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을 수업은 졸업작품 워크숍이었다. 12월에 있을 졸업 공연에서 내가 쓴 곡으로 무대를 올려야 한다.
“이 곡은 제가 거의 실용음악과 입학하자마자 발매했던 싱글이에요. 썼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요.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기도 하고, 이런 슬프면서도 설레는 곡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가져오게 되었어요.”
나의 첫 싱글 ‘너’. 중학교 때 짝사랑 때문에 썼던 곡이다. 처음이었고, 그래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쩔 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솔직한 감정을 곡으로 쏟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제가 이번에 공연 올릴 곡도 지금 이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발라드곡이 될 거구요. 피아노하고 스트링 선율이 메인으로 들어갈 예정이에요.”
곡을 쓰고 부를 때만큼은 이뤄질 가능성도 없는 짝사랑에 목매며 혼자 비참해하는 내가 아니다. 내 감정을 재료 삼아 예술을 해내는 멋진 내가 되는 기분이다.
“나 곡 썼다.”
“뭔 곡. 니 또 뭐 현우 가지고 곡 썼냐.”
역시 척하면 척이다. 전화 너머로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궁금해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 번 들려줘 봐라.”
“안 그래도 진작 유튜브에 올렸다.”
3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신찬성은 통화 중에 인터넷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수건도 갠다.
“괜찮은데.”
“괜찮다고? 진짜? 이야 니가 내 노래 듣고 괜찮다는 말을 다 하네.”
“어. 근데 노래를 너무 못 불렀다. 노래 연습 좀 더 해라.”
그럼 그렇지.
“근데 니 이렇게 올려도 되나.”
“왜. 내 유튜브인데. 아유 내 유튜브 구독자수 별로 없어서 아무도 내 곡 듣고 표절 안 해.”
“아니. 현우는 니 유튜브 모르나.”
“인스타는 봐도 유튜브는 안 볼 걸? 닌 인스타도 안 하잖아.”
“그래도 내가 니 거 유튜브는 구독했다.”
어쩌면 나도 신찬성의 질문 의도를 알면서도 회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행여나 김현우가 이 곡을 듣고 본인에 대한 노래라고 의심하면 어쩌나. 아니, 불쾌해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으니까.
“니 노래 좋은데. 근데 왜 이렇게 짧냐 이거.”
“이거 아직 1절만 올린 거지. 지금 이걸로 졸업 공연 올릴까 고민 중.”
“괜찮네. 잘 한 번 불러봐라.”
“진짜?”
“어. 노래 좋다. 근데 그 중간에 피아노 치는 것 좀 바꾸면 안 되냐. 계속 똑같이 치니까 지겹다.”
“피아노 반주야 당연히 편곡이 되면 달라지지. 그건 정말 스케치야 스케치.”
“그리고 나는 니 가성이 좋은데. 앞부분에 가성 넣은 것처럼 뒤에도 좀 그렇게 불러봐라. 뒤에 너무 세게 불렀다. 앞부분처럼 좀 너무 세게 하지 말고."
"오... 어떻게 알았지. 니 진짜 공대생 맞냐. “
뒷부분도 가성을 조금 더 섞을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음악 전공도 아닌데 노래에 대한 술술 피드백을 주는 것이 참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아직 누구와도 이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이 노래를 무슨 마음으로 썼는지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과 음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곡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혼자만의 이야기에서, 나와 너가 아는 이야기가 됐으니,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래에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니는 참 니 전공이랑 잘 맞다."
"그치. 나 중학교 때부터 꿈이 싱어송라이터였으니까. 언젠가 음원 차트 1위에 오를 거야. 근데 니는 그럼 꿈이 뭔데. 목표 말고 꿈."
"내도 뭐 나중에 사무소 차리고 싶다."
사무소 차리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득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건물을 짓기 위해 신찬성한테 의뢰하는 상상을 해봤다. 무슨 영화 건축학개론도 아니고.
“야. 근데 현우 인스타 들어왔냐. 카톡 답이 없네.”
동지다. 역시 나만 답답한 게 아니었구나. 김현우가 인스타는 접속 중이면서 내 카톡은 답을 안 한다며 종종 신찬성에게 토로하곤 했다. 신찬성은 인스타를 하지 않으니 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 스토리도 다 읽었네.”
“근데 왜 답이 없나.”
“모르지. 그래도 내 것만 일부러 피하던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야. 내는 그래도 아침에 답 왔었다.”
그래 니 잘났다. 문득 그 둘은 무슨 카톡을 나눌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여자친구 일어났나 보네. 연락 왔다."
"어? 야. 그래그래. 끊는다."
신찬성이 없었더라면 이 짝사랑을 어떻게 버텼을까.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든든한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매번 고마웠다. 여자친구가 있으니, 같이 술 마시고 한탄하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전화를 할 때마다 기분이 풀렸다.
"뭐야. 여자친구 일어났다며."
"뭐. 됐다."
신찬성과 통화할 때면 3시간도 30분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밥 먹는 것도 잊어 전화를 끊고 얼른 프라이팬에서 고기를 굽고 한 점 딱 집으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인 나랑 통화보다 여자친구와 연락이 우선 되어야지. 여자친구가 알면 싫어하지 않으려나. 그렇지만 내심 김현우의 인스타 얘기를 마저 하고 싶었다.
김현우와 알게 된 이후로, 나도 모르게 인스타 스토리를 평소보다 자주 올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 올리면 친한 친구 김연지 다음으로 먼저 스토리를 확인하는 게 김현우였다. 김연지 다음 김현우. 그 순서도 늘 똑같았다. 그러니 하나 올릴 때마다 오늘도 김현우가 봤다는 표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김현우가 내 인스타 스토리를 가장 자주 읽는 세네 명 중 한 명이라니. 남사친이라고는 신찬성 밖에 없어, 김현우가 그토록 잘생겨 보였던 건 아닌가.
"어우. 나 방금 고기 구웠는데 완전 질겨."
먹고 있는 와중 프라이팬 사진을 찍어서 신찬성 카톡으로 보냈다.
"야. 딱 봐도 엄청 질겨 보인다. 니가 잘못 샀네. 저런 걸 사면 어떡하냐."
"그냥 먹어야지 어떡해."
말없이 고기를 한 점, 두 점 입에 넣고 열심히 씹는데 카톡이 왔다.
"뭐야. 뭐 보냈어."
확인해 보니 맛있는 고기 고르는 법 사진이 하나 와있었다. 이걸 본다고 내가 아나. 대충 확인하고 계속 먹으려는데 이번에는 유튜브 링크도 왔다. 엄마인 줄.
“근데 니 승준인가 만나서 밥 먹고 술 먹는다 하지 않았냐. 어떻게 됐냐.”
“아 걔는 진짜 그냥 동생이야 동생. 아직 친하지도 않아.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
“뭐 그렇게 만들어 거지.”
“아니 만들고 자시고 할 게 없어. 그냥 친구라니까.”
“원래 다 친구에서 시작하는 거지. 데이트 잘해라.”
“아 데이트 아니라니깐!”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애랑 밥 먹는다는데 데이트 잘하란다. 그냥 심심한데 만나서 노는 거지 뭐. 이따 헤어지고 들어가면서 ‘거봐. 진짜 데이트 아니라고 했잖아.’라고 전화할 게 뻔했다.
‘아직도 8시 반이네.’
‘이거 다 마실 바엔 그냥 나가서 신찬성이랑 통화하고 싶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새롭게 알아가는 친구와 만남이라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대했건만, 어색한 정적이 끊길 줄 몰랐다. 얼른 집에 들어가면서 전화 걸고 싶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내가 데이트 아니라고 했지!”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았다. 왜 울컥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왜. 어땠는데.”
“그냥 그랬어.”
“뭐가 그냥 그랬는데.”
“아니.. 뭐 그냥 얘기하긴 했는데. 술도 사주고 고맙긴 했는데. 애도 착하고 귀엽긴 한데.”
“그럼 뭐 됐네. 뭐가 문젠데.”
내 마음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잠시라도 김현우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싶어서 나가서 노는 약속을 잡은 건 사실이었다. 김현우는 인싸라서 맨날 술 마시고 놀텐데, 나는 홀로 집에 있으면서 계속 인스타와 카톡을 번갈아 쳐다보며 씁쓸한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얘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나는 계속 현우 생각이 나나. 나는 왜 계속 현우가 좋은가. 니는 그러고 있는 거야 지금. 걔가 니한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니는 더 현우 생각이 날걸?”
“아니... 나는 얘를 남자로 생각하고 만난 게 아니라니까.”
“니가 계속 현우 생각나고 현우 좋아하는 걸 부정하고 있잖아. 그냥 현우를 좋아하는 거야 니는.”
그놈의 김현우 김현우.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이름을 들을 때마다 움찔했다. 다 맞는 말처럼 느껴졌다. 난 내가 왜 울컥하는지도 몰랐는데, 신찬성은 내가 말하지도 않은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건데. 어떻게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할 수가 있을까.
“니가 하는 게 다 맞아. 니가 술 마시면서 울든, 노래하든, 아는 동생을 만나든. 다 맞게 하고 있는 거야. 니는 답을 다 이미 알고 있어.”
“그래. 고맙다.”
“니 마음을 그냥 인정해. 뭐 어쩔 건데 니가. 니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전화를 걸자마자 울컥했고, 지금은 그 뜨듯한 눈물이 심장에 닿은 듯했다.
“하. 사랑한다.”
“..."
2초간 정적이 흘렀다.
"넌 하필 그 단어를 쓰냐.”
고맙다는 말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말이 하고 싶었다. 질긴 고기를 씹는 것 마냥 답답했던 마음이 신찬성 덕분에 두부처럼 말랑말랑해졌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내 곁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