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타진요 사건으로 타블로 씨를 처음 알았다. 에픽하이도 모르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하던 중학생 내가 알았을 정도로 그건 큰 사건이었다.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에픽하이가 자주 떠서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만약에 사우스햄튼 대학원 졸업한 걸 누가 거짓이라라며, 졸업장도 조작이라고 하고, 인터뷰한 교수와 친구도 다 조작이라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학교에서 그걸 조작해 줘서 얻는 이득이 없잖아. 한국에서 나의 졸업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방송국 카메라가 와서 교수 인터뷰한다고 하면, 미쳐 날 뛰실 교수님 한 분 생각난다. 내가 학교를 다닌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20명은 될 거 같다. 일단 학교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와있다. 아, 타진요는 뭘 갖다 줘도 다 조작이라고 했지 참.
"거기서 학생 대표 활동을 했던 걸 증명해 봐."라고 하면 당시 회의 참석 사진 찍어둔 것도 없고, 출석 체크를 한 것도 아니라서, 같이 참석했던 사람들의 증언 말고는 증거가 없다.
졸업 사실은 차원이 다르다. 백 번 봐줘서 졸업장은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쳐도, 증거가 넘친다. 지금 떠오르는 것만 해도 친구들 증언, 졸업식 사진, 출입국 기록, 성적표, 학교 메일 주고받은 거 등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다 해도 어떻게 성적 증명서, 기숙사 동영상, 졸업 사진 등 다 있어도 그 정도로 큰 사건이 되었는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당시 전 국민 1/3은 믿었어!라고 하실 정도인데, 나 같으면 한국 다신 못 살았을 텐데, 아니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기 싫었을 텐데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저 사람도 한때 타진요였던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걸 피해망상이라고 보기에 실제로 너무 피해를 입은 게 사실이니까.
나 같으면 미국 가서 안 돌아왔을 텐데 계속 한국에서 활동하셨다. 내가 한국인 극혐하는 게 크겠니, 타블로 씨가 당시 한국인이면 징글징글하던 게 더 컸겠니. 나는 기껏해야 몇십 명 정도 한국인이 크게 상처를 준 거지만, 저분은 수만 명이었다.
이제는 유튜브에 개그 소재로도 나오는 걸 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느꼈다. 성인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인들 힘들어서 일부러 한국 사람 없는 사우스햄튼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한국인 때문에 제일 고생한 것도, 영국 사는 다른 한국인들도 많이 찾았었는데 오빠 한 명만 좋은 사람이었던 것도, 돌아와서 어떻게든 몇백 명 넘게 말 걸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도 알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오빠도 알게 될 수 없었다.
성시경 씨가 "이렇게 된 거 조용히 곡이나 많이 써 놔."라고 하셨다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응원해 주는 내 편 몇 사람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내겐 오빠와 영국인 친구, 그 두 사람이 내 옆에 꽉 있었다. (그러니 다음 달에도 영국 간다.)
그분도 한국에서 음악 활동하는 게 너무 소중해서 버티셨을 거다. 지금 이렇게 여의도 벚꽃길이 30초 거리인 이 집, 엄마랑 얘기 많이 나눌 수 있는 것, 맛있는 음식,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를 계속 찾는 것이 소중하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