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도 고백도 연애도 다 해봤다.
그 감정이 유지되는 기간이 다르다. 최근 10년 동안 누군가를 두 달 이상 좋아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난 지 한두 번 만에 연애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충동적으로 그 감정을 표현해 왔다. 매일매일 난리를 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니 친한 친구들 입장에서는 사랑에 제대로 빠졌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건 정말 ADHD였기 때문이다. 어느 한순간에 그 마음이 '0'이 되기 일 수였다. '그동안 내가 그랬다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고, 마치 동화 속 공간에서 빠져나와 현실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이 좋았던 게 아니라, 그냥 ADHD의 순간적인 공허한 열정이었을 뿐,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그때마다 고역이었다. 안 그래도 감정 기복이 심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가해졌다. 연애하던 기간엔 연애 빼고 아무것도 못했다. 나도 잘하고싶었는데 불가항력이었기에 ADHD인 거다.
지금은 ADHD라서 단점보다 장점이 더 발휘된단 걸 느꼈다. 지금 역시 깨어있는 모든 순간 상대에 대한 생각이 백그라운드에 돌아간다. 하지만 그 생각 때문에 다른 건 전혀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다. 2주 동안 상대방에 관련된 쇼츠 영상을 20개 올리며 내 커리어와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기존곡을 개사해서 불러 올린 적은 없었다. "난 가사 안 듣는다"라고 했던 상대 때문에 영상에 가사 자막도 달았다. ADHD의 넘치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발휘되어 커버도, 자작곡도 쏟아졌다.
과거엔 당장 상대방과 연결되고 싶은 그 마음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롭기만 했다.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창의력, 열정, 다방면의 관심 등이 다 활용되어 행복할 때도 많다. 그동안의 짝사랑, 연애는 남는 게 없었다.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이번엔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자기 성찰하고 신중하게 반응하려 하는 등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나한테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이 막말인데, 지난 ADHD 식 연애 감정이었으면 바로 정이 털려서 작년 2월부터 이미 '내가 좋아했다고? 그럴 리가' 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걔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살면서 가족, 애인 아닌 이상 저렇게 상처 줘본 적이 한 손에 꼽힐 텐데 싶었다. 나는 새로운 친구 사귀기도 쉽고, 런던 가서도 친구 사귀고 그랬는데, 집-학교-도서관만 가던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진짜 발병 났을까 봐 마음 아팠다.
그동안 한두 달 불꽃 튀던 시절엔, 내 감정만 보였다. '당장 너와 함께 하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다'는 감정만 앞설 뿐, 상대방은 무슨 상황일테고 무슨 생각을 할지 관심이 없었다.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마음이 단순한 ADHD 반응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있게 자리 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