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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Sep 26. 2023

인생이 편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해

한국에서는 친구를 만나고 헤어질 때쯤 집에 가서 눕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체력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홍대에서 약속이 있었다면 교대역인 집까지 2호선 타고 가는데 걸리는 여정이 쉽게 그려진다. 하지만 할머니집에서 경의중앙선을 탈 때만 해도 '차가 왜 이렇게 안 와!' 하면서 속으로 짜증 냈다. 지하철이라면 응당 10분 안에는 온다고 기대한 탓이다. 매번 2,3호선만 타다가 경의중앙선만 타도 예측 범위에서 벗어나 당황했는데 영국에 오니 더 했다. 


버스 지연은 너무나 흔하고 사우스햄튼에서 런던과 같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배차 시간 간격이 상당하다. 런던 언더그라운드는 너무나 편했는데 아쉽게도 사우스햄튼은 버스만 있다. 


소위 MBTI에서 J와 P를 나누는 기준은 계획이 어긋났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J, 상관없으면 P라는 말이 있다. 감사히도 나는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지만, 워낙 혼자 돌아다니는데 익숙해서 유동적으로 계획을 바꾸는데도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늘 플랜 B, 플랜 C를 품고 다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엘에이에서는 길거리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냄새가 확 나면 짜증도 확 난다. 엘에이에 비하면 훨씬 적게 나는 데도 불구하고 짜증지수는 더 높은 것만 같다. 엘에이가 아닌 영국을 선택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인만큼,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와 실망은 인간의 감정인만큼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마냥 '기대하지 말아야지'하는 태도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버스가 10-15분 정도 지연될 수 있겠다', '영국도 가끔 마리화나 냄새가 괴롭힐 수 있겠다'와 같이 일상 속에서 예상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큼직한 사건들을 겪을수록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 20대보다 30대가, 30대보다 40대가, 경험이 쌓이는 만큼 시야가 넓어져 같은 일을 겪고도 스트레스가 덜할 것이 이제는 눈에 잘 그려진다. 신발도 며칠 신어봐야 발에 길들여져 편해지는데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험을 거쳐야 할까 싶다. 세계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고 싶은 만큼, 이곳 사우스햄튼에 잘 적응하고 나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편해질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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