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상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예술 작품을 뿜어내는 나. 가끔 내가 진짜 천재적인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어떻게 녹음기만 켜고 가사랑 멜로디가 술술 나오지. 역시 이게 나지.
슬프게도 고통을 겪어야 글, 노래, 영상과 같은 작품이 탄생하는 공식이 생겨버렸다. 물론 허구를 바탕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노력을 통해 곡을 써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곡은 노래를 부르며 가슴이 진심으로 동하지 않기에, 크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아하지 않게 되었다. 사랑이 아니라 다른 주제로 곡을 쓰면 어떻냐는 말도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곡 쓰는 것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그래야 숨이 쉬어져서 저절로 나오는 거다.
녹음기를 켰다고 술술 쏟아지는 경험은 드물고 귀하다. 그렇기에 무의식의 나는, 너무 슬프고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또다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야 예술이 나오니까. 그래야 내 모습이 멋져 보이니까. 그래야 나 이가연이 제대로 존재하는 것 같으니까.
곡은 도구일 뿐이다. 어떤 고통은 글로, 어떤 고통은 영상으로 다양하게 풀어내왔다.
고통스럽기를 일부러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진심으로 더 이상 거절당하고 싶지 않고, 사랑받고 행복하고 싶다. 27살 먹도록 크리스마스에 애인이 있어본 적이 없고, 연애를 해봤어도 한 달, 두 달 가지고 그걸 해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 인생은 짝사랑이었다.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좀 받아보고 싶어서 죽겠다.
유학 생활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바로 1년 동안 16곡을 쓴 거라 했다. 자랑스럽다. 그런데 똑같은 고통을 또 1년 간 겪고 16곡을 더 써내라 하면 도저히 못 하겠다. 인생에 있어서 한 번 겪는 것도 죽다 살아났다. 지난 1년 간, 잠깐씩 즐거움을 느꼈던 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하루하루가 너무 아팠다.
예술가로 태어난 것은 알겠으나 당장 살기 위해서 고통을 멈추는 쪽을 택하겠다. 슬픔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해서 곡이 쓰고 싶은 날을 바라본다. 분명 짝사랑하면서도 설레서 썼던 곡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정서만으로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중3 때부터 곡 쓰기 시작해서 지난 12년 동안 그랬던 적이 별로 없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그건 그만큼 강한 긍정적 정서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이다. 내가 거부되는 경험이 나를 제일 심하게 미치게 만들어서다.
진심으로 설레는 마음이 넘쳐서 연기 영상을 찍고 싶다. 나에게 이렇게 행복이 찾아올 줄 몰랐다며 글을 쓰고 싶다. 분명 영국에서 썼던 글 중 그런 글들도 존재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간직하고 싶어서 쓴 기억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영국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고통이 아닌 행복을 끌어당기겠다. 아픈 상태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바라보는 내가 너무 아프다.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