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져야 괴로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괴로움은 늘 내 안에 있다. 지금 일상에서 스트레스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나를 괴롭히는 건 나다.
나라도 내 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을 때 부서진다.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60개를 올렸든, 브런치 글을 40개를 올렸든, 내 존재가 인생에서 아예 지워졌을 수 있다는 거 나도 잘 안다. '이건 다 의미 있는 창작이니, 예술적으로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는 건 방어기제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면 그걸 의무적으로 자주 생각할리 없다. 힘드니까 합리화다. 불안과 괴로움을 덮기 위해.
또 내가 자주 쓰는 방어기제로 억압과 주지화가 있다. 힘든 상황에서 바로바로 글로 뽑아내는 것 역시 주지화다. 곧바로 글로 풀어내는 것이 감정 해소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정과 직접 맞닥뜨리는 대신 분석하고 정리하면서 처리하는 거다. 어쩌면 '이걸 글로 정리해서 의미를 찾아야 해'라고 뇌가 오더 내리는 거 같다.
방어 기제는 나쁜 게 아니다. 방어 기제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친구가 내 자작곡 15곡 중에서 최근 1년간 단 한 곡도 들은 적이 없으면 내가 죽을 거 같으니, 이게 얼마나 의미 있는 예술적 승화인지,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지 계속 주입하게 된다. 사실은 걔가 하나도 안 들었으면 나에게 일말의 의미도 없다.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그거 헛짓거리 아니냐"해도 나는 나를 믿어줘야 하는데 이젠 좀 많이 흔들린다.
그럴 땐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거 주사위 굴리고 타로 봐야 알아? 아니다. 이럴 때 쓰는 타로, 점술은 방어 기제다. 그런 도구 없어도 난 직감을 어느 정도 타고났다. 설령 시간차가 있더라도 이거 다 닿는다.
어떤 방어기제로 나를 보호하든, 결국 내가 나아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