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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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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11. 2024

2. 잠깐만

그럴 리가 없다. 카톡 프로필과 인스타 계정을 탈탈 털어도 여자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 하나 없었다. 


“여자친구가 지금 영국 유학 중이라...”

아. 그랬구나. 롱디라 못 만나서 사진이 없던 거구나. 최대한 당황한 기색 없이 카드를 섞었다. 김현우가 뽑은 세 장 중 첫 장을 뒤집자마자 끊어진 다리 카드가 나왔다.


“엇. 왜 첫 카드부터 이런 게 떴지. 첫 모습부터 끊어진 모습이네요. 과거에 이런 상황이.. ”

“맞아. 한 번 헤어졌었어.”


타로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상치 않은 그림이다.


“바빠서 서로 소홀해지는 상황이 있을 순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크게 나쁘지 않아요. 각자 자기 할 일에 몰입하고 있는 그림이랄까요.”


의도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타로 리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언제 다시 김현우를 만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하며 살았다 해도, 내 마음과 상관없이 이 카드 리딩을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과거 상황으로 봤을 때는 이미 끊어진 상태로 시작해서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후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엇. 나 잠깐만 여자친구랑 전화 좀 하고 올게.”


김현우가 일어나서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 사람 정말 여자친구가 있었구나. 그런 사람을 두고 일주일 동안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설렜다니. 맥주를 한 모금 마시자 마치 목구멍이 따가운 듯했다. 


“나 이거 한 잔 더 시키고 온다.”


신찬성도 테이블을 뜨자 자리에 혼자 남겨졌다. 신찬성 없을 때 김현우가 빨리 자리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니는 아직도 그거 마셨냐.”

안타깝게도 신찬성이 먼저 자리에 돌아왔다. 신찬성은 두 잔 째였는데 난 아직 한 시간 동안 절반도 비우지 않은 상태였다. 술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는 지라, 괜히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신찬성과 김현우만 테이블에서 이야기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니는 여자친구한테 전화 안 하냐.”


김현우가 꽤 오래 자리를 비우자, 괜히 심술이 나서 신찬성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또 뭐.”

신찬성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김현우가 돌아왔다.


“너는 여자친구한테 연락했어?”


자리에 앉으며 김현우가 신찬성에게 물어본다. 김현우가 자리에 돌아왔다고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져선 안 된다. 눈앞에 평소 나를 꿰뚫어 보듯 잘 아는 신찬성이 있었으니까.


“여자친구 지금 잔다.”

“지금 저녁 7신데?”

김현우가 다리를 꼬고 담배를 꺼내며 신찬성에게 물었다.


“교대 근무라서 지금 자야 된다.”

신찬성이 휴대폰 화면을 잠깐 보더니 무심하게 창밖을 쳐다봤다.


신찬성과 김현우는 둘 다 나보다 한 살 오빠다. 그런데 나는 김현우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신찬성은 편하게 부르고 있었으니, 김현우가 먼저 그냥 다 같이 말 편하게 하자며 서로 다 반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신찬성 덕분에 김현우 앞에서도 더 편해지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뒤로 김현우를 학교에서 마주칠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늘 인스타그램 온라인 상태였고, 나 역시도 그랬다. 지금껏 그가 올린 사진과 영상 수십 개를 아무리 다시 봐도 여자친구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왜 처음 만났을 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나 후회했다. 그런데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대뜸 “여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난 사람과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고, 누가 봐도 인싸인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진, 잘생긴 사람이,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한 내 잘못이었다. 


애당초 나는 남녀 사이에 친구를 믿지 않는다. 그 확고한 믿음에 시시때때로 태클을 거는 게 신찬성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이치라 말해줘도, 신찬성은 니랑 나만 봐도 보이지 않냐며 내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거듭 말하니 그걸로 언쟁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신찬성이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찬성이 어떠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든, ‘어머’ 하며 여자로서 가슴 설렐 일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김현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 김현우 역시도 같은 학교 캠퍼스에 있을 거란 생각은 늘 나를 긴장하게 했다. 나 같은 작곡과 학생들이 어떻던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도 대충 묶고 학교에 다닌다. 집, 도서관, 학교 대신에 집, 연습실, 학교다. 체대 학생은 대체 어디에 주로 나타나지. 농구장? 테니스 코트? 수영장? 감도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캠퍼스에 매일 같이 나처럼 올 거란 건 알았다. 그러니 하필 머리도 안 빗고 바지도 대충 추리닝 입고 나온 날에 김현우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 어디에 주로 나타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평소 입던 편한 바지 대신 청바지를 입고, 세수하고 바로 선크림만 바르고 학교에 다니던 내가 비비크림에 입술도 바르고 학교에 갔다. 캠퍼스 안에선 나도 모르게 괜히 농구장을 지나쳐 걸으며 선톡을 보냈다.


오빠 농구도 해? 우리 음대 건물 근처에 있던데 ㅎㅎ


체육학과 학생이 있을 만한 공간은 너무도 많았다. 괜히 김현우는 키가 크니까 농구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나가다 농구하는 남자들이 보이면 그 안에 김현우는 없는지 재빠르게 살폈다.


아니. 바빠서 못해. 


농구장에는 없겠구나. 그럼 어디에 주로 있으려나. 학교에 오긴 하는 걸까.


난 요즘 수영이나 다니려구 ㅋㅋ 어릴 때 오래 배웠었는데 학교 수영장 있어서 좋잖아.


이 말에는 언제 답장이 오려나. 오늘 저녁? 밤? 오늘 안에는 답장을 주려나.


수영 좋지.


겨우 이 말 들으려고 28시간을 기다렸구나.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러면 또 내가 보낸 메시지에 좋아요만 누르고 대화가 강제 종료될 테니까.     


학교 가기 전이면 타로를 펼쳤다. 오늘은 마주칠 수 있을까. 이번주엔 언제 가장 마주칠 확률이 높을까. 이렇게 사심 가득하게 질문을 던져서야 절대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상대에게 던질 수 없으니 타로 카드라도 던질 수밖에. 누가 봐도 불길한 것 같은 ‘죽음’ 카드나, 남자의 등에 검 10개가 꽂혀서 죽어있는 ‘소드 10번’ 카드라도 뜨면 카드를 ‘에잇’하며 던졌다.


오빠 사진 여기 어디야?


오늘의 질문. 과연 김현우가 저녁 6시까지 답장을 할까요. 그도 그럴 것이, 김현우의 답장 속도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신찬성의 칼답에 익숙해져 있더니 피가 마르는 듯했다.


여기 학교 근처!


학교 근처인 건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궁금했던 건데. 이제 답장이 6시간 만에 오는 건 빠른 편에 속했다.



“넌 근데 현우랑 계속 연락하나.”

뜬금없이 신찬성이 통화 중에 물었다. 신찬성도 김현우와 친해지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별로 안 해. 답장도 엄청 느리고..”

“안 그래도 내랑 연락할 때도 바쁜 거 같더라.”


내 답장만 피하는 게 아니었구나. 신찬성에겐 내가 하루종일 김현우 답장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과가 달라도 같은 학교인데,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물론 신찬성이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란 건 알았다. 하지만 본디 비밀이란 내 입 밖을 나가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거라고 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 생각이 나고, 학교만 오면 언제 어디서 마주칠 수 있을까 학수고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해받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뭘 어쩌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 '오늘은 언제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기다리며 마음고생할 바에야 앞으론 정말 선톡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그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신찬성한테 말하면, 내 마음이 정말 확실시될 것 같았다.


“나 얼마 전에 점 봤다.”

“뭘 봤는데.”

“내가 아는 무당이 있거든. 전화해서 점 보는 거.”

“니는 그런 건 다 어떻게 찾아서 보냐.”

“타로는 내가 혼자 보고, 모르겠는 건 무당 언니 가끔 찾고.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자점이 어려운 거야. 내가 바라는 대로 결과를 해석하게 되니까.”     


하루에 김현우 관련해서 타로 카드 열 장은 뽑는 듯했다. 그러니 내가 뽑은 카드로는 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내도 좀 물어봐 줘라.”

“내가 내 돈 내고 니를 왜 물어보는데.”

“니는 뭐라카든데.”

“나 작년하고 올해는 사람 조심하라고 하더라. 친구든 애인이든 뭐든. 대신에 학업이나 커리어 관련해서는 잘 풀린대.”


그때 조심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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