얘기하고 있으래.”

“니랑 뭔 얘기를 하냐.” 


신찬성과는 맥주 한 잔 시켜놓고 깨작깨작 마시며 또 깨작깨작 얘기를 했다. 마음 같아선 김현우가 오기 전에 맥주 한 잔을 이미 마시고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진솔하고도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술을 안 마신 지 오래되어 주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야 갖고 온 거나 꺼내봐 봐. 어떻게 생겼나 보게.”

“어, 저기 왔다. 현우오빠.”


주인공이 등장하자 테이블에 천을 깔고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그리곤 신찬성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김현우만 보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오빠, 이 오빠는 제가 뽑는 거 못 믿겠대요.”

“한 번 봐볼까. 오 이게 그 이번에 새로 산 거야?”

“맞아요. 그림 너무 예쁘죠?”

“너가 먼저 한 번 뽑아봐. 나도 이걸로는 안 봐봐서 궁금하다. 특이하네. 해석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좋아요. 아직 이건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부족하지만. 공부하는 셈 봐드릴게요.”

“그래. 뭘 물어볼까나...”

“뭐 진로운.. 연애운.. 저 연애운 잘 봐요.”

“그래? 그럼 나 여자친구랑 앞으로 어떻게 될지 봐줘.”


여자친구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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