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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DHD와 나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

by 이가연

내가 친구가 별로 없는 건, 일반적인 20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있어도 87, 88년생 언니, 오빠들과 영국인이다. 모두 개성 있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그 '일반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너도 좀 신경 쓰라고 말 한마디 했다가 나에게 손절당한 '한국' 사람이 좀 된다. 앞으로 누가 내가 무언가에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된다고 공격하면, 나는 6개 국어 하는데, 난 니가 영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할 거다. 왜 한국인들은 무례한 줄 모를까.


ADHD는 보통 특정한 분야에만 강한 관심을 보인다. 관심 없는 주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딴생각하도록 뇌가 설계되어 있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일반인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흥미롭지 않은 일에는 도파민이 거의 안 나오고, 흥미로운 일에는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예를 들어, 나는 쇼핑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옷장 그대로 옷 한 벌 사지 않고 10년은 살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제발 옷 좀 그만 사 오라고 엄마랑 싸웠다. 나는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엄마는 옷을 사 와도 입어보지도 않는다고 서운해했다. 딸이랑 쇼핑하는 게 로망이라고 했는데, 이런 딸이 태어난 걸 어떡하나. 원래 옷장 95%가 엄마가 사다준 옷이었는데, 영국에서 시상식과 파티에서 입을 원피스들을 사서 이젠 한 80%다. 여자들이 옷장 보며 입을 옷 없다고 말하는 게, 지나가면서 예쁜 옷 있다고 발길을 멈추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청바지만 매일 입는다.


화장도 싫어한다. 어제는 스냅사진 찍느라, 올해 들어 처음 선크림 위에 하나를 더 발랐다. 평소에는 무조건 로션과 선크림만 바른다. 그랬던 내가 영국에선 학교 갈 때마다 기본 화장을 하고 갔다. 누군가를 마주칠까 봐 도파민이 절로 나온 것이다.


대신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서점 가면 정신 못 차린다. 그것도 책쇼핑이 아닌가.


또래 중에 영국인 친구 한 명만 남은 이유는, 나와 똑같이 화장 전혀 안 하고, 옷 관심 없고, 책 좋아하기 때문이다. 펍에서 단둘이 수다 떨고 타로 보는 걸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즐길 줄 알고, 인스타 스토리 올리는데 급급하지 않다. 이거 다 해당되는 20대 한국인 여자, 살면서 본 적 없다. 왜냐면 이 친구는 학교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위에 해당하는 한국인 여자가 있더라도, 밖에 나오겠는가! 그럼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에 가면 있지 않겠냐고? 나 책 읽고 공부하는 거 무조건 혼자서 한다. 상대도 똑같겠지.


예전엔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아서 슬펐다. 성인 된 이후로 인생이 늘 사람 엄청 만나러 다니다가, 다 짜증 나서 몇 달 쉬고, 다시 엄청 나가다가, 진절머리 나서 쉬기를 반복했다. 전형적인 ADHD '하이퍼포커스' 패턴이다. 지금은 그 진절머리 나서 쉬는 시기다. 도파민이란 게, 적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보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시기엔 '제발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자. 안 그러면 지친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뇌가 말을 듣지 않는다.


여고 때만 생각해도, 반에 38명 있으면 그중 한두 명만 나와 맞았다. 그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된 건데, 나랑 맞을 확률 3%다. 이젠 데이터상 30대 중후반부터 가능하단 걸 발견했다. 브런치만 해도, 과연 20대 독자가 많을까? 30대 후반부터는 내가 요즘 애들 같지 않아서 좋다고 막 훌륭하다고 해준다.


의사 선생님이 재벌이고 잘 나가는 사업가들 다 ADHD라고 했다. 그 사람들 일상생활 관찰해 보면,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옷만 해도 스티브 잡스를 봐라. 한국은 돈이 많아져야 남과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존중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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